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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 재직중 불명예 사임으로 퇴진한 리처드 닉슨. 마이클 무어 감독의 [식코]에서는 최악의 미국 의료보험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의 시발점으로 닉슨을 지목했고, 얼마전 개봉한 블록버스터 [왓치맨]은 닉슨이 3선에 성공한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가상의 미국사회를 배경으로 다루기까지 한다. 이제는 잊혀질 법한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세간에 오르내리는 그를 보노라면 역시 사람은 살아 생전 무엇을 했는가로 평가받는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물론 미국에서 멀찌감치 떨어져있는 이곳 한국의 관객들에게 닉슨이란 이름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런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프로스트 vs 닉슨] 같은 영화는 국내 극장가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것이겠지만. 그러나 론 하워드 감독의 이름 하나만을 두고 보더라도 장담하건데, 이 영화는 결코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 Liberation Entertainment. All rights reserved.

워터게이트의 개입을 시인하는 닉슨의 모습을 담아 엄청난 화제를 모았던 프로스트와 닉슨의 인터뷰.


영화는 리처드 닉슨의 사임이 미국인들에게 얼마나 씻을 수 없는 분노와 수치심을 안겼는지를 간접적으로 상기시키며 시작한다. '워터게이트 사건'이라는 최악의 정치적 스캔들을 뒤로한채 떠밀리듯 사임을 선택해야 했던 닉슨은 자신의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하지도, 국민에 대한 사과 한마디도 하지 않은채 훌쩍 백악관을 떠났다.

후임자인 제랄드 포드 대통령은 그에게 사법적 면죄부를 주었고, 이로인해 닉슨에 대한 처벌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졌다. 조금이라도 정의감이 있는 사람이라면 죄값을 치루지 않은 부패한 권력가를 곱게 볼리가 없다. 그만큼 닉슨에 대한 국민적 반감은 대단한 것이었다.

ⓒ Working Title Films/Universal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이런 시점에서 영국의 한 토크쇼 진행자인 데이빗 프로스트는 미국 방송계로의 진출을 꿈꾸며 닉슨과의 단독 인터뷰를 계획한다. 닉슨 측은 이를 자신의 명예회복을 위한 기회인 동시에 거금을 벌어들일 기회로 여기고 기꺼이 승낙한다. 한물간 토크쇼 진행자와 거물 정치가의 대담. 역시나 사람들의 예상대로 닉슨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연승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닉슨은 그 특유의 카리스마와 말솜씨로 프로스트를 제압한다.

[프로스트 vs 닉슨]은 마치 데스매치를 연상케하는 남자 대 남자의 정면 승부를 다룬다는 점에서 독특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그렇다고 영화가 현란한 편집기술이나 충격적인 이벤트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인터뷰 과정만을 두고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는 점을 감안하면 론 하워드 감독의 연출력은 역시나 감탄을 자아낼만큼 훌륭하다. 근래들어 심리전의 묘미를 이처럼 잘 담아낸 영화도 보기 드물 듯.

ⓒ Working Title Films/Universal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특히나 이미 동일한 작품의 연극무대에서 수없이 손발을 맞춰온 두 배우, 프랭크 안젤라와 마이클 쉰이 배역을 맡은 탓에 두 사람이 발산하는 캐릭터의 흡입력은 실제를 방불케 할 만큼 대단한 리얼리티를 선사한다. 얼굴의 긴장과 눈빛의 미묘한 변화를 놓치지 않고 잡아낸 연출의 뛰어남도 그렇지만 역시나 이 두 배우의 명연기는 실제 프로스트와 닉슨의 대담보다 훨씬 더 극적이고 호소력있게 전달된다.

영화의 명장면은 마지막 대담에서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는 닉슨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카메라의 뷰파인더 씬이다.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노장배우 프랭크 란젤라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당당히 오를 자격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Working Title Films/Universal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비록 아카데미 수상에는 실패했으나 [프로스트 vs 닉슨]은 올해의 그 어떤 영화보다도 재미와 구성에 있어 탁월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다만 여전히 멀게만 느껴지는 미국 정치사의 한조각에 불과한 이야기가 얼마만큼 국내 관객들의 주목을 모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지극히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P.S: 영화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무한 분들을 위해서 조언하자면 이 작품을 보기 전에 알란 J. 파큘라 감독의 1976년작 [대통령의 음모]와 올리버 스톤 감독의 1995년작 [닉슨]을 관람하길 권한다. 특히나 [대통령의 음모]는 필자가 다섯 손가락에 꼽을 만큼 좋아하는 걸작 스릴러 중 하나다.

* [프로스트 vs 닉슨]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Working Title Films/Universal Pictures.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 참고 스틸: 프로스트/닉슨 인터뷰 (ⓒ Liberation Entertainment.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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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5thBeatles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 그래도 최근에 All the President's Men을 다시 봤더랬죠. DVD로.... 정신병(대통령병이라고 할까요)에 빠진 인간말종이 대통령이 되면 결국엔 어떤 끔찍한 일이 일어나게 되는지.... Feel 받아서 얘기하신대로 Nixon까지 이어서 봤는데... 정말, 거의 30년전의 미국 정치권의 Moral Hazard를 보고 있자니, 남 일 같지 않아서 한숨만 나오고 괜시리 울분에 눈물만 나더군요.

    이 영화도 영화관에서 보면서 얼마나 인간이 추악해질 수 있는지... '인지부조화'라고 하죠. 자신이 저지른 일에 맞춰서 세상 모든 일을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이런 '인지부조화'에 빠져 있는 사람들 때문에 더 이상 평범한 이들이 피해받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맘 뿐이네요.

    2009.03.09 11:41
  2. 무비조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영화보면서 느꼈던 점은...

    정치인들은 역시 ㅡ,ㅡ

    영화는 개인적으로 정말 잘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의 음모는 아직 못봤는데 구해서 봐야될 것 같습니다.

    이 작품에 상당히 만족했기에 아마 저한테 무지 잘 맞을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최근에 개인적으로 관심을 두고 있는것이 네이버 오픈캐스트인데요.. 네이버 오픈캐스트 오픈이 3월에서 4월로 연기되었더군요. 요즘 꼼꼼하게 오픈캐스트에 대해서 여러가지 글을 읽고 있는데.. 좀 비관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폐쇄성이 너무 강하다는 것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2009.03.09 12:33
    • 페니웨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대통령의 음모]는 필견의 영화입니다!

      오픈캐스트는 지난번 제가 올린 포스트로 충분히 판단가능하시리라보고요, 딱히 유입량의 증가도 없습니다 ㅡㅡ;;

      2009.03.09 16:49 신고
  3. 붉은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영화는 꼭 극장에 가서 보고 싶은데, 와이프가 정치물에 관심이 없어서 난감합니다...-_-;

    대통령의 음모는 꽤 재미있게 보았었는데, 워낙 어린 시절에 본 작품이라(중딩이었을 때니...)
    내용이 가물가물하네요. 당시에 워터게이트 사건을 다룬 작품을 단기간 내 여러 편을 보았었는데,
    그 영향으로 오랜 세월 기자가 되기를 꿈꾸기도 했었다는...ㅋ

    프로스트는 영국 기자가 아니라 호주 기자였지요, 아마?^^

    2009.03.09 13:11
    • 페니웨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굳이 정치물이라고 안보셔도 무방합니다. 오히려 닉슨의 정치색은 거의 드러나지 않고 인간적인 부면을 부각시킵니다.

      프로스트의 국적은 영국입니다.이 사건당시 호주에서 주로 토크쇼를 진행했지만 영국에서도 러브콜을 받는 것으로 나오죠.

      2009.03.09 17:26 신고
    • 붉은비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방송사만 호주 방송사였고 프로스트는 영국인이었군요.^^

      한 5,6년 되었지 싶은데 EBS에서 BBC에서 제작한
      <20세기의 인물 100인>이란 프로를 방송해준 적이 있었는데,
      그때 닉슨 편을 보고 '생각만큼 나쁜 놈은 아니었을지도'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남의 나라 대통령이니까 그랬겠지요, 아마?ㅎㅎㅎ

      2009.03.09 18:34
  4. 수하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존레논컨피덴셜'에도 인상적으로 나오더군요^^

    2009.03.09 13:39
  5. tiamat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ㅎㅎ 4년 후를 기대하게 하는 영화네요.......
    (이번엔 청문회 좀 제대로 해서 정치인들 정신 좀 들게 해야 할 텐데 말이죠.)
    그나저나 이번 해외 순방에선 얼마나 퍼 드리고 왔을까요 이 양반 --;;;;

    2009.03.09 15:15
  6. 산다는건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뭐 일단 무조건 극장으로 달려가야지요..

    2009.03.09 15:48
  7. bluenlive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린 그럼 [손서키 vs 2mb]라도...?
    (손서키 옹은 "한물 간" 분이 결코 아니군요...)

    2009.03.10 18:17
  8. Terminee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극장 상영은 놓친 듯 하고 나중에라도 한 번 찾아봐야겠군요.
    지난 주 집안에 일도 있고 그래서 좀 정신 없었더니 시간이 많이 갔군요. 크

    2009.03.16 17:09 신고
  9. 적멸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래곤볼을 봐야한다는 알수없는 사명감때문에
    이 영화는 뒤로 밀리고 마는군요(예매권이 한장밖에 없어서...)

    2009.03.17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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