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작열전(怪作列傳)

괴작열전(怪作列傳) : 기계인간 - 여성판 터미네이터의 정체는?

페니웨이™ 2010. 10. 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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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작열전(怪作列傳) No.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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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카메론의 인생을 바꾼 [터미네이터]는 자체적인 시리즈만해도 총 4편까지 이어질만큼 대단한 인기를 누렸습니다만 그밖의 작품들에게 준 영향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한국에는 '돌아온 터미네이터'란 제목으로 소개된 [Hands of Steel]이나 [엑스터미네이터], [네메시스]같은 B급 아류작은 물론이고, 괴작 전문회사 어사일럼의 [터미네이터즈] 등 2000년대에 들어서도 [터미네이터]의 잔영아래 있는 작품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한국도 이에 뒤질새라 김청기 감독이 [터미네이터] 같은 작품 한번 만들어 보자고 박중훈씨를 설득해 만든 [바이오맨] 같은 괴작이 제작되었을 정도죠. ([바이오맨] 리뷰)

이런 짝퉁 터미네이터들이 공통점은 아놀드 슈왈제네거를 의식해서인지 하나같이 울끈이 불끈이 남성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것인데요, 이렇게 아류작들이 난립할 무렵, 일각에서는 여성을 내세운 아류작들을 내놓기 시작합니다. [이브의 파괴], [프로그램 투 킬] 같은 작품은 비교적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작품들이지요. 그중에서도 포스터에서 가장 강렬한 포스를 풍기는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오늘 소개할 [기계인간 Annihilator, 1986]이라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NBC에서 방영된 TV용 영화로서 그 존재가 많이 알려지지 않았음에도 국내에서는 CIC 비디오 직배사를 통해 무려 정식 발매된 바 있습니다. 당시에는 가정용 비디오가 한창 보급단계에 들어간 시절이어서 메이저와 마이너를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식 수입을 하던 때였는데요, 그래서인지 표지빨로 승부하는 작품들이 꽤 많아서 요즘말로 '낚이는'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기계인간도] 그 중 하나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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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iversal TV. All right Reserved.


그럼 [기계인간]의 내용을 먼저 보실까요?

영화의 오프닝은 한 남자가 차로 도주하고, 경찰차가 뒤를 쫓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이 카체이싱은 무려 5분 동안 이어지는데, 사실상 B급 영화치고는 초반부터 꽤 달려주는 셈이지요. 이윽고 차사고가 나서 경찰에게 체포될 위기의 순간에 한 여성(수잔 브레이클리 분)이 나타나 그 남자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밉니다. 그 여인의 집으로 같이 따라간 주인공. 너무 긴장했던 탓일까요? 그만 잠이 들어 버립니다. (어이, 보통은 그 여자가 누구며 왜 자신을 구해줬는지 의심하지 않냐고!)

다음날이 되어서도 친절하게 주인공을 대하는 의문의 여인. 얼마전 남편을 잃었다는 그녀의 말에 혹해 주인공은 그 집에 눌러 앉습니다. 그리고는 여인에게 자신이 왜 쫓기고 있었는지에 대해 털어놓습니다. '나는 내 여자친구를 살해했소' 이같은 그의 말은 충격적이었지만 진짜 놀라운 사실은 따로 있었습니다. 이제 주인공의 회상이 시작됩니다.

주인공 리처드(마크 린제이 챔프만 분)는 연인인 안젤라와 한 신문사에 근무하는 기자입니다. 여느 연인과 다름없던 두사람의 관계는 어느날 안젤라가 하와이에 취재차 다녀오면서 틀어지기 시작되는데요, 기르던 개가 안젤라를 보고 사납게 짖어대거나 새벽부터 자신들이 찍은 비디오를 감상하고 있거나 선글라스를 쓴 낯선 남자와 얘기하는 모습이 목격되는 등 평상시와는 다른 행동을 보이는 겁니다. 급기야는 리처드가 집을 비운 사이 애지중지하는 애완견이 죽어 버리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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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iversal TV. All right Reserved.


무언가 이상하다는 리처드의 말에 안젤라는 어디론가 여행을 가자며 그를 어느 깊은 산장으로 데려가는데요, 느닷없이 호숫가로 달려가는 그녀를 제지하려던 리처드는 도리어 안젤라의 공격을 받고 익사할 위기에 처합니다. 다행이 지나가던 사냥꾼의 도움으로 위험을 모면한 그는 차를 타고 도망치지만 차에 올라탄 안젤라는 막무가내로 리처드를 공격합니다. 그녀는 이미 안젤라가 아니라 안젤라의 모습을 한 사이보그였던 것이지요.

힘겹게 사이보그를 제거한 리처드는 안젤라가 하와이로 간 그 기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안젤라의 절친한 회사 동료 수잔을 찾아갑니다. 수잔에게 무슨일이 있었는지를 알아보려는 순간 그녀마저 사이보그로 돌변합니다. 또다시 도망치는 주인공. 어찌어찌하다 수잔의 팔을 잘라 버리는데 성공하지만 열받은 수잔에게 잡혀 잘린 팔로 복날에 개패듯 두들겨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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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iversal TV. All right Reserved.


그러나 이번에도 도망치는데 성공한 리처드는 안젤라와 같은 여객기를 탔던 탑승객들을 찾아가 진상을 알아보기로 결심합니다. 가까스로 알아낸 사실은 기상악화로 인해 어떤 공항에 비행기가 불시착했고, 거기에서 승객들이 잠든 사이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 뿐이었지요. 리처드는 이 사건을 좀 더 깊이 파고들고자 하지만 정체불명의 조직이 그의 뒤를 쫒고 그가 나타나는 자리에는 어김없이 사이보그가 등장합니다. 누가 사람이고 누가 사이보그인지조차 믿지 못할 상황들... 과연 이들이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요?

스토리 자체만으로 보자면 [기계인간]은 매우 흥미로운 스릴러형 내러티브를 가진 작품입니다. 대부분의 [터미네이터] 아류작들이 R등급의 작품인데 반해 [기계인간]은 TV용 작품이어서 폭력성이나 선정성은 완전히 배제된 작품으로 무난한 표현수위를 지닌 영화이기도 하지요. 도망치는 주인공과 뒤를 쫓는 추적자와의 긴장관계도 비교적 잘 묘사되어 있어 당시 기준으로는 적당한 서스펜스를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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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iversal TV. All right Reserved.


[기계인간]역시 [터미네이터]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은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이를테면 인간은 사이보그를 구분하지 못하지만 개는 사이보그를 알아보고 짖어댄다는 점, 그리고 실제 눈색깔은 빨간색이라는 점, 사이보그의 시점도 터미네이터와 비슷하다는 점, 그리고 [터미네이터]에서 아놀드가 자동차 앞유리에 메달려 앞유리창을 부수는 시퀀스도 패러디하고 있습니다. 아, 쫓기는 주인공이 마이클 빈 처럼 긴 바바리 코트 차림과 샷건을 들고 있다는 점도 유사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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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iversal TV. All right Reserved.


배역도 준수한 편인데요, 국내에서는 TV 미니시리즈 [야망의 계절]로 인기를 모았던 수잔 블레이클리나 1970,80년대 단골 조연배우인 조프리 루이스 같은 낯익은 배우들이 등장하는데다, 무엇보다도 [터미네이터] 1,2,3에서 실버맨 박사역으로 출연한 바 있는 얼 보엔이 신문사의 편집장으로 출연한 것이 흥미롭습니다. 메가폰은 톰 크루즈의 [대야망]이란 작품으로 신고식을 치뤘던 촬영감독 출신 마이클 챔프만이 잡았습니다만 이후로는 거의 촬영감독으로만 활동하면서 [도망자], [떠오르는 태양]등 메이저급 작품들의 촬영을 담당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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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iversal TV. All right Reserved.


하지만 [기계인간]은 흥미로운 설정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말하려는 바가 뭔지 당췌 알 수가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의문인 '누가, 왜 사람들을 사이보그로 만드는 것인가?'에 대해 전혀 알려주지 않거든요. 그리고 더 중요한 문제, '왜 이들이 주인공만 쫓아다니는 것인가?' 또한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그냥 쫓고 쫓기고, 의문들만 남발한채 영화는 [두 얼굴의 사나이]의 마지막 장면처럼 주인공이 영원히 반복되는 도피길에 오르는 것을 암시하며 끝을 맺습니다.

워낙 마이너한 작품인데다 제작연도가 꽤 되었기에 관련자료를 더 이상 찾기가 힘듭니다만 당시 TV 영화의 관행으로 비추어 볼때 이 작품을 파일럿 필름으로 방영을 하고 반응이 좋으면 시리즈물로 가져갈 계획을 세우지 않았었나 추측할 따름입니다. 물론 2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속편은 커녕 그 어떤 연관성이 있는 작품도 나온적은 없습니다.

한편 여성 사이보그 캐릭터는 이후로도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사이보그 2]를 비롯해 여러 유사영화들에서 반복되어 오다가 결국에는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세 번째 후속작 [터미네이터 3]와 스핀오프인 [터미네이터: 사라 코너 연대기]에서 사용되었으니 결과적으로는 이런 짝퉁 유사품들이 정통 계보에 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봐야 하나요? 세상일이란 참 아이러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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