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만든 영화는 많다. "잘 만들었다" 라는 것의 기준이 볼거리나 눈요기에 맞춰진 것이든, 아니면 잘 짜여진 플롯과 이야기에 맞춰진 것이든, 아니면 빌드업이 탄탄한 캐릭터에 초점을 맞춘 것이든 고만고만한 영화들의 홍수 속에서도 재미를 주는 영화는 여전히 많다.
하지만 가슴을 뜨겁게 달구는 영화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흔히 수작이라고 생각하는 영화들은 간간히 보게 되어도 가슴이 끓어올라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불끈 쥐게 만드는 그런 영화를 본 게 언제 인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근데 최근에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그런 영화를 만났다. 넷플릭스, 그리고 대만영화를. 제목은 다소 촌스런 [맵고 뜨겁게]다.
이 영화는 안도 사쿠라 주연의 일본영화 [백엔의 사랑]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원작의 명성도 명성이지만 현재 일본 영화계의 대세 배우라 할 수 있는 안도 사쿠라라는 걸출한 여배우의 존재감이 단연 돋보였던 작품이기에 이를 넘어설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기우다. 단언컨데 [맵고 뜨겁게]는 웰메이드 리메이크의 정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원작이 지닌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리메이크만의 독특한 페이소스를 가미해 리빌드를 완성했다. 원작이 귀차니즘에 매몰된, 개인의 문제에 한정된 인간의 이야기였다면, [맵고 뜨겁게]는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고 때론 이용하며 살아가는, ‘인간관계’에 얽힌 사람의 이야기로 관객이 느끼는 감성의 방향을 살짝 틀었다.
내용 자체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뚱뚱해서, 그리고 여린 마음 때문에 세상과 등지고 가족에게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한 여인. 절친한 친구에게 애인을 빼앗기고, 친동생에게 온갖 모멸감을 주는 말을 듣는 것에 폭발해 집을 나간다. 허나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홀로서기를 하려 해도 늘 손해만 보는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해주는 사람은 없다. 결국 그녀는 그런 자신과의 싸움에서 단 한 번이라도 이겨보기 위해 권투를 시작한다.
얼핏보면 원작과 비슷한 흐름이긴 해도, 리메이크인 [맵고 뜨겁게]를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건 뚱녀인 주인공이 보여주는 피지컬의 드라마틱한 변신 덕분이다. 그 유명한 [록키]의 BGM이 흘러나올 땐 순간적으로 웃음벨이 울리지만 그것도 잠시, 곧이어 탄식을 금치 못하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CG로 해결 가능한 요즘 세상에서 기대 이상의 감동을 주는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데, 그 점은 영화를 직접 보고 나서 크래딧이 뜰 때 직접 확인하길 권한다.
초중반은 잔잔한 유머와 더불어 다소 고구마 같은 전개를 보여주지만, 중후반부 몰아치는 폭풍과도 같은 역전 드라마는 돈이 아깝지 않을 만큼 맵고 뜨겁다. 가장 놀라운 건 주연을 맡은 자링이 감독을 겸했다는 것이다. 영화라는 매체의 기적이란 바로 이런 영화에서 발휘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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