괴작열전(怪作列傳) No.102
지난 [터키 스타워즈]의 충격이 너무 커서인지 많은 분들이 터키산 괴작들을 좀 더 많이 소개해 달라는 열화와 같은 요청이 쇄도하고 있습니다. 뭐 이 한몸 희생해서 그까이꺼 얼마든지 소개해 드릴 수 있다는 차원에서 이번에는 또 한편의 터키 괴작 한편을 소개해 보도록 하지요.
1938년에 태어난 DC 코믹스의 영웅 '슈퍼맨'은 수없이 많은 재해석이 이루어진 작품입니다. 지난번 소개했던 [터키 슈퍼맨 Superman Donuyor]은 리처드 도너의 [슈퍼맨]을 구체적으로 모방한 영화이지만 그 이전인 1971년 작 [슈퍼 아담 Super Adam]을 비롯, 이듬해 만든 속편인 [여성들 사이의 슈퍼맨 Super Adam Kadinlar Arasinda], 그리고 같은 해 경쟁작인 [이스탄불의 슈퍼맨 Super Adam Istanbul’da] 등 수많은 슈퍼맨 모작들이 제작되어 왔습니다.
오늘 소개할 작품은 [3인의 슈퍼맨](원제는 Supermenler인데, 수출용 제목으로는 '3 Supermen against godfather' 로서 '대부에 맞선 3인의 슈퍼맨' 정도로 해석 가능합니다)는 터키-이탈리아의 합작영화로서 리처드 도너 감독의 [슈퍼맨]이 개봉한 1979년, 즉 [터키 슈퍼맨]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바로 그 해에 제작된 영화로 지난번에 소개한 [터키 스타워즈]의 주연 배우이자 터키 액션영화계의 레전드, 쿠니트 앗킨이 주연을 맡은 작품이지요.
ⓒ Asbrell Productions/Barbatoja Film/Cinesecolo/Erler Film. All Right Reserved.
이 작품은 슈퍼맨이 원톱으로 등장한 경쟁작 [터키 슈퍼맨]과의 차별성을 두기 위해서였는지 원작인 '슈퍼맨'이 아닌 이탈리아산 코믹스 '환상적인 3명의 슈퍼맨 I Fantastici 3 Supermen'에 기초한 작품인데요, FBI 에이전트인 브래드가 토니와 닉이라는 슈퍼맨 코스튬의 자경단과 힘을 합쳐 악당을 물리친다는 내용의 이 원작은 흥미롭게도 이미 1967년 본국인 이탈리아에서 [환상적인 3인의 슈퍼맨 I Fantastici Tre Supermen, 1967]이란 제목으로 영화화 된 이래 [정글 속 3인의 슈퍼맨 3 Supermen In The Jungle, 1970], [3인의 슈퍼맨과 미친여자 3 Supermen And Mad Girl, 1973] 등 여러차례 시리즈화 된 바 있습니다.
ⓒ Cinesecolo. All Right Reserved.
그럼 영화의 스토리를 잠시 소개합니다.
독일의 한 과학자가 타임머신을 발명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는 그것을 터키에서 사용하기로 결심하는데, 그 이유는 로마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의 멸망시 숨겨졌던 수많은 비잔틴 보물이 숨겨진 장소를 찾기 위해서였지요. 이 시도가 성공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뉴욕에 거주하는 마피아와 슈퍼맨 사립탐정 무랏(쿠니트 앗킨 분), 그리고 슈퍼맨 옷을 입고 자경단 활동을 하는 닉(터키명 야브사크)와 토니(터키명 마트라크)가 이 타임머신을 놓고 쟁탈전을 벌이기 시작합니다.
ⓒ Asbrell Productions/Barbatoja Film/Cinesecolo/Erler Film. All Right Reserved.
마피아 보스는 자신의 딸인 아가사가 부하와 함께 훔친 헤로인이 숨겨진 장소를 알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던 중 타임머신을 이용해 그 장소를 알아내려 하지만 여기에 닉과 토니가 끼어든데다 잠복하던 무랏까지 얽히게 되면서 세 명의 슈퍼맨이 서로 치고 받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됩니다. 이 사이에 마피아들은 타임머신과 박사를 잽싸게 빼돌려 근거지로 옮기게 되는데, 그만 작동의 실수로 타임머신이 폭발하고 맙니다.
ⓒ Asbrell Productions/Barbatoja Film/Cinesecolo/Erler Film. All Right Reserved.
폭발의 여파로 박사는 기억을 잃게 되고, 때마침 마피아의 본부에 잠입한 닉과 토니가 박사를 납치하는 바람에 타임머신을 고치려 했던 마피아들이 박사의 행방을 뒤쫓습니다. 다시 마피아들에게 발각된 두사람은 모진 물고문(?)끝에 박사가 있는 곳을 실토해내고 악당들은 박사가 적어놓은 타임머신의 수식을 손에 넣어 기계를 수리한 후 이번에는 배로 옮기지만 다시금 세명의 슈퍼맨이 이를 발견해 일당을 소탕한다는 내용이 되겠습니다.
ⓒ Asbrell Productions/Barbatoja Film/Cinesecolo/Erler Film. All Right Reserved.
이렇게 써놓고 보니 내용이 엉망진창인데요, 실제로도 영화는 정신을 혼미하게 만듭니다. 당췌 슈퍼 파워도 없는 세 명의 얼간이들을 몰아놓고 왜 3명의 슈퍼맨이라고 부르는 건지조차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게다가 이소룡 주연의 [용쟁호투]의 메인테마가 깔리질 않나, 느닷없이 [스팅]의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오질 않나 이건 저작권자의 최소한의 예의도 없습니다. 아놔....
액션도 이루 말할 수 없이 방정맞습니다. 앞서 언급한 [용쟁호투]의 테마가 깔리는 장면은 주인공 무랏(네, [터키 스타워즈]의 그 무랏과 같은 이름에, 같은 배우입니다 ㅡㅡ;;;)이 무술도장에서 시범을 보이는 시퀀스인데요, 명색이 터키의 액션스타임에도 쿠니트 앗킨의 액션연기는 엉성하기 이를데 없어요. 그 패턴도 거의 일정한데, 얼굴엔 오만가지 인상을 쓰고 (화면에는 나오지 않는) 덤블링을 한번 탄 뒤, 상대방을 그냥 덮치는 겁니다. 이건 날아차기도 뭣도 아니에요. 그냥 한번 튕겨오른 후 덮치는 겁니다.
ⓒ Asbrell Productions/Barbatoja Film/Cinesecolo/Erler Film. All Right Reserved.
이처럼 짝퉁 히어로물과 모방작들이 터키에서 판을 치게 된 이유는 1970년대 후반 터키의 정치적 상황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요, 이 때는 쿠르드 노동자당이 이끄는 게릴라가 반란을 일으켜 사회 내 사상적 분극화가 심화되었고 인플레 문제가 국민들의 경제 생활에서 심각하게 대두되기 시작한 시기였습니다, 이런 혼란한 사회상에서 만들어진 초저예산의 괴작들은 1980년대 초반까지 터키 영화계에 쏟아져 나오게 됩니다. 여기에 편승해 이탈리아 등 B급영화로 유명한 나라들과의 합작 형태로 나온 작품들도 부지기수이지요.
오히려 이 때 제작된 영화들은 일부 컬트 매니아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되는데, 터키의 제작자들이 이처럼 서구의 제작자들보다 훨씬 적은 예산으로 원작에 대한 또다른 풍미를 일으켰다는 사실 자체가 큰 호기심으로 다가온 겁니다. 엉터리 의상과 눈뜨고 보기 힘든 액션씬들은 당시 터키영화계의 개념을 보여주는 핵심요소였던 것이지요. 한마디로 대담하다고 해야 할까요.
한편 이 영화를 연출한 이탈리아 출신의 감독 이탈로 마르티넨기는 1967년작 [환상적인 3명의 슈퍼맨]의 제작을 맡은 이후로 데뷔작인 [서부의 3인의 슈퍼맨 Three Supermen of the West]에 이어 다시 한번 '3인의 슈퍼맨' 시리즈의 연출을 맡으며 질긴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요, 사실상 터키와의 합작영화인 본 작품을 연출하는 것은 그에게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터키의 톱스타인 쿠니트 앗킨과의 의사소통에도 어려움을 겪었고, 편집권에 있어서도 문제들에 직면했거든요. 그 결과 영화는 완전 엉망진창으로 우스꽝스런 작품이 되고 말았던 것이지요.
ⓒ Objektif Film. All Right Reserved.
그러나 그는 5년 뒤 다시 한번 3인의 슈퍼맨 시리즈를 만들기 위해 터키로 돌아오는데, 이번 작품에 그는 자신의 아들인 스테파노를 주연으로 캐스팅하려고 시도합니다만 제작자들이 [3인의 슈퍼맨]의 악몽을 떠올리며 이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바람에 투자자를 찾는데 난항을 겪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Yavuz Yalinkiliç 이란 제작자가 자신의 이름을 각본가 및 감독으로 올리는 조건으로 이 계획안을 받아들여 영화를 감독하게 되는데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올림픽에 참가한 3인의 슈퍼맨 Three Supermen in Olympic Games, 1984]입니다. 이후 이탈로 마르티넨기는 1986년작 [산토 도밍고의 3인의 슈퍼맨]을 끝으로 영화계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 Barbatoja Film. All Right Reserved.
여튼 뭐 터키-이탈리아 합작의 [3인의 슈퍼맨]은 수많은 시리즈물을 양산한 프렌차이즈 중 한편으로서 단순히 헐리우드판 [슈퍼맨]의 인기에 편승한 아류작으로 볼 수 만은 없는 일종의 B급 서브컬쳐라 할 수 있습니다. 언제 한번 기회가 되면 3인의 슈퍼맨 시리즈를 연작으로 다뤄봐도 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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