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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없는 산 - 내가 발견한 한국영화계의 희망

영화/ㄴ 2009. 9. 28. 09:50 Posted by 페니웨이™









한국영화의 위기론을 딛고 독립영화 [워낭소리]가 흥행에 성공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이제야 작은 영화의 가치에 관객들이 눈을 돌리는구나 생각했고 한편으로는 안도했다. 그러나 사실 고작 7개 상영관에서 개봉된 [워낭소리]가 백만 관객을 돌파한 일은 지금 보더라도 기적이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그나마 [워낭소리]의 성공은 별다른 화제작이 없던 시점에서의 틈새시장을 잘 공략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여기에 돈 좀 만질 수 있겠다고 판단한 극장주들의 얄팍한 상업적 마인드가 적절한 합의점을 찾아내어 선심을 썼을 뿐이다.

이같은 확신은 이번 여름를 보내면서 더욱 분명해 졌다. 위태로워 보였던 침체기를 깨고 [해운대]가 다시한번 한국영화 천만관객시대의 재현을 알렸을 때 국내 영화팬들을 다소 들떠있었을지 모르겠으나 나는 내내 침울한 기분이었다. 딱히 [해운대]가 못만든 영화였다거나 기대 이하의 작품이었기 때문은 아니다. [해운대]나 [국가대표] 같은 히트작들이 한달여를 장기 롱런하며 스크린의 상당수를 점령하고 있을 동안 정작 주목받아야 할 가치있는 작품이 묻혀 버린 것에 대한 원망이 더 컸기 때문이다.

그 비운의 주인공이 바로 [나무없는 산]이다. 아무리 한국 독립영화의 가능성이 어쩌니 떠들어도 역시나 블록버스터의 위력앞에서는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던 [나무없는 산]이 단지 블록버스터에 열풍에 밀려난 독립영화이기 때문에 안타까운 것만은 아니다. 돈이 안될 것 같다는 이유로 개봉영화에 대한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킬만한 개봉관 수 확보에 실패하는 바람에 관객들은 이 작품이 어떤 영화인지 접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그대로 잊혀지기엔 영화가 지닌 가치가 너무나 컸기에 그 아쉬움도 그만큼 더 크게 남았다.

ⓒ 위드시네마/CJ엔터테인먼트. All rights reserved.


[나무없는 산]은 일찍이 해외의 영화제에서 그 작품상을 인정받은 수작이다. 부산국제영화제 넷팩상과 관객평론가상, 동경필름엑스영화제 심사위원상, 두바이국제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베를린국제영화제 에큐메니컬상, 호주 아들레이드국제영화제 최우수작품상 등 수상 경력만 보자면 메이저급 영화제는 아니더라도 꽤나 화려하다.

세미 다큐멘터리 형식의 [나무없는 산]은 그 어떤 배경음악도 없이 매우 건조한 톤으로 편모슬하의 가난한 환경에서 자라나는 두 자매에게 카메라를 들이댄다. 결국 생활고에 시달리다 아이들을 고모에게 맡기고 남편을 찾아 떠나는 엄마. 피는 물보다 진하다 하지만 제 아무리 친척이라도 아이들을 자기 자식처럼 돌봐줄리가 만무다. 아이들은 낯선 환경에서 부모없이 살아야 하는 현실을 맞닥드린다. 그것이 곧 생존이자 성장의 과정임을 아이들은 깨달아야 한다. 가혹하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돼지 저금통이 다 차면 돌아오겠다는 엄마의 말을 믿은 두 소녀는 저금통을 채우기 위해 메뚜기를 잡아다 구워팔기 시작한다. 자립의 시작이다. 하지만 이들은 엄마의 약속이 곧 빈말이었음을 깨닫고 다시한번 절망과 좌절, 망각의 과정을 반복한다. 그리고 또다시 엄마의 친정 아버지 댁에 맡겨지게 되는 진과 빈. 과연 이 아이들은 엄마와 재회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가슴이 먹먹하기만 하다.

ⓒ 위드시네마/CJ엔터테인먼트. All rights reserved.


이 영화는 어떠한 구차한 설명도 늘어놓지 않는다. 다만 아이들의 아빠가 집을 나가 소식을 끊었다는 암시만 주어질 뿐 엄마가 왜 이렇게 고생하는지 정확한 내막은 설명되지 않는다. 아마 그것이 아이들이 현재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전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당연한 듯 기대되는 해피엔딩이나 정답도 주어지지 않는 열린 결말 또한 기성 상업영화와는 궤를 달리하는 신선함을 안긴다.

영화를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다. 오래전 영화 [쁘아종]으로 연예계의 하이라이트를 받았다가 영화의 실패후 순식간에 몰락했던 배우 이수아가 모처럼 스크린으로 돌아와 채 못다한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마음껏 펼치는 모습은 정말 보기 좋다. 더욱이 신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깊은 감정선을 표현해 낸 두 아역 배우의 연기력은 감탄이 절로 나온다. [나무없는 산]이 실제 다큐멘터리가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진 관객이 있다면 그건 전적으로 이들 아역 배우의 열연 덕분이다.

순백의 동심을 표현한 영화의 테마도 아름답다. 외할머니의 낡은 신발을 보며 그동안 힘들게 모은 돼지 저금통을 드리며 가볍게 미소짓는 아이들의 모습은 올해 본 영화들 가운데 최고의 명장면이자 감동의 순간이다.

ⓒ 위드시네마/CJ엔터테인먼트. All rights reserved.


차라리 극장가 비수기 때 [나무없는 산]을 개봉했더라면 조금은 더 많은 관객들이 이 작품의 진가를 발견할 수 있었을까? 혹여 DVD로라도 좀 더 널리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이지만 이미 초토화된 부가판권 시장의 현실을 떠올려보며 절망의 한숨을 다시 한번 내쉰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한국영화의 가능성은 [해운대]가 아니라 [나무없는 산]에서 발견할 수 있었음을.


* [나무없는 산]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위드시네마/CJ엔터테인먼트.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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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okto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거 지금은 볼 방법이 없나요? 이런 영화가 있었다는 것도 몰랐네요. 그저 아쉽습니다. 보고 나면 남는게 하나도 없는 해운대보다 이런 영화가 주목을 받아야 할텐데 갑갑한 현실입니다. 남 잘되는거 배아파서 하는 말이 아니고 엉성한 작품은 흥행하지 말아야 좋은 작품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안좋은 것에 익숙해져서 좋은 것도 못알아보는 게 우리나라 영화시장이네요. 쩝.

    2009.09.28 10:21
  2. 천용희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년도 부산에서 왜 이걸 안 보고 푸른 강은 흘러라를 봤나에 대해서는 아직도 제 생애 최고의 실수 중 하나입니다.

    선재로 가서 봐야겠네요...

    2009.09.28 12:02
  3. Terminee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슴 답답해지는 영화 썩 좋아하진 않는데...
    페니웨이님의 칭찬에 한 번 보러 갈까 하는 생각이 조금씩 드네요.
    시간이 맞으면 한 번 가봐야겠습니다.

    2009.09.28 16:13 신고
  4. 무비조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올해의 발견이라고 할만한 영화 같습니다.
    만약 무비조이에서 올 한해를 마무리하는 영화에 관련된
    글을 쓴다면 이 영화를 제일 위에 올려 놓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2009.09.28 19:23
  5. 적멸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헐.. 이거 보려했는데 역시나 벌써 간판을...... 제기

    2009.09.28 20:09
  6. 이나금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영화가 나온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페니웨이님 덕분에 알게 되네요. 흥미가 생겨버렸는데 어떻게 볼 방도가 없는 거 같아서 안타까움이... ㅠ.ㅠ

    2009.09.29 12:12
  7. BLUEnLIVE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이런 영화를 볼 수 없는 거군요... ㅠ.ㅠ
    DVD가 나오면 하나 사서 마눌님이랑 함께 봐야겠습니다.

    2009.09.29 21:47 신고
    • 천용희  댓글주소  수정/삭제

      문제는 김소영감독의 전작 [방황의 날들]이 국내 개봉까지했음에도 불구하고 DVD로 출시가 전혀 안 된 선례가 있다는 거겠죠.

      왠지 비슷한 선례를 밟을 거 같은 예감이 듭니다...ㄷㄷㄷ

      2009.10.21 16:46
  8. 진사야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과 빈을 연기한 김희연양과 김성희양은 엄밀히 말하면 '신인(배우)'가 아니라 비전문 배우입니다.
    김성희양은 실제로 보육원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는 친구라고 하구요.

    정말 좋은 영화였습니다만... 너무 빨리 잊혀진 게 아닐까 싶어요 ^^;;

    2009.10.02 19:40
  9. 천용희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 보고 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중반1시간은 거의 공포영화였습니다...(포항, 흥해라는 그 거지같은 동네의 악몽...그래도 시장은 엄청나게 변했더군요.)

    진짜 한국영화계의 희망인 거 같지만, 전 김소영감독이 한국에 계속살았다면 이런 희망이 있었을 지 모르겠습니다.(우니 르콩트 감독의 여행자와 같이 묶어서 생각하면 더더욱 말이죠.)

    하길종이라는 진짜 천재를 말도 안 되게 요절시켜버린 나라고 그 요절하게한 기운은 아직도 살아서 폴폴 풍긴다죠...

    2009.10.21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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