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또는 정계를 무대로 다룬 영화는 대체로 재미있다. 일반인들에게는 알려지지 않는 그들만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암투와 배신, 음모의 과정은 평상시 사람들이 품고 있던 정계의 뒷모습을 파고들기 때문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다룬 [대통령의 음모]나 존 F. 케네디 암살의 진상을 파헤치는 [J.F.K], 미소 양국이 일촉측발의 상황에 치닫는 쿠바 미사일 사태를 그린 [D-13] 등 대부분의 정치적 소재를 다룬 영화들은 관객들의 궁금증을 해소함과 동시에 그럴싸한 서스펜스를 제공함으로 영화적 재미를 갖추고 있다.
© Boris Yaro of the Los Angeles Times.
하루동안에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담다보니 사실상의 주연배우는 없는 셈이다. 각자 저마다의 사정을 가진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나 소소한 에피소드가 말 그대로 '나열'되고 있으며, 각 인물간들의 연관성도 그다지 크진 않다. 이 인물들이 겪게 되는 공통적인 이벤트는 바로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언급되는 '바비의 암살'일 뿐이다.
오히려 영화는 바비의 죽음보다도 그가 변화시키려 했던 미국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 당시 미국의 삶. 이민자들이 겪는 차별적인 설움이나, 호텔 전화 교환원으로 일하는 저소득층의 스트레스, 마약에 빠져 파탄에 이르는 히피 등 이들 캐릭터는 당시 미국인들의 삶 하나하나를 대변하는 상징성을 띈다. 그리고 이들이 가졌던 문제들에 관심을 가졌던 바비가 총에 맞아 죽음으로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슬퍼했는가를 관객들이 감정이입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 Weinstein Company. All rights reserved.
배우출신 감독 에밀리오 에스테베즈의 역량탓인지, [바비]에는 수많은 주연급 스타들이 총동원되는데,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캐스팅이라고 밖엔 달리 표현할 수가 없을듯하다.
© Weinstein Company. All rights reserved.
사실 [바비]는 로버트 F. 케네디의 암살사건을 다루었다기 보다는 그의 죽음을 영화속의 장치로 사용했을뿐, 전체적인 내용은 다소 산만하기까지 하다. 미국인들, 특히 1960년대의 격동을 경험했던 -마틴 루터 킹 암살, 베트남 전쟁, 말콤 X 암살, J.F.K 암살, R.F.K 암살 등- 사람들의 정서에 철저히 맞춰진 영화임으로 대중적인 취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으나 다시는 보지 못할지도 모를 스타들의 총출동하는 모습이나 바비의 최후가 어떤 상황에서 발생했는지 궁금했던 분들은 비교적 재미있게 볼 수 있을 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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