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빙의 맛

더빙의 맛 : 배트맨 (1989) - 초월 더빙의 레전드

페니웨이™ 2023. 1. 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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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빙의 맛 No.2

요즘이야 워낙 다양한 버전의 [배트맨] 영화가 나와 있어서 입맛대로 자신만의 원픽을 고를 수 있겠지만, 1989년 당시만 해도 팀 버튼의 [배트맨]은 그야말로 히어로물로서는 전무후무한 충격적인 작품이었습니다. 명배우 잭 니콜슨의 조커도 그러했지만 무엇보다 희극 배우로 알려진 마이클 키튼이 배트맨/브루스 웨인이라니.... 팬들은 상상도 못한 파격적인 캐스팅이었지요. 그런데 막상 극장 개봉을 하고 나서는 그 해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하는 어마무시한 저력을 보여주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배트맨]의 놀라운 흥행 소식은 한국에서도 꽤나 화제가 되었는데요, 직배사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배트맨]은 북미개봉 시기보다 다소 늦은 1990년의 여름방학 시즌에 개봉되었고, 20만 관객 동원에 그치며 흥행에 실패하고 맙니다. 정말 의외였던 상황이죠. 물론 1990년 여름시즌에 워낙 많은 외화들이 치열한 흥행 전쟁을 벌이긴 했습니다만 북미 박스오피스 1위작의 실패는 관계자들도 꽤나 당황스러웠다고 해요. 이후로 한국 시장에서 [배트맨]은 통하지 않는다는 이상한 징크스도 생겼고 말이죠. (물론 이는 [다크나이트]로 어느 정도 깨지긴 합니다만...)

실제로 극장에서 [배트맨]을 관람했던 친구들의 반응도 그닥 좋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같은 시기 개봉한 [닌자거북이]가 더 재밌다는 녀석도 있었고요... 덕분에 박스오피스 1위작인 [배트맨]에 대한 기대치는 짜게 식었더랬죠.

그 때문이었을까요? 개봉한지 불과 2년도 채 안된 1992년 2월 1일. 갓 개국한 신흥 방송국인 서울방송(SBS)에서 설날특집으로 [배트맨]을 전격 방영하게 됩니다. 당시 SBS는 인지도를 높히기 위해 개국특선 외화로 [나의 왼발]이나 [에이리언] 등의 화제작들을 연달아 방영하면서 공을 들였는데요, 직접 방송국에 전화를 해서 이번 설에 무슨 영화 하냐고 물어봤던 게 아직도 기억나네요. [배트맨]을 해준다는 안내원의 멘트에 얼마나 설레이던지요...

여튼 국내 첫 지상파 방송을 탄 [배트맨]을 감상하게 되었는데...헐..... 꽤 재미있었습니다! 아마 이유는 그거 같아요. 바로 조커 역의 더빙을 배한성 성우가 했었거든요. 진짜 신들린 듯한 연기로 시종일관 영화를 압도하는 그의 목소리는 정말이지... 조커 그 자체였습니다. 사실 그 전까지 잭 니콜슨의 목소리는 유강진 성우나 이완호 성우가 전담했었는데, 이례적으로 배한성 성우가 맡았다는 건 그만큼 잭 니콜슨이라는 배우보다는 조커라는 캐릭터를 더 크게 생각했었다는 뜻이겠지요. (참고로 배한성 성우는 존 휴스턴의 갱스터 무비 [프리찌스 오너]에서도 잭 니콜슨의 목소리를 맡게 됩니다)

그리고 배트맨 역은 (의심할 여지가 없이) 이정구 성우가 맡았는데, 이 역시 슈퍼히어로나 근육질 액션 스타의 전담 성우라는 인식이 강해지던 시기여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너무나도 배트맨 역에 걸맞는 목소리를 들려주었고, 이 작품 이후로 이정구 성우는 마이클 키튼의 전담 성우는 물론이고, [배트맨 리턴즈]에서도 다시금 배트맨을 맡았으며, 배우가 교체된 [배트맨 포에버]에서도 배트맨의 목소리를 맡았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레고 배트맨 더 무비]에서도 배트맨 역을.....

 

설마 안경을 쓴 사람을 치진 않겠지? - 영화 [배트맨] 중 조커의 대사

그 밖에도 이 작품은 SBS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만큼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합니다. 비키 역의 킴 베이싱어는 히로인계의 팔색조인 송도영 성우, 그리섬 역의 잭 팔런스는 김병관 성우가 각각 열연을 보여주는데, 흥미롭게도 김병관 성우는 나중에 KBS에서 방영된 [배트맨 포에버]에서 토미 리 존스가 분한 투페이스의 성우도 맡게 되지요.

그 밖에도 박상일, 강희선, 김환진, 신성호, 김관철 등등 어지간한 영화에서 주연급으로 등장할 법한 성우들이 대거 참여했지요. 지금 생각해봐도 단일 외화로서는 이 만한 캐스팅을 자랑하는 작품이 드물 정도입니다.

본 작품은 이후에도 SBS에서 재방영을 했고, 나중에 KBS에서는 재더빙해서 방영하는데, 그 때는 조커 역에 홍진욱 성우가 캐스팅 되었습니다만 아쉽게도 배한성 버전보다는 임팩트가 약한 감이 있습니다. 물론 배트맨 역에는 다시 이정구 성우가 돌아와 비슷하지만 느낌이 조금 다른 연기를 선보이게 됩니다. 이제 올 해는 [더 플래시]가 개봉 예정인데 모처럼 마이클 키튼이 배트맨으로 돌아온다지요. 이정구 성우의 더빙판도 기대해 봅니다!

[배트맨] 최초 방영 정보 : 1992.02.01 (토) SBS 설날특선대작

 

성우 캐스팅: 배한성, 이정구, 송도영, 김병관, 박상일, 강희선, 김환진, 김관철, 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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