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ㅊ

체인질링 - 어머니는 여자보다 강하다

페니웨이™ 2009. 2. 16.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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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지가 절단나고, 미치광이 살인범이 활개치고, 화면이 피바다가 되어야만 공포영화는 아니다. 실종된 아이를 찾았다 싶더니, 왠 듣보잡 아이를 데리고 와서는 당신 아이니 무조건 맡아서 키우란다. 엄마인 당사자가 자기 아이가 아니라고 주장해도 경찰은 눈하나 깜짝 안한다. 오히려 공권력에 빌붙은 의사까지 동원해 엄마를 정신이상자로 몰고가려 한다. 이런 일이 당신에게 벌어졌다고 가정해 보자. 그야말로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이 아닌가. 이런일이 '실제로' 당신에게 벌어졌다고 생각해 보라. 이건 공포 그 자체다.

[체인질링]은 영화의 그 설정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공포감을 안겨주는 작품이다. 뭐 그냥 영화에서나 있을 수 있는 작위적인 설정이라고 하면 그런대로 납득하겠는데, 놀랍게도 이 이야기는 실화다! 따라서 [체인질링]의 공포는 이 이야기가 우리 일상,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현실감에서 우러나는 것이며 공권력 앞에서 개인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투쟁이 얼마나 무력한 것인가 하는 자각에서 기인한다.

ⓒ Malpaso Productions/Universal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평범한 어머니가 한순간에 미친 사람이 되고, 상식적인 소통이 불가능한 상황에 일방적인 린치에 몰리는 영화의 황당하고도 억울한 이야기는 모든 관객들의 울분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 누구보다도 미국적인 이미지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미국 사회의 치부를 드러내는 영화에서 이처럼 빛을 발하는 연출력을 보여준다는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체인질링]은 그 억울함을 호소하고 풀어나가는 방법에 있어서 기존의 클린트 이스트우드식 해법과는 다소 차이가 난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만약 주인공 크리스틴(안젤리나 졸리 분)이 뚜껑 열려서 느닷없이 메그넘44를 뽑아들고 직접 응징에 나서는 더티 해리가 되었다고 상상해 보자. 그랬다면 이 영화가 [브레이브 원]보다 더 나을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하지만 크리스틴의 투쟁은 물리적인 힘도 아니요, 권력에 기대지도 않는다. 그녀의 투쟁은 순수한 내면의 힘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렇듯 불의를 위해 신념을 굽히지 않는 한 어머니의 힘은 '절대적'으로 보였던 모든 공권력의 장벽을 허물어 뜨리며 권선징악의 논리앞에 폭력의 정당성을 교묘히 포장하는 그 어떤 영화보다도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 Malpaso Productions/Universal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여기에 더해 주연을 맡은 안젤리나 졸리는 실로 놀랄만한 흡입력을 보인다. [툼 레이더]를 위시한 일련의 오락영화에 출연하면서 워낙에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놓은지라 [체인질링]이 졸리의 연기변신이니 어쩌니 하며 언론에서는 호들갑을 떨지만 실상 그녀가 [처음 만나는 자유]를 통해 아카데미 여우 조연상을 받은 연기파 배우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 하다. 얄궂게도 [처음 만나는 자유] 이후 또한번 정신병원에 갇히는 캐릭터를 맡은 졸리는 애당초 '연기력'으로 인정받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이번 아카데미의 가장 유력한 여우주연상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영화가 2시간 20분이 넘는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은 것은 교차편집 -크리스틴이 수난을 당하는 과정과 유괴범의 단서를 쫒는 형사의 수사과정, 그리고 별개의 재판과정이 서로 번갈아 가며 비춰지는- 의 힘이다. 백전노장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크리스틴과 경찰의 갈등을 다룬 드라마에 더해 스릴러물에나 어울릴법한 '와인빌 양계장 살인사건’(Wineville Chicken Coop Murders)'이라는 다소 이질적인 성격의 소재를 정통적인 드라마 장르에 충실하도록 양립하는데 성공하며 노련한 연출력을 과시했다.

ⓒ Malpaso Productions/Universal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또한 [체인질링]은 특정 인물을 영웅화하는데 큰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는다. 이는 그간 수없이 많은 은막 가운데 아메리칸 히어로로서 자기 자신을 투영시켰던 과거에 대한 일종의 자기반성이자 현실적인 영웅상에 대한 노년의 깨달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마 곧 개봉할 [그랜토리노]에서도 이런 시각은 계속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그밖에도 정치적으로 민감할법한 주제들이 [체인질링]에는 제법 많이 담겨있으나 어디까지나 그런 점들은 영화를 보는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겠다. 이런저런 복잡한 사색거리를 떠나서라도 [체인질링]은 영화 자체로서도 충분한 재미와 감동을 보장한다. 이런 작품이 사람들의 무관심속에 극장에서 조기종영하는 모습을 지켜본다는 것은 한명의 리뷰어로서 무척이나 가슴아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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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2009년 2월 16일자 미디어몹의 메인기사에 선정되었습니다.

* [체인질링]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Malpaso Productions/Universal Pictures.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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