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다한 리뷰

제9회 만화의 날 기념식, 그 훈훈했던 현장 속으로

페니웨이™ 2009. 11. 4.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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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1월 3일은 '만화의 날'이다. 올해 9회째를 맞는 만화의 날 행사가 어제 부천에 위치한 한국만화 영상진흥원 상영관에서 열렸다. 어제는 마침 오후에 반차를 낼 수 있어서 새로 개관한 만화규장각을 관람할 겸 부천으로 향하게 되었는데, 기회가 우연찮게 딱 맞았던 것이다. 1호선 송내역에서 하차하고 나니 셔틀버스가 마련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기다리다 보니 만화가 윤승운님을 비롯한 원로 몇분께서 즐겁게 담소를 나누시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분들과 함께 셔틀버스를 타고 갔던 것은 이 잊지 못할 하루의 추억을 여는 출발에 불과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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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가보는 한국만화 영상진흥원은 꽤나 큰 곳이었다. 영상진흥원 내에는 벌써 국내의 거성급 원로 만화가분들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분이 얼마전 거금을 들여 구입한 [도전자]의 바로 그 박기정님이셨고, 그 옆에는 현재 한국만화가협회의 협회장을 맡고 계신 [요정핑크]의 김동화님 등 실로 후덜덜한 작가분들이 대거 참석해 있었다. 사실 만화가들이 대놓고 얼굴을 내놓는 직업은 아닌지라 그 많은 분들의 얼굴을 전부 알아볼 순 없었지만 정말 이 나라의 만화계를 이끌었던 1세대 만화가들이 총출동한 자리였다고 보면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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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박한 만화계를 이끌었던 주역들. 맨 왼쪽의 모자쓴 분이 [도전자]의 박기정 화백, 그리고 맨 오른쪽의 말총머리를 한 분이 [요정핑크]의 김동화님이다.


만화의 날 행사는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시작되었다. 행사장에 참여한 원로급 인사와 각계 귀빈들 소개, 그리고 만화 공모전에 당선된 신인 만화가들의 시상으로 진행된 이번 행사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비교적 품위있게 진행되었다. 보통 이런 시상식이나 관례적인 행사는 지루하거나 짜증나기 마련인데, 만화가들의 성격이 워낙 소탈해서인지 모두들 겸손하고 꾸밈없는 모습들을 보여주셔서 정말 훈훈하게 느껴지는 행사였다.

한국만화가협회 김동화 협회장의 개회사



부천시장 재임시절 많은 컨텐츠 문화 행사를 활성화 시킨 원혜영 국회의원



수상자들과의 기념샷



[고바우 영감]으로 시사만화사에 기념비적인 족적을 남긴 원로 김성환 화백의 축사. '자신에게 있어 인생은 만화'라는 말로 시작해 감동적인 축사를 전했다.


왼쪽은 [해와달], [남자이야기]로 유명한 권가야 작가, 그 옆은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쥬],[생태습지 보고서]의 최규석 작가. 권가야 작가의 외모에서 풍기는 포스는 ㄷㄷㄷ


드라마까지 제작된 [탐나는도다]로 수상의 영예를 안은 정혜나 작가



만화 100주년 기념 사업을 보고하기 위해 단상에 오른 [악동이]의 작가 이희재님



시상을 위해 나온 박재동 교수와 또 만화가 이동수님




시상식 행사가 끝나고 10분간 SBS에서 특집으로 방영한 다큐멘터리 '시대를 그리는 만화 100년'을 관람한 후 박물관 투어 시간이 있었는데, 이틈을 노려 재빨리 박기정님의 뒤를 따라가 용감하게 말을 걸었다. 워낙 레전드급의 원로분이시라 너무 긴장되는 순간이어서 결국 큰 실수를 하고야 말았으니...

'저.. 박기준 선생님! 선생님의 열렬한 팬입니다. 싸인 좀 부탁드립니다''

'에... 지금 날 뭐라고 부르셨나?'

'그러니까.. 박기준 선생님의 팬이라고..'

'박기준이? 박기준인 아직 저안에 있어~'

'허걱..아니 저.. 죄송합니다. 박기정 선생님, 얼마전에 [도전자]도 구입했습니다 ㅠㅠ'



다행히 박기정님께서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며 싸인뿐 아니라 그림도 그려주셨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아마 만화가 분들은 싸인옆에 그림을 꼭 같이 그려주시는가 보다. 싸인을 받고 있는데 옆으로 한 원로 선생님께서 지나가시며 '여~ 우리 박선생님은 어딜가나 인기 좋으시네~'하고 추켜세우시니 쑥스러워 하시는 박기정님. 역시나 누군가 시간이 흘러도 자신을 알아봐준다는 사실은 기쁨을 주는 일일 것이다. (실은 '두통이 시리즈'의 박기준 선생님도 꼭 뵙고 싶었다 ㅠㅠ)

박기정 화백의 친필 싸인 및 그림. 밑의 사진은 지난달 지름 품목이었던 [도전자] 복간판 박스셋.



박물관 투어를 진행하면서 뒤에 또 아는 분이 오시길래 싸인을 요청했다. 아까 송내역에서 스치듯 뵈었던 [맹꽁이 서당]의 윤승운님. 사실 전화를 받으시느라 일행에서 조금 뒤쳐진 상태였는데도 기꺼이 싸인과 그림을 함께 넣어주셨다.

'바쁘신데 죄송합니다. 윤선생님의 [맹꽁이 서당]은 한때 저의 국사교과서였습죠'

'에 그럼 [맹꽁이 서당]을 그려드려야겠구만. 아 근데 [맹꽁이 서당]이 그리기가 좀 까다로우니까 오늘은 다른걸로 합시다'

'전 상관없습니다'

'(그림을 그리며) 근데 무슨일로 여기까지 오셨소?'

'그냥 팬일 뿐입니다'

'허~ 팬인데 이런 자릴 다오다니, 정말 만화를 좋아하나 보구먼. 올해 나이가..?'

'그 올해로 .... (삐익)살 입니다'

'......'



그림을 그리시는 동안 요즘 국내 만화계는 너무 일본만화 천지라고 볼멘 소리를 했더니, 최근 대만 만화계도 딱 그 짝이더라며 씁쓸한 심경을 토로하셨다. 손수 그려주신 작품은 [날아다닌 바위의 전설]이었는데, 나중에 리메이크 되거든 꼭 한번 봐달라는 부탁을 잊지 않으셨다.



그 밖에도 [라이파이]의 김산호님을 비롯해, [오똘또기]의 박재동 교수님, 시사만화계의 대부인 김성환님등 줄줄히 따라다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나이먹고 너무 주책떠는 것 같아 이쯤에서 마음을 추스려야 했다.

즐겁게 싸인을 해주고 있는 윤승운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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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내부의 정경들



라이파이관 앞에서 홍건표 부천시장(오른쪽)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김산호 화백. (원거리샷인 관계로 노이즈가 많음을 양해바람)


이후에는 저녁 식사가 있었는데, 왠걸.. 뷔페타임이다. 염치없이 몸만 달랑 들어와 먹을 것도 푸짐하게 저녁까지 먹고 가니 내일 오전에 건강검진 예약했다는 사실을 순간 까먹었음을 깨달았다. ㅡㅡ;;


모든 행사가 다 마쳐질때까지 자리에 남고 싶었으나, 사실 우연찮게 동석하게 된 자리였고 내심 스스로가 불청객이라는 느낌이 들어 끝까지 함께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오늘 행사만큼 기억에 남는 자리도 드물다. 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한 백전노장들과 신진들의 만남, 그리고 추억을 공유하며 모두가 하나될 수 있었던 자리. 한국만화 100주년을 맞이해 진행된 만화의 날 행사는 그렇게 추워진 날씨를 훈훈하게 녹인 시간들로 기억되리라.

P.S:

1.원로급들 귀빈들은 많이 참석한데 비해, 웹툰이나 현역 혹은 1980,90년대에 왕성한 활동을 보인 만화가들이 의외로 많이 보이질 않아 조금은 아쉬웠다. 허영만 화백이나 김수정, 이현세 화백 같은 분들까지 왔다면 그야말로 별들의 잔치였을텐데...

2.어제 행사를 통해 한국만화 정말 많이 봐줘야 되겠다는 생각을 또한번 했다. 제발, 고전만화 복간 좀 해다오.

3.원래는 늦가을 특집 기행문 형식으로 만화 규장각 투어를 다룰려고 했는데, 이는 다음 기회로 미뤄야 겠다.

4.덕분에 오늘 참석할 예정이었던 SIFFF 2009 (서울국제 가족영상축제) 폐막식에는 참석을 못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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