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트], [콜래트럴], [마이애미 바이스]로 남성중심의 액션장르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승화시킨 마이클 만 감독. 딱히 다작활동을 하지 않아 그의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는 않지만 이번에 그가 제작한 [킹덤]을 통해 어느정도의 갈증은 해소시켜줄 듯 하다. 이번 [킹덤] 리뷰는 다른 리뷰들과는 다른 형식으로 진행해 볼까 한다.
1.우선 스토리를 소개해 볼까?
[킹덤]의 오프닝은 미국과 중동의 관계에 대해 짧게 브리핑하며 시작된다. 세계 제 1위의 산유수출국 사우디 아라비아와 미국의 우호관계 형성과정, 석유를 바탕으로 성장한 미국의 국력, 그리고 그에 반대해 온 반미 세력과 테러리즘의 확산.... 영화는 바로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 미국과 이슬람의 관계에서 출발한다.
ⓒ 2007 Universal Studios. All rights reserved.
사우디 아라비아 내의 미국인 거주지역에서 사상 최악의 테러사건이 발생한다. 희생자들 중에는 아이와 여자들도 다수 있었고, 사건현장에 남아있던 FBI 요원과 병원관계자들도 포함되었다. 동료의 죽음과 무차별 테러의 악랄함에 분개하는 FBI 요원 플러리(제이미 폭스)과 동료들은 사건 현장으로 들어가 테러의 배후를 파헤치려는 강한 의욕을 보이지만 정부에선 정치적 입장을 고려해 난색을 표한다.
플러리는 사우디 대사와의 뒷거래를 통해 비공식적으로 사우디에 입국하는 방법을 택하고, 이렇게 선발된 4명의 FBI요원은 사우디 경찰의 협조하에 공조수사를 해내간다. 그러나 문제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현지 상황이 미국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었다. 이제 FBI요원과 사우디 경찰의 목숨을 건 수사가 시작된다.
2.마이클 만 '제작' 영화라는데, 그가 감독한 작품과는 어떤 차이가?
일단 [히트] 이후 분명해진 마이클 만의 트레이드 마크는 아무래도 실전을 방불케하는 사실적인 총격전일 것이다. 이는 [콜래트럴]이나 [마이애미 바이스] 뿐만 아니라 그의 초기작인 [비정의 거리]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킹덤]도 예외는 아니다. 중반 이후에 펼쳐지는 실감나는 총격씬은 그의 이전작들에 비해서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 사실감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 2007 Universal Studios. All rights reserved.
또한 마이클 만의 장기인 대도시의 야경묘사에 있어서는 비록 [킹덤]의 주 무대가 사우디 아라비아라는 외국이긴 하지만, 사우디의 왕궁을 중심으로 펼쳐진 도시의 야경을 원거리샷으로 잡아낸 볼 만한 장면들이 다수 등장한다. 아마도 [콜래트럴]에서 배우와 감독으로 일한 바 있는 피터 버그가 이번에 감독직을 맡으면서 이같은 마이클 만 감독의 연출 기법을 많이 전수받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밖에도 영화의 스타일은 '철저히' 남성위주의 마초적 에너지를 지닌다. 때문에 적지 않은 여성관객이 이 영화의 시사회때 '지루하다'는 느낌을 보였는데, 눈을 말똥말똥 뜬채로 스크린을 바라보는 남성관객과는 매우 대조적인 현상이었다. 영화의 톤이 전반적으로 건조한 느낌을 주는것도 마이클 만의 스타일을 드러내는 것이다.
ⓒ 2007 Universal Studios. All rights reserved.
따라서 [킹덤]은 마이클 만의 영화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결국엔 그의 이름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연출 스타일과 테마, 분위기 이런 모든 이정표가 그를 향해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3.이슬람 문명과 미국의 충돌을 어떤 식으로 다루고 있는가?
사실, 세계적으로도 민감한 이슈이고 이러한 작품이 미국인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부담을 준다. 역시나 [킹덤]도 미국인의 관점에서 그들의 입장만을 대변한다는 오류를 지닌다. 사상 최악의 테러라는 사건을 던져놓고도 왜 테러리스트들이 그러한 테러를 저질렀는지, 근본적인 이유와 명분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킹덤]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그러한 테러는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며, 심지어 '법의 심판' 없이도 즉결 처형받아 마땅한 범죄라는 사실만을 각인시킨다. ⓒ 2007 Universal Studios. All rights reserved.
이는 반미적 성향을 가진 관객이나 이슬람 문명국의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불편한 부분이다. 석유에 대한 미국의 탐욕은 이미 전세계가 알고 있는 마당에 원인제공자에 대한 언급은 일언반구 없이 무조건 이슬람 세력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 것은 부시정부의 일방주의 외교정책과 다를바가 무엇이겠는가. 실제로 이 영화에 대해 한 평론가는 "헐리우드는 이슬람 세계가 미국을 싫어할 또 하나의 이유를 방금 내놓았다"고 말했다.
다행히 영화의 마지막 대사는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서로를 "모두 죽여 버리겠다"는 각각의 입장은 이러한 비극이 어느 한쪽이 아닌 양쪽 모두의 독선이며, 양보와 타협, 이해와 관용이라는 정신이 없는한 악순환은계속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결국 '빈 라덴'을 잡아 죽인다고 해서 테러가 한순간에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 아닌가. 이런 현실적인 메시지는 그나마 [킹덤]에서 건질 수 있는 가장 객관적인 부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사우디 형사와 FBI 요원들이 처음에 가졌던 반목감을 없애서 합심해서 수사를 진행하는 대목도 이해와 화해라는 덕목을 부각하는 부면이기도 하다.
4.중동에 간 FBI라.. 좀 억지스런 설정인데?
사실 국외 활동과 관련된 일들은 CIA의 관할이다. FBI는 미국내의 사건을 해결하는 수사기관으로 지방경찰이 해결하지 못하는 사건 등이 발생할때 미국 연방에서 파견하는 상위수사기관이다. 그러나 해외의 테러리스트가 관련된 수사는 FBI에서 개입하는 것으로 영화에 설명되어있다. 실제 해외에 파견되었을때 수사권을 갖게 되는지 역시 의문이긴 하지만 고증에 철저한 마이클 만이 이 영화에 실제 관여했다면 이는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 2007 Universal Studios. All rights reserved.
그러나 [킹덤]의 억지스러움은 FBI가 타국에서도 마치 "국제경찰 (인터폴)"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며, 공조수사의 주체가 사우디 경찰이라고는 해도 해당 지역의 경찰보다 FBI의 수사력이 한수 위라는 식의 설정은 역시 제 3자인 우리 입장에서 보자면 오만함의 극치일 수밖에 없다.
사실 예전에도 비슷한 설정의 작품이라면 있긴 있었다. 미국의 형사가 일본에 건너가는 내용을 담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랙 레인]. 필자가 아주 좋아하는 작품 중에 하나다.
5.영화의 장르를 규정하자면?
[킹덤]은 장르를 딱히 규정하기가 애매한 특수성을 지닌다. 겉보기엔 영락없는 액션물이긴 하지만, 범인을 추적하는 수사과정이 [CSI]시리즈에 못지 않게 상세히 묘사되고 있어서 어쩔때는 수사드라마로 보여지기도 하지만, 후반부 들어서 벌어지는 총격전은 단순한 액션영화의 틀을 벗어나 [블랙호크다운]식의 전쟁물을 방불케 하는 현장감을 보여준다.
또한 주요 테마인 중동-미국 간의 현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다분히 사회성 짙은 드라마의 성향도 드러난다. 따라서 [킹덤]은 매우 복잡적인 장르를 액션물이라는 틀안에 가두고 있을 뿐이다. 실제로 관객들 중에는 "설마 이런 스타일의 영화일줄은 몰랐다"는 반응도 있었는데, 이는 [킹덤]의 포스터를 보고 처음 접한 느낌과 영화의 실제 방향이 매우 다를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6.특별히 인상적인 장면이 있는가?
영화 전반적으로는 팽팽한 긴장감이 말그대로 '넘쳐 흐른다'고 말하고 싶다. 언제 어디서 폭탄이 터지거나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그런 분위기가 영화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관객이 그런 분위기에 동화될 수 있다는 것은 [킹덤]의 연출이 썩 잘되었다는 방증이다. ⓒ 2007 Universal Studios. All rights reserved.
특히 [킹덤]의 홍일점으로 출연한 제니퍼 가너는 [엘리어스]나 [엘렉트라]에서 보여준 강인한 전사형 이미지를 그대로 활용하고 있는데, 마지막에 테러범과 1:1의 대결을 하는 장면은 마치 [본 얼티메이텀]의 액션씬에 버금가는 치열한 육박전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녀가 마침내 적을 해치우는 장면에서는 한줄기 땀이 빰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끼는 분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참고로 필자 옆에 앉았던 한 여성관객은 문자그대로 이장면에서 숨넘어가더라) 또한 고속도로에서 습격을 당하는 장면도 (요즘 추세인지는 몰라도) 꽤나 실감나는 장면이니, 꼭 대형스크린으로 접하시길 권한다.
7.총평을 하자면?
[킹덤]에는 단점이 많다. 하지만 단지 오락영화의 관점에서 볼때 [킹덤]은 잘 만든 영화다. 앞서 언급했듯이 장르적인 특성을 타지 않고 골고루 보여주는 재미를 선사하며, 배우들의 연기도 썩 좋다. 오히려 작년 [마이애미 바이스]의 밋밋함에 실망한 사람이라면 [킹덤]에서 충분한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 당신이 '미국만세'의 어쩔 수 없이 느끼한 자화자찬을 견딜 수만 있다면 말이다.
* [킹덤]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2007 Universal Studios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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