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림진강 맑은 물은 흘러흘러 내리고..물새들 자유로이 넘나들며 날건만, 내 고향 남쪽 땅 가고파도 못가니..림진강 흐름아 원한 싣고 흐르느냐 -
얼마전 독도영유권 문제로 한일간의 관계가 꽤나 껄끄러웠다. 잊을 만하면 터져나오는 이 문제는 풀릴 만하면 다시 원위치 되는 반일감정에 양념같은 화제다. 또한 지난 WBC에서 느낄 수 있었듯이, 한일간 스포츠에서는 무조건 일본만은 이기고 봐야 한다는 생각도 뿌리깊은 반일감정과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다. 일본은 우리에게 있어 경쟁관계 그 이상의 의미가 분명히 있다. 이것이 민족적인, 국민적인 정서의 현주소다.
이러한 반일감정이 극우적인 생각과 만나면 극도의 위험한 생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영화 [유령]에서는 일련의 극우주의자들이 일본을 도발시키기 위해 일본 잠수정을 침몰시키고 본토에 핵미사일 공격을 감행한다는 엄청난 발상을 담고 있으며,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 역시 한일간의 무력충돌이라는 가상의 전쟁시나리오를 담은 내용이어서 화제가 된 바 있다. 이렇듯 반감이 커지면 커질수록 결국엔 무서운 결과를 부를지도 모른다.
© Sidus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 (구, 우노필름)
멀고도 가까운 나라 일본. 그렇다면 그들은 우리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을까? 여기 [박치기]라는 영화가 있다. 순 한국말인 '박치기'를 발음 그대로 제목에 사용한 이 영화는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의 시각을 표현한 매우 드문 영화다. 마츠야마 다케시의 자전적 소설 '소년 M의 임진강 (少年Mのイムジン河)'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닛간스포츠 영화대상'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는 등 일본 내에서도 상당한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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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1968년 교토를 배경으로 담고 있는데, 이 당시 일본은 2차대전 이후 국력의 회복기였고, 지구 안쪽에서는 베트남전이 벌어지고 있었으며, 한국에선 박대통령의 강력한 군부통치가 진행되는 시기였다. 이 시기에 교토에는 고향을 잃은 많은 재일한국인들이 조국의 통일을 꿈꾸며 분단이라는 큰 아픔의 원인이 되었던 일본이라는 나라에 몸담고 살아가고 있었다.
[박치기]는 히가시고의 일본 학생들이 조선고의 한인 여학생을 희롱하면서 시작된다. ( 이 대목은 다분히 일제시대 광주학생운동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던 나주-광주간 통학열차 여학생 희롱사건을 염두해 둔 듯 하다) 짗꿏은 일부 불량학생의 작은 장난이었지만 이 소식이 조선고 열혈 남아들에게 전해지자 사건은 커진다. 강력한 박치기 한방으로 이름을 날리던 조선계 학생 리안성을 필두로 한 조선인 패거리들이 몰려온 것이다. 이에 현장에 있던 가해자들은 물론 사건과 무관한 일본 학생들은 덩달아 휘말려 봉변을 당한다. 물론 이 장면들은 과장되고 코믹하게 묘사되고 있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부담스럽지 않게 표현되고 있다. © Cine Qua Non, All rights reserved.
그러나 이 사건으로 한일간 학생들의 반감의 점점 커져만 가고 이를 해결해 보고자 친선 축구시합을 제의하러 온 일본인 학생 코우스케는 때마침 음악실에서 '임진강'이란 노래를 연주하는 리안성의 동생 리경자에게 한눈에 반한다.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고 '임진강'을 연주하기 위해 기타도 구입한다. 마침내 경자에게 고백을 하게 되었을 때 경자는 말한다. "우리가 만약 교제하게 되어서 결혼까지 하게 된다면.. 당신은 조센징이 될 수 있나요?"
이 작품은 크게 두가지 시대상을 담고 있다. 하나는 위에서 언급한 조총련계 재일 한국인 학생들과 일본학생들 간의 갈등, 그리고 노래 '임진강'이 일본내에서 조차 금지곡이 되어야 했던 당시 시대적 상황을 사뭇 진지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일본인의 시각에서 조선인이 겪었던 피해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매우 인상적이고 놀랍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조상들의 죄를 후손이 그대로 짊어질 필요는 없으나 정확한 사실만큼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의지가 드러난 부분인 것이다. 우리 조차도 조상들이 겪은 시련에 대해 거의 의식하며 살지 않듯이, 그들또한 일제시대의 만행에 대한 죄책감을 얼마만큼이나 그 후손들에게 지워야 할것인가도 생각해 보게 만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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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이들이 통일에 대한 필요성을 그다지 절실히 느끼지 않는 반면에 '임진강'을 들으며 통일과 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던 그 당시 재일동포들의 심정을 제 3자인 일본인의 시각으로 그려냈다는 것은 [박치기]가 지닌 매우 독특한 가치인 것이다. 물론 그들이 100%이해 하지는 못하더라도 자기방어적인 입장에서 변명아닌 변명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충분히 멋있다. 이러한 이해가 더해져서 서로를 이해할 날이 온다면 [박치기]의 영어제목인 'We Shall Overcome Someday'처럼 언젠가는 우리가 한일간의 반감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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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국민 여동생'인 문근영이 있다면, 일본에는 사와지리 에리카가 있다고 말할 정도로 일본 국민의 사랑을 받는 아이돌 스타다. 영화 [박치기]를 통해 재일한국인 여학생을 연기한 그녀는 청순한 마스크와 더불어 성숙한 이미지를 보여주며 한때 유망주로 떠올랐으나, 언론과의 갈등을 극복하지 못한채 '사와지리 베쯔니'라는 굴욕적인 별명을 얻어가며 떠밀리듯 연예계를 은퇴했다.
*[박치기]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Cine Qua Non,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 참고 스틸: 유령(© Sidus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 (구, 우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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