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빙의 맛 No.4
어렸을 땐 로보트에 환장하고… 뭐 우리 어렸을 때야 [트랜스포머] 같은 실사영화가 나올리 만무했으니 상대적으로 비슷한 류의 “high-technology vehicle” 장르가 인기를 끌었죠. 가령 [출동! 에어울프] 라든가 [전격 Z작전]이라든가 아님 [검은 독수리] 같은 작품들은 항상 꼬꼬마들 사이에서 화두가 되곤 했어요.
특히 [출동! 에어울프]는 특수 헬리콥터를 이용한 액션 활극이 대단한 관심을 끌었는데, 사실 이 장르의 작품으로는 또 다른 경쟁자(?)가 있었어요. [출동! 에어울프]가 안방 TV의 강자였다면 극장의 강자는 바로 [블루썬더] 였지요. 존 바담 감독의 1982년작 [블루썬더]는 전투형 헬기를 소재로 한 경찰영화로 TV 시리즈인 [출동! 에어울프]와는 다른 스케일에 극장 영화가 주는 특유의 쫄깃함이 있던 작품이었어요. (에어울프 보다 이게 원조...)
국내에서는 1984년 연흥극장과 국도극장에서 동시개봉했는데, 사실 이 작품은 안타깝게도 “국민학생 관람불가”등급을 받아서 원칙적으로는 국딩 아이들이 볼 수가 없던 작품이었죠. 그럼에도 동네 동시상영관이나 비디오 테잎, 유선방송 등을 통해 암암리에 이 작품을 봤던 아이들은 자랑스럽게 자신들이 봤던 블루썬더의 활약상을 마치 영화를 보듯 드라마틱하게 설명해주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아이들은 마징가 vs. 태권브이 마냥 에어울프 vs. 블루썬더에 대한 논쟁도 즐겨했던....
그러다 세월이 흘러 국딩 꼬꼬마들이 중딩 형아가 되었을 무렵인 1989년 2월 7일에 특선영화로 지상파 방송을 타게 됩니다. 방영명은 블루"선"더(......) 물론 국민학생들이 보아서는 안될 장면들은 적절히 검열삭제가 이뤄졌고요.
얼마전 넷플릭스를 보니 [블루썬더]가 올라와 있는데, 놀랍게도 우리말 더빙이 포함되었더라고요. 성우진까지는 확인을 못했는데, 뭔가… 말투라던가 느낌이 예전과는 달라서 조금 당혹스러웠던….
1989년 첫 방영 당시 주연인 로이 샤이더의 목소리는 김종성 성우가 담당했습니다. 원래 [죠스]의 방영 당시 로이 샤이더의 담당성우는 송두석 성우였는데, 당시의 느낌으로는 김종성 성우의 음색이 송두석 성우와 상당히 흡사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실제로 이 두 분의 목소리를 꽤 오랫동안 헷갈려했습니다. 일례로 [맨하탄의 사나이]에서도 에드워드 우드워드의 목소리를 김종성 성우가 담당해 능글맞은 연기를 보여 줬는데, 같은 배우의 또 다른 영화에서는 송두석 성우가 캐스팅되었거든요.
어찌되었건 로이 샤이더의 목소리로 김종성 성우가 캐스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프렌치 커넥션]의 초기 방영 당시에도 진 해크먼은 유강진 성우가, 로이 샤이더는 바로 김종성 성우가 더빙을 맡았었지요.
김종성 성우는 베테랑급 원로 성우이지만 의외로 외화 더빙은 잘 안하셔서 대중들에겐 다큐멘터리 [격동 50년]의 나레이터로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출연작이 많진 않지만 외화와 미드에서 주로 폴 뉴먼과 패트릭 스튜어트의 목소리를 맡았었는데, 최근에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에서 까메오 출연한 패트릭 스튜어트의 성우로 등장해서 실로 간만에 외화에서 실력을 발휘하셨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어요. 주인공이 파트너를 잃고 경찰업무까지 배제되서 블루썬더 파일럿 자격을 빼앗긴 상황에서 홀로 블루썬더에 앉아 죽은 파트너의 녹음된 목소리를 들으며 씁쓸한 웃음을 짓는 장면인데, 그 때 정비사 한명이 창문을 두드리며 빨리 나오라고 재촉하죠. 그 때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총을 들이대며 “야 임마, 나 말이야?”하는 장면이 왜 인지 지금까지도 머릿속에 또렷합니다. 넷플릭스에서는 이 장면을 “나한테 말한거냐. 짜샤?”로 번역했더군요.
이 작품은 1994년과 1995년에 SBS에서 재더빙 방영했는데, 이 때는 담당성우가 송두석 성우였습니다. 두 성우분의 비슷하지만 다른 음색을 비교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안타깝게도 저는 SBS 방영 당시 두 번 다 기회를 놓쳤네요. ㅠㅠ
P.S: SBS 영화특급 버전의 [블루썬더] 더빙판 있으신 분 연락을 기다립니다~ ♡
[블루썬더] 최초 방영 정보 : 1989년 2월 2일 밤 10:10 특선영화
성우 캐스팅 : 김종성, 남궁윤, 김병관, 김규식, 김계원, 설영범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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