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작열전(怪作列傳)

괴작열전(怪作列傳) : 북두의 권 - 한국 무협액션 영화의 결정체?

페니웨이™ 2008. 1. 2.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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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작열전(怪作列傳)  No.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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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괴작열전을 진행하면서 느낀 것은 '괴작에는 거부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뭐랄까요.. 은근히 그 실체를 확인하고 싶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는 거지요. 덕분에 많은 괴작들을 살펴보게 되었는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괴작열전에 소개된 작품 모두가 그러한 괴작반열에 오를 만한 자격을 갖춘건 아니었습니다. 단지 졸작이나 표절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작품들도 있었고, 시대적 여건상 당시에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지만 지금에 와서야 '우째 저런일이!' 하며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작품들도 있었죠.

그러나 최근 들어서야,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괴작이구나!'하고 감탄할 만한 작품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소개할 작품은 정말 한국 영화사에 있어서 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 없는, 그야말로 괴작중에서도 '킹왕짱'인 작품입니다. 신년특집으로 준비할 만큼의 가치가 있다고나 할까요. 이 작품을 구하느라 몇 개월째 청계천 비디오 가게를 뒤지고 전국 각지의 비디오 폐업세일을 쫓아다니며 갈구했던 그것은 바로 한국판 '북두의 권' 실사영화입니다.

ⓒ 대원동화 All rights reserved.


지난번 헐리우드 [북두신권] 실사영화에 대한 소개때 말씀드렸습니다만, 원작만화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렇게 다각적인 모습으로 실사화된 작품은 드물겁니다. 토니 랜들이 감독했던 [북두신권]이 느끼한 버터냄새로 범벅이 된 양키센스의 결정체였다면, 한국판 [북두의 권]은 원작의 고어틱하면서도 시니컬한 부분을 완전히 절단낸 아동용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일본의 한 오락프로인 '진실의 샘, 트라비아'에서는 이 작품을 낱낱히 파헤치며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든 전력도 가지고 있지요.


최근 헐리우드 실사판 [스피드 레이서]에 악역으로 출연하는 것이 밝혀진 G.O.D 출신의 박준형은 뒤이어 [드래곤볼]실사판에 야무치 역으로 캐스팅 된 사실이 알려지자 인터뷰 중에 “실사 영화 [북두의 권]에서 악역인 라오우로 출연하지 못한 게 아쉽다”고 말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각 영화사이트의 네티즌 평점을 보면 십중팔구는 이 작품에 대해 만점에 가까운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 영화사상 최악의 작품으로 평가받는 [긴급조치 19호]나, [클레멘타인]에는 '왜 0점이 없는거냐'고 아우성치던 네티즌들이 [북두의 권]에는 전폭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는 진풍경을 낳고 있는 것이지요. 이것이 [북두의 권]을 진정한 괴작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적어도 괴작이라면 이러한 괴현상을 동반하기 마련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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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점 만점의 행렬. 이건 진정한 걸작 아니면 괴작, 둘 중에 하나다!
 


과연 무엇이 [북두의 권]을 이토록 괴작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일까요? 두근두근 하는 마음으로 비디오 플레이어의 전원을 켰습니다.

'아~ 이런' 초반부터 먹어주는군요. 화면에 처음 뜨는 자막은 '대원동화'.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라고요? 맞습니다. 현재 대원 씨아이로 알려진 이 회사는 한때 국내 애니메이션에 투자를 했다가 최근들어 일본 애니메이션과 만화관련 판권을 거의 독점적으로 취득하다시피 하면서 관련상품을 출시하고 있는 회사입니다. 비디오 테잎도 같은 계열사인 '챔프영상'에서 출시했지요. 물론 [북두의 권]에 대한 '저작권료는 땡전 한푼도 지불하지 않은 채'로 영화화시켰습니다.

ⓒ 대원동화 All rights reserved.

대원도 이렇게 무판권으로 작품을 낼때가 있었다는 사실.


이내 영화는 '북두의 권'의 팬이라면 익히 알고 있는 원작의 초반 줄거리를 장엄한(?)나레이션으로 소개합니다. 문제는 나레이션과 겹쳐지는 실사판의 화면인데, 이제부터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진풍경이 약 1시간 20분간 펼쳐지게 됩니다. 내용은 애니메이션 [북두의 권] 극장판(1986년작)에서 가져왔는데요, 주제가까지 그대로 가져와 번안한건 도대체 무슨 깡인지..

하지만 이 주제가와 함께 펼쳐지는 주인공들의 소개화면은 은근 중독성이 있답니다. 원본 만화의 캡쳐와 주인공 배우의 모습을 비교, 대조까지 해주는 이 친철한 오프닝은 그간 어떤 실사영화에서도 시도하지 못한 참신함(?)을 선사해 주고 있습니다. 벌써부터 감동의 한줄기 눈물이 내 뺨을 타고 흘러내리더군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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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의 친철한 오프닝


그리고 또 한가지 면에서 이 오프닝은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영화속 배우 이름이나 스텝의 크레딧은 일언반구도 없이 주연 배우들의 액쑌 모션만이 주제가의 자막과 함께 흘러나오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監督 王龍 (감독 왕룡)이라는 자막이 대뜸 튀어나온다는 것입니다. 아마 전세계 어느 영화를 보더라도 영화 감독의 이름만 덜렁 소개한 채 엔딩에서도 또 한번 오프닝을 반복하는 영화는 [북두의 권]이 유일무이하지 않나 싶습니다.

명색이 '암살권'인 북두신권입니다만, 정작 라이거(원작은 '켄시로'이지만 이 작품에선 하필 해적판의 이름을 가져다 썼습니다 ㅡㅡ;;)역을 맡은 주인공은 '이소룡 흉내내기'에만 관심이 있는듯합니다. 시종일관 "아뵤~" 하는 괴성을 지르며 놀란 퇴깽이마냥 팔짝팔짝 뛰는 모습에서 겹쳐지는 것이라곤 '켄시로'의 모습이 아니라, [복수혈전]의 '규사마'였습니다. ㅠㅠ

북두의 권 ⓒ 대원동화/ 복수혈전 ⓒ ㈜이화예술 All rights reserved.

아아.. [복수혈전]이 아른거리는건 무슨 이유에서냐 ㅠㅠ


싱(역시 원작은 '신'이지만...)이나 유리아는 한 술 더 떠서 저들이 과연 배우인지 아님 스텝중의 누군가가 제작비 절감을 위해 배우를 자청한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연기력과 외모를 과시합니다. 라오우, 남두수조권의 계승자 레이 등의 캐릭터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아마도 이들과 엑스트라 모두를 계산한다해도 전체 출연자는 15명 남짓으로 추정되는군요.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영화가 끝나는 순간 저는 충격적인 사실을 또 하나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나 자신도 모르게 [북두의 권]을 엄청 재밌게 봤다는 사실을요. 이게 무슨 모란시장 개뼉다구같은 소리냐고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의외로 [북두의 권]은 '재미'가 있습니다. 물론 그 재미가 영화 자체가 가진 완성도에서 오는 재미가 아니라 다른 곳에 있긴 하지만 말이죠. 정말 어처구니 없을 정도의 싸구려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한 자세로 이소룡을 벤치마킹하는 주인공의 열연, 히로인인 유리아의 실제 모습과는 -200%의 싱크로율을 보이는 배우가 마치 그 역할이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푹 빠져들어 연기하는 모습 등을 보노라면 정말이지 그동안 김장철 김치 담그듯 묵혀놓았던 웃음이 (비록 그것이 비웃음일지언정) 한꺼번에 터져나오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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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원동화 All rights reserved.


게다가 폐차장이나 짓다 만 건물 폐허, 그리고 황량한 공사판이 세트의 전부인 영화 속 배경은 디스토피아적인 미래 세계가 아니라, 이 영화의 제작비가 얼마나 들었을까? 하는 추측을 하게 만드는 재미도 선사하지요. 심지어 영화속 소품을 보면서 "어? 저거 칠성사이다 박스아냐?"하며 숨은 PPL 광고를 찾는 재미도 있습니다. 이런 온갖 잔재미등을 느끼다보면 어느덧 영화가 끝나고 다시 처음의 오프닝이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을 겁니다. 물론 이번엔 그 오프닝이 오프닝이 아니라 엔딩이지만 말이죠. ^^

그나마 [북두의 권]에서는 몇가지 특수효과도 사용되었는데요, 원작의 특징 중 하나인 얼굴 변형씬 (북두신권을 맞은 적의 얼굴이 변형되면서 죽는...)을 재현하기 위해 사용된 화면 늘리기 기술은 애교라 치더라도, 라오우가 즐겨 사용하는 썬더 브레이크(이건 원래 [그레이트 마징가]의 필살기 아닙니까? ㅠㅠ)의 합성기술은 불과 10여년전의 한국영화가 가진 기술적 노하우를 여지없이 드러내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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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없인 볼 수 없는 안습의 특수효과


이렇듯 애초에 19금적인 요소가 가득한 원작을 과감하게 아동용으로 각색한 [북두의 권]은 한국영화사의 거의 마지막 아동영화의 계보를 잇는 작품임과 동시에 사라져가는 비디오 영화 산업의 씁쓸한 뒷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상 비주류로 취급받아 온 아동영화가 끝내 저예산, 낮은 완성도의 악순환 속에서 손가락질 받으며 역사속 뒤안길로 사라지다 시피한 이 시점에, 그렇다면 과연 그 당시 주류로 칭송받던 한국영화들은 얼마나 더 잘난 것이 있었느냐고 되묻고 싶을 따름입니다.

ⓒ 대원동화/ 복수혈전 by ⓒ ㈜이화예술 All rights reserved.


적어도 [북두의 권]은 솔직합니다. 애초부터 배우들의 유명세나 제작비에 기대지 않은채 그냥 주어진 조건에서 최대한의 효과를 끌어내기 위한 노력이 눈에 보이는 작품입니다. 비록 무판권으로 남의 나라 원작만화를 차용한 원죄는 피할 수 없다 치더라도, 주 타겟을 아이들로 선정해 승부하려했던 스텝들의 의욕이 묻어납니다. 물론 결과는 안봐도 비디오지만 말이지요.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도가 많이 시들해진 이 시점에서 일반 관객들을 위한 영화들 마저 [북두의 권]처럼 씁쓸한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랍니다.


P.S:


[북두의 권]은 미국과 한국에서만 제작된게 아니랍니다. 홍콩에서도 제작된 바 있죠. 오춘만 감독의 [북두신권]은 현재 한국의 [북두의 권]만큼이나 구하기 힘든 작품인 듯 합니다. 그래도 이제 [북두의 권]실사판은 이것으로 만족할렵니다. 더 이상의 눈물젖은 감상기는 사양할래요. ㅜㅜ



* [북두의 권]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대원동화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 북두의 권 코믹스의 고유 권리는 ⓒ 集英社 (SHUEISHA)/코아믹스(COAMIX.) and ㈜학산문화사 All Rights Reserved.에 있습니다.

* 참고 스틸: 스피드 레이서(ⓒ Warner Bros. Entertainment Inc. All rights reserved.), 복수혈전(ⓒ ㈜이화예술 All rights reserved.), 네이버 영화 평점 (NHN Corp.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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