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그러니까 1월 20일에 '출동! 한국의 슈퍼히어로'라는 주제의 기획전이 열리고 있는 한국 영상자료원 내의 시네마테크에 참석했습니다. (영상자료원에 대해 알고 싶으신 분은 이곳을 클릭) 특별히 어제 퇴근시간을 앞당겨 시네마테크를 찾은 이유는 전설적인 한국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홍길동]의 상영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고전열전' 코너의 리뷰를 위해 꼭 봐야하는 작품이기도 하거니와 아직 DVD로도 나오지 않은 희귀한 작품인데다, 이런 기회는 정말 흔치 않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참석을 해야 했지요.
막상 시네마테크를 가니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평일 낮인데다 이미 40년이나 지난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몇이나 될지를 생각해보면 그리 놀랄일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아쉬운건 사실이더군요. 티켓을 발권받아 잠시 주위를 둘러보는데, 한 노신사분께서 어떤 여성분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시고 계신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 신사분, 어디서 많이 뵌 분 같은데 선뜻 확신이 서질 않아 그냥 극장안으로 들어갔습니다.
ⓒ pennyway.net All rights reserved.
근데 이게 왠일입니까. 상영시간이 되자 아까 그 여성분께서 스크린 앞으로 나가서 마이크를 잡더니, 원래 일정에는 없었던 것이지만 특별히 [홍길동]의 총감독을 맡으신 신동헌 감독님의 인사말이 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알고보니 여성분은 이번 기획전을 담당하신 분이었고, 아까의 그 노신사는 신동헌 감독님이었던 것이죠. 사실 혹시나... 하긴했습니다만 확신이 안서서 그냥 지나쳤던 건데 이럴줄 알았으면 아까 이것저것 많이 물어볼것을. 후회가 밀려오는 순간이었습니다.
뭐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다시금 [홍길동]의 상영회를 하는 것에 대한 소감과 함께 작품을 만들 당시의상황에 대해 설명하시는 신 감독님의 짧막한 인사말은 정말이지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더 자세한건 나중에 '고전열전' 시간을 통해 다뤄보겠습니다만 아무튼 일본에서 우여곡절 끝에 찾아낸 필름을 통해 40여년만에 자신의 분신같은 작품을 접했을 때의 그 느낌을 말씀하는 부분에서는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 지더군요. 인사말이 끝나고 신동헌 감독님은 관객들과 함께 좌석에 앉아 [홍길동]을 감상하셨습니다.
ⓒ pennyway.net All rights reserved.
[홍길동] 작품 자체는 기대 이상으로 좋았습니다. 색감은 떨어지지만 리마스터링 상태도 비교적 양호하고 거의 완전판에 가까운 작품이 35mm 프린트로 상영되다니... 한국 애니메이션의 전설적인 작품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다는 것에 대한 심리적인 상승효과도 있었지만 그 당시 열악한 환경에서 저 정도의 퀄리티를 뽑아낼 수 있었던 스탭들의 열정이 느껴지는 작품으로서 과연 걸작이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었습니다.
상영이 끝나고 신 감독님께 달려가 정말 잘 봤노라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감독님께서 정말이냐고, 요즘 사람들이 보기에도 괜찮았느냐고 기뻐하면서 물어보시더군요. '요즘 작품들과 비교해 기술적인 한계는 분명 있을테지만.... 구관이 명관이라고 옛날 작품이 더 재밌는건 사실 아니냐'며 자신의 작품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시는 걸 보면서 정말 흐뭇한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울러 재밌게 봐줘서 고맙다고 말씀하시는 감독님께 늘 건강하시라는 인삿말을 끝으로 짧지만 아쉬운 거장과의 만남을 마쳤습니다.
아울러 이번 기획전 담당자 분께 [홍길동]의 DVD 상품화에 대한 의견을 드렸더니, 안그래도 판권문제 때문에 시간이 걸리고는 있는데 그것만 해결되면 [호피와 차돌바위]와 함께 DVD로 내놓을 계획이라고 말하더군요. (언제나 그놈의 판권이 문젭니다. ㅡㅡ+) 출발선상은 비슷한데 오늘날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진 재패니메이션과의 격차를 생각해보면 가슴 한 켠이 먹먹해 집니다.
[홍길동]이 끝나고 저녁 8:00부터는 김청기 감독의 괴작, [바이오맨] (관련리뷰 바로가기)의 상영회와 더불어 익스트림 무비의 다크맨, 김종철 편집장께서 참여하는 관객과의 대담 코너가 있었습니다만 시간이 너무 많이 남은 관계로 그만 발길을 돌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기다리더라도 남아서 다크맨님과 오랜만에 얼굴도 보고 대화도 나웠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끝으로 오늘의 수확물입니다. 먼저 '출동! 한국의 슈퍼히어로' 팜플렛. 3단으로 접히는 전단지이지만 꽤 두꺼운 재질에 나름 정리가 잘 되어있어 만족스럽습니다.
ⓒ pennyway.net All rights reserved.
두 번째로 지난번에 놓친 기획전인 '한국 무술영화 열전' 팜플렛입니다. 이건 총 12페이지의 올컬러 책자로 구성된 것으로서 한 시대를 풍미한 국내 무술배우들에 대한 설명과 함께 그 대표작들에 대한 정보가 소개된 소장가치 200%의 매우 훌륭한 영화 자료입니다. (아직 몇부 남아있으니 생각있는 분들은 빨리 Get 하시길...)
ⓒ pennyway.net All rights reserved.
마지막으로... 거장 신동헌 감독님의 친필 사인입니다. 급하게 받은 거라 영화 티켓에 사인을 받았지만 나름 의미가 있지 않습니까? 집안의 가보로 물려야겠습니다^^
ⓒ pennyway.net All rights reserved.
이상입니다. 사실 건담의 아버지인 토미노 요시유키나 마징가 월드의 나가이 고를 만났다 한들, 신동헌 감독님과의 만남보다 더 설레이진 않았을 겁니다. 조금만 더 경황이 있었다면 이것저것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그나마 오늘 이렇게 짧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아직 한국 영상자료원에 가보지 못한 분들은 시간되시면 꼭 가보시길 권합니다. 돈주고도 살 수 없는 값진 영화들을 무료로 감상하는 것은 물론 수많은 자료들을 접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보고(寶庫)니까 말이죠.
* 본 포스트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pennyway.net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영화에 관한 잡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치와의 대결을 그린 영화 10선 (38) | 2009.02.03 |
---|---|
영화 [작전] 시사회 무대인사 현장 스케치 (16) | 2009.01.29 |
자연, 이웃이거나 또는 적이거나 - 이웃집 토토로와 모노노케 히메의 비교 (24) | 2009.01.16 |
신년특집 (2부) 2009년을 강타할 17편의 속편들 총정리 (54) | 2009.01.07 |
신년특집 (1부) 2009년 국내외 기대작 총정리! (42) | 2009.0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