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낙스'라는 회사를 아는가? 물론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거다. 그 유명한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만든 제작사이니 말이다. 1984년, SF관련 상품을 소규모로 판매했던 동호회 성격의 작은 회사로 시작해 3년뒤, [왕립 우주군 - 오네아미스의 날개]로 과감히 애니메이션 시장에 뛰어든 가이낙스는 [톱을 노려라: 건버스터], [신비한 나라의 나디아] 등 실험적 성향과 대담한 연출로 인정받아 애니메이션계의 혜성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 후 최고의 히트를 기록한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이어 [그남자 그여자의 사정]등 가이낙스는 어찌보면 순탄한 과정을 밟는 듯 했으나, 오타쿠적 성향에 스스로를 가둬버리는 행보를 택한다. 후속작 [프리크리]와 [마호로매틱]은 그런 가이낙스의 성향을 잘 반영하는 작품이었다. 나무랄데 없는 작화와 퀄리티를 보여주었지만 내용면에 있어서는 대중성을 배제한 그야말로 애니메이션 오타쿠들을 겨냥한 작품이 되어 버린 것이다.
ⓒ 1999 GAINAX/KGI. All Rights Reserved.
게다가 또하나의 문제가 있었다. 가이낙스의 대표적인 감독이던 안노 히데아키 감독이 새로운 작품활동보다는 에반게리온의 재활용에만 관심을 두었던 것이다. 실제로 그렇다할 히트작을 뽑아내지 못한 가이낙스는 과거의 영광에만 의존하려는 듯, 줄기차게 '사골게리온'의 상품화에만 몰두했고, 이로인해 사람들은 가이낙스의 작품을 점점 외면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톱을 노려라2: 다이버스터]가 공개됐다. 달라진 작화, 전작 [건버스터]와는 매우 이질적인 느낌으로 다가온 [다이버스터]는 초반부터 팬들의 적지 않은 원성을 들었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이같은 비판은 잦아들었고, 마침내 완결 에피소드에 이르자 매니아들은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의 전율을 느낌과 동시에 가이낙스의 뛰어난 팬 서비스에 환호성을 질렀다.
ⓒ 2006 GAINAX All Rights Reserved.
[다이버스터]를 기점으로 가이낙스는 상승세로 돌아섰다.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가이낙스는 새롭게 제작하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극장판 4부작 계획을 발표했고 곧이어 또하나의 작품, [천원돌파 그렌라간]이 공개되었을 때 시청자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건담씨드] 같은 '이단아 건담'의 장기집권이나, [신세기 에반게리온]이후 수없이 반복되어온 아류작들의 범람속에 [천원돌파 그렌라간]의 노골적인 복고풍 컨셉은 대단한 호응을 얻었던 것이다.
ⓒ 2007 GAINAX/アニプレックス/KDE-J/テレビ東京/電通 All Rights Reserved.
실제로 [천원돌파 그렌라간]은 그간 애니메이션 매니아들의 성향을 누구보다도 잘 꿰뚫어 보아온 가이낙스의 역량이 총 집결된 작품이다. 나가이 고 원작의 [게타로보]를 연상시키는 열혈 로봇물의 정서를 그대로 이끌어 왔음에도, 가이낙스 특유의 거대한 스케일과 특정 캐릭터에 연연하지 않고 등장인물 모두를 주연급으로 만드는 대단한 연출력을 자랑한다.
ⓒ 2007 GAINAX/アニプレックス/KDE-J/テレビ東京/電通 All Rights Reserved.
그에 더해 [천원돌파 그렌라간]은 기본적으로 성장 애니메이션의 성격을 띈다. 주인공 시몬의 소심한 소년시절부터 청년기, 더 나아가서는 중년 이후의 모습까지 비춰주는 이 긴 시간의 흐름을 단지 27화의 이야기 속에 모두 담아낼 정도로 전개가 타이트하며, 더욱이 시몬, 요코와 더불어 3대 주요 캐릭터인 카미나를 연재 8회만에 과감히 퇴장시키는 등 파격적이면서도 과감한 시도 역시 가이낙스답다. 물론 이들 주인공들에 더해 각각의 등장인물들이 가진 개성이 잘 살아 있는것도 큰 장점이다.
땅굴생활에서 시작해 은하를 넘나드는 전개과정이 어찌보면 황당무개하고 억지스런 부면도 없지 않지만, 모든 것이 '열혈 모드'하나로 커버된다는 사실은 [천원돌파 그렌라간]이 얼마나 시청자들의 가슴속을 활활 불태우는 작품인지 다시한번 생각나게 해준다. 그만큼 '열혈'이란 단어는 [천원돌파 그렌라간]을 결정짓는 특징이자 최고의 미덕이다.
ⓒ 2007 GAINAX/アニプレックス/KDE-J/テレビ東京/電通 All Rights Reserved.
박진감 넘치는 전투장면과 포복절도할 코미디, 그리고 각종 애니메이션에 대한 패러디와 오마쥬는 그동안 여러 가지 실험적인 작품들로 축적한 가이낙스의 노하우가 기존의 매니아(혹은 오타쿠)들을 포함해 새롭게 작품을 접하는 사람들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음을 시사한다.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 "널 믿어, 내가 믿는 널 믿는거야!" 등과 같은 주옥같은 대사가 회자되는 것도 이 작품이 이미 걸작의 반열에 들어가 있다는 방증인 것이다.
용자물이자 열혈로봇물의 한획을 그은 2007년 최대의 화제작으로 [천원돌파 그렌라간]은 가이낙스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한동안 기억될 듯 하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소년시절의 열혈감성을 제대로 느끼고 싶은 중년남성들에게도 강력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 [천원돌파 그렌라간]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2007 GAINAX/アニプレックス/KDE-J/テレビ東京/電通 All Rights Reserved.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 [천원돌파 그렌라간] 공식 사이트 : http://www.gurren-lagann.net/
* 참고 스틸: 프리크리(ⓒ 1999 GAINAX/ KGI. All Rights Reserved.), 톱을 노려라2: 다이버스터(ⓒ 2006 GAINAX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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