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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의 왕자'. 초창기 DOS 시절을 경험한 분들이라면 다 알 만한 제목이다. 조악한 그래픽과 초보적인 인터페이스의 게임이 난무하던 PC 게임시장에서 부드러운 몸동작과 간편한 인터페이스, 매혹적인 스토리, 그리고 난이도가 적절히 배합된 게임성까지 고루 갖췄던 브로더번드 사의 '페르시아의 왕자'는 그야말로 시대를 앞서 나갔던 명작이었다. 아마도 DOS 시절의 오리지널에 기초한 영화가 만들어 졌더라면 영화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는 [신밧드의 모험] 시리즈나 [아라비안 나이트]에 더 가까운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 1990 Jordan Mechner. All rights reserved.


하지만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이하 페르시아의 왕자)는 앞서 언급한 고전게임이 아니라 이후에 나온 이른바 '시간의 단도' 삼부작의 첫 번째 작품에 기초를 둔 영화다. (게임의 출시순으로 보면 4번째로 출시된 '페르시아의 왕자'다) 따라서 본 작품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고전풍의 모험극 보다는 전형적인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외형에 더 충실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점은 기존의 게임원작영화들, 이를테면 [둠]이나 [툼레이더] 같이 무척 실망스런 작품들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UBI Soft. All rights reserved.


실제로 영화의 이면에 대형 팝콘무비 제조기, 제리 브룩하이머가 있다는 점을 굳이 강조하지 않더라도 [페르시아의 왕자]는 무대만 모래사막으로 옮긴 평범한 여름철 액션 블록버스터처럼 보인다. 그러나 영화 초반, 게임의 설정을 끌어오면서 동시에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빗대는 노골적인 정치적 은유를 느끼는 순간 [페르시아의 왕자]가 그저 고스튬 플레이에 지나지 않는 작품이라는 상념이 스쳐 지나간다. 허.. 이거 뭔가 있을것만 같은 예감.

아쉽게도 기대감은 여기까지다. [페르시아의 왕자]는 시간의 단도라는 소품을 이라크 침공의 실제 이유인 석유에 대비시키며 꽤나 그럴싸 하게 보이는 척 하지만 관객들의 생각이 여기까지 뻗어나가기에는 영화의 오락적 잔재미가 너무나도 강렬하다. 이를테면 본 작품은 원작 게임의 주요 특징인 벽타기와 점프가 어우러진 아크로바틱한 액션들로 장관을 이룬다. 특히 시내의 추격전은 [본 얼티메이텀]의 텐지어 시퀀스에 비견될만큼 박진감이 넘치는데 (물론 [본 얼티메이텀]의 그것은 감히 넘볼 수 없다만), 이것만으로도 게임의 영화화에 우려를 표방한 이들이라면 어느정도의 만족감은 얻을 수 있으리라 본다.

ⓒ Walt Disney Pictures/Jerry Bruckheimer Films. All rights reserved.


가장 우려가 되었던 제이크 질렌할의 경우 그의 배우 경력 중 거의 최초로 액션 블록버스터의 주연을 맡은 셈인데, 기대 이상의 액션씬과 원작 속 주인공과의 싱크로를 보여주면서 다재다능한 배우임을 증명하고 있다. 반면 영화 속에서 '세계 최고의 미녀'로 설정된 젬마 아터튼의 경우 최고라고 보기에는 다소 부족한(?) 외모 덕택에 호불호가 갈리는 상황이지만 이미 [퀀텀 오브 솔러스]에서 선보인 까칠한 츤데레형 이미지의 캐릭터에 더없이 적합한 배역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단점도 제법 많다. 우선 캐릭터의 묘사가 밋밋해 그다지 매력적이거나 눈에 띄는 인물이 없다는 점, 제이크 질렌할의 연기가 훌륭한건 사실이나 그의 매력이 드라마적인 부분에서가 아니라 액션씬에서라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명배우 벤 킹슬리가 모처럼 악역으로 등장해 무게중심을 잡아주지만 그 역시 필요 이상의 매력을 발산하고 있진 않다. 역시나 [캐리비안의 해적]의 잭 스패로우 처럼 매력적인 캐릭터가 나온다는 건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 Walt Disney Pictures/Jerry Bruckheimer Films. All rights reserved.


전체적인 스토리에 있어서도 큰 욕심을 부리진 않았지만 완급조절도 불안한 편이어서 전반부의 흥미가 갈 수록 떨어져 후반부가 늘어지는 경향이 있으며 곳곳에 손발이 오그라들만한 유치한 장면이 등장하는 것도 단점이다. 시간여행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십분 활용한 원작 게임의 스토리에 못미친다는 점은 원작의 팬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불만스런 요소다. 영화의 셀링 포인트인 풍부한 액션도 조금 단조롭고 편집이 산만해 나중에는 별 감흥이 없다는 것도 문제. 결국 영화의 전반에 걸쳐 감독인 마이크 뉴웰이 아닌 제리 브룩하이머의 색체가 너무 강하다는 얘기다.

[페르시아의 왕자]가 아주 잘 만들어진 오락물은 아니라 할지라도 일면 팝콘무비로서의 미덕은 고루 갖춘 영화임엔 분명하다. 특히나 게임을 원작으로 삼은 작품들로서는 [사일런트 힐]까지는 아니더라도 [레지던트 이블]의 재미에는 상응할 만한 완성도를 갖춘 영화다. 가뜩이나 소개고갈에 허덕이는 요즘 헐리우드의 실정에 비추어 보건데 어느정도 흥행이 보장된 [페르시아 왕자]의 경우도 원작처럼 3부작으로 갈 확률이 농후하지만 누군가 나에게 2편이 나오길 학수고대하느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글쎄'다. 나오면 보는거고 아니면 말지 뭐.

P.S:

1.디즈니 영화치곤 폭력수위가 조금 높다는 생각이 든다. 갈수록 살벌해지는 헐리우드.

2.명색이 '페르시아인'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영어로 쏼라쏼라하는 모습에서 오는 괴리감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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