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작열전(怪作列傳)

괴작열전(怪作列傳) : 철인 007 - 정체성이 상실된 표절 애니메이션의 원조

페니웨이™ 2007. 12. 12.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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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작열전(怪作列傳)  No.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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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애니메이션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작품 중 하나가 바로 [독수리 5형제]라는 애니메이션입니다. '독수리 5형제가 없으면 지구는 누가 지키나?'라는 말이 유행어가 될 정도로 유명한 이 작품은 요시다 다키오의 원작 만화인 [과학닌자대 갓챠맨 (科學忍者隊ガッチャマン)]을 총 105화의 장편 TV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면서 크게 히트했는데요, 1972년에 처음 제작되었던 이 시리즈는 1978년에 52화짜리 두 번째 작품이, 1979년에는 48화로 구성된 세 번째 작품으로 각각 만들어진 바 있습니다.

ⓒ Tatsunoko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그 외에도 1978년작 극장판과 1994년에 발매된 OVA를 합치면 무려 다섯차례나 선을 보인 장수 애니메이션이지요. 2000년에 들어서는 인기그룹 SMAP이 출연한 NTT의 CF에서도 패러디 되는 등 아직도 그 인기는 대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 놀랍게도 [독수리 5형제]의 실사판을 헐리우드에서 리메이크 한다는 소식이 발표되어서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습니다.

ⓒ Warner Bros. Entertainment Inc./ ⓒ IMAGI. All rights reserved.

2010년 개봉예정인 실사판 독수리 5형제, [갓챠맨]


자, 이쯤되면 이 괴작열전이란 코너에 [독수리 5형제]를 언급하는걸 보니 뭔가 괴작스런 실사영화라도 만들어진 적이 있나보다 하실텐데요, 안타깝게도 그 예상이 살짝 빗나갔습니다.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한국의 '어떤 애니메이션'입니다. 그것도 당당히 극장에 걸렸던 작품이지요. 힌트를 너무 많이 드렸나요? 네, [철인 007]이란 작품이 이번 괴작열전의 주인공입니다.

ⓒ 동아광고. All rights reserved.

안습의 '독수리 4형제'. 누구냐 넌?


사실 제목부터가 '응? 제임스 본드를 주인공으로 한 히어로 물인가?' 하는 엉뚱한 호기심을 유발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철인 007]은 무려 '로봇 애니메이션'이랍니다. 1976년 당시 전국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로보트 태권브이]의 상한가에 편승한 또한편의 로봇물이지요. 놀랍게도 1976년 12월에 개봉해 태권브이 2편인 [우주작전]과 맞붙었음에도 관객들의 반응은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고 합니다. 저도 어렸을 때는 참 재미있게 봤다는 기억을 가지고 있어서 이번에 느긋하게 감상해보았는데, 역시나 어렸을 때의 그 느낌은 전혀 되살아나질 않더군요. 이제부터 그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추억의 신문광고 (출처 미상), 더블 하켄을 들고 설치는 철인 007의 압박.


제목을 007에서 따온 것으로 시작해 [철인 007]은 정말 국적불명의 '듣보잡 애니메이션'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선 서두에서 언급한 [독수리 5형제]를 노골적으로 카피한 점을 들수 있겠는데요, 사실상 코스튬이라던가 캐릭터 디자인을 완벽하게 따라한, 이건 도저히 빼도 박도 못할 아류작, 아니 도작(盜作)이라고 해야겠지요. 그나마 양심은 있었는지 '독수리 5형제' 중에서 한명을 빼는 바람에 '독수리 4형제'가 되고 말았습니다. ㅡㅡ;;;

ⓒ 동아광고. All rights reserved.

회심의 샤방샤방한 변신장면.


이 '독수리 4형제'는 세계정복을 꿈꾸는 수수께끼의 집단 '검은 나비단'(이름 한번 참.. ㅡㅡ;;)의 음모에 맞서 싸우기 위해 창설된 M특공대 (아마도 007의 국장인 M을 따서 이렇게 이름을 붙인듯.. ㅡㅡ;;) 소속의 대원들입니다. 이들은 '독수리 5형제'의 모선인 '갓 피닉스'가 아닌 '철인 007'이란 변신로봇을 조종하는데요, 이 '철인 007'이란 로봇이 또 가관입니다. 무려 [대공마룡 가이킹]의 대가리에 [그렌다이져]의 몸통을 갖다붙인 '괴기스런 로봇'인것입니다. 한번 직접 보시지요.

대공마룡 가이킹(ⓒ テレビ朝日・東映アニメーション All Rights Reserved.), 그렌다이져(ⓒ Toei(東映) Animation. All Rights Reserved.)


느낌이 어떠십니까? 갑자기 심란해지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악의 무리 '검은 나비단'의 요새는 대놓고 대공마룡 가이킹의 전함형태를 띕니다. 이렇게 제목부터 시작해서 도대체 '오리지널리티'라곤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이 작품이야말로 한국 애니메이션사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어온 디자인 도용의 원조격인 작품인 것입니다. 아마 요즘 이런 작품이 만들어졌다면 난리가 났을겁니다. 뭐 하긴 [파이널 판타지7 ;AC]를 뻔뻔스럽게 베낀 모 가수의 뮤직비디오가 아직도 나오는걸 보면 여전히 갈길이 멀다는 생각이 드는게 사실이지만요.

ⓒ 동아광고. All rights reserved.

감독이 007영화를 어지간히 좋아하는 듯. 007식 무기가 등장하는 자동차 추격씬.


그러나 이러한 디자인의 도용문제를 뒤로 하고서라도 [철인 007]을 보면서 더욱 안타까운 점은 전혀 참신하지 않은 스토리 구조입니다. 검은 나비단의 암살자 X-2가 주인공 준이를 사랑하면서 조직을 배신하는 설정은 이미 [로보트 태권브이]의 메리라는 캐릭터를 통해 써먹은 것이며, 심지어 신파조로 끝나는 그녀의 최후마저도 전혀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청기 감독의 [로버트 태권브이]는 비록 로봇 디자인의 독창성 시비에 얽혀있긴 하나, 나름 휴머니티가 풍기는 독자적인 스토리를 가졌다는 면에서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 동아광고. All rights reserved.


어쨌거나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텐데요, 사실 그게 그리 간단한 문제만은 아니랍니다. 창작 애니메이션에의 도전을 두려워 한 나머지 일본작품 베끼기에만 급급한 한국 애니메이션계의 문제점은 결국 해결되지 못한채 급기야는 하청업으로 전락하여 세계 1,2위를 다투는 일본 애니메이션과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큰 격차를 만들고야 말았습니다.

ⓒ 동아광고. All rights reserved.


물론 이러한 상황은 작가들의 창의적인 생각을 억압하고 어린이들의 애니메이션마저 반공 교육에 이용한 한국의 정치상황과도 무관하지 않겠습니다만, 이러한 이데올로기적인 변화가 어린이들의 유일한 낙인 만화에까지 그 영역을 확대했어야만 했나 하는것이 이 괴작애니를 보면서 들었던 가장 씁쓸한 생각이었습니다. 다시 동심으로 돌아가 [철인 007]을 접한다면 또 어떤 다른 느낌이 들런지는 모르겠으나, 이미 기성세대에 가까워진 저로서는 현실의 아픔만이 떠오르는군요.


P.S:

ⓒ 삼정기획. All rights reserved.


사실 서두에서 언급하면서 빼놓았습니다만, 실은 한국에서도 1980년에 극장판 애니메이션 [독수리 5형제]를 만든적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작화의 퀄리티가 원작과 동일하지만 미방영 작화가 사용되었고, 더군다나 결말과 플롯은 오히려 일본판 [독수리 5형제]를 능가한다는 전설을 남긴 미스테리한 작품입니다.


* [철인 007]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어느 제작사에 있는지 현재 확인이 불가능한 상태임으로 표기를 생략합니다.

* 참조 스틸:  과학닌자대 갓차맨(ⓒ Tatsunoko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 갓차맨(ⓒ Warner Bros. Entertainment Inc./  ⓒ Weinstein Company. All rights reserved.), 대공마룡 가이킹(ⓒ テレビ朝日・東映アニメーション All Rights Reserved.), 그렌다이져(ⓒ Toei(東映) Animation.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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