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보이지 않는 위험
희망찬(?) 새해... 회사 업무가 급발진 페달을 밟아대는 통에 여러모로 지쳐있을 때 즈음, 대리 하나가 웃으며 말했다.
“망했는데요. XX대리가 양성이랍니다”
“??????”
우리 회사는 작년 말, 이미 재직자의 15%가 돌파감염되는 나름의 큰 사건을 겪었다. 2년간 잘 버티다가 한 방을 크게 맞은 터라 이후 나름 자체적으로 방역도 철저히 한 편이지만 업무상 늘 얼굴을 맞대고 있던 XX대리의 양성 반응 소식은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아닌 게 아니라 아침부터 마른 기침이 조금 나던 터였는데, 이거 코로나라도 걸렸나? 하며 혼자 헛소리를 하며 키득거리고 있던 상황.
XX대리의 양성 반응은 자가진단 키트로 알아낸 것이었기에 부서 전체가 당일 결과를 알려 준다는 곳을 찾아 PCR검사를 받으러 갔다. 그리고 저녁…. 음성사실을 알리는 문자에 한 숨을 돌렸다. 그럼 그렇지.. 내가 마스크를 얼마나 열심히 썼는데… 단체 카톡에서는 부서원들이 서로 자기들도 음성이 나왔다며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음성이라는 검사결과가 무색하게 다음날 컨디션이 급속도로 안 좋아졌다. 출근하고 나서도 심한 두통과 오한, 간헐적 기침에 뭔가 문제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XX대리는 PCR검사결과 양성. 옆 자리 대리도 콧물이 수도꼭지 틀어놓은 것 마냥 쏟아져서 병원에 갔다 온 상태.
아무래도 이대로는 큰 일 나겠다 싶어, 일을 서둘러 마무리 한 후 오후 늦게 조퇴해서 보건소를 찾았다. 다시 PCR검사를 받고 난 후 8시 반부터 잠자리에 든 나는 실로 오랜만에 체온이 38도까지 오르는 심한 몸살을 앓으며 밤을 꼴딱 새고 말았다.
다음 날 아침. 거의 잠을 못 잔 상태로 오한과 발열, 기침으로 도저히 몸을 못 가누는 상황에서 처음 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페니웨이님이시죠? 보건소인데요, 검사결과 양성으로 확진되셨습니다”
올 게 왔구나 싶은 느낌. 아아 이거 어쩌나? 와이프는? 아니, 아들 녀석은 괜찮으려나? 엊그제 음성 통지받고 뭔가 방심했던 거 같은데, 그 사이에 옮지는 않았을려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수화기 건너 보건소 직원은 집의 구조, 이를테면 따로 격리할 수 있는 방은 있는지, 가족은 몇인지 화장실은 몇 개인지 등등을 조사했다. 즉, 자가격리를 하기 위한 조건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는데, 가장 관건은 집에 화장실이 2개는 되어야 그 조건을 충족하는 듯 하다. 난 결국 생활보호시설에 격리되는 쪽을 택했다.
그 날 난 생전 처음으로 구급차에 실렸다. 연초부터 사이렌을 켜고 시내를 질주하는 구급차에 탄 신세라니…. 진짜 생각지도 못했다. 애당초 다인실로 배정받을 수 있다는 사전 안내를 받은 터라 보호시설로의 격리가 달갑지는 않았지만 어서 빨리 이 악몽 같은 상황이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격리에 필요한 물품
막상 도착한 곳은 시내 모처의 한 호텔. 방호복을 입은 직원의 안내를 받고 간 곳은 호텔의 더블배드가 있는 2인실이었다. 커다란 TV와 책상, 쾌적한 인터넷, 욕실에는 욕조까지 구비된 준수한 시설이었다. 오호라… 이거 간만에 호캉스 아녀?
보급품으로는 수건 2장과 두루마리 화장지 2개, 각 티슈 한 통, 컵라면 6개와 카누 10개들이 1박스, 물티슈, 1회용 비닐장갑, 호텔에서 쓰이는 각종 어메니티, 샤워볼, 욕실 슬리퍼, 1회용 종이컵 다발, 세탁비누 등이 들어 있다. 이 만하면 10일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다. 와이프가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바리바리 싸 준 것들이 있지만 사실 필요한 건 대부분 국가에서 지급이 된다.
추가적으로 집에서 머리빗, 손톱깍이, 로션 정도는 챙기는 것이 좋다. 또한 필자의 경우 입술이 조커처럼 옆으로 찢어져서 뭘 먹을 때마다 피가 철철 흐르던 상황이었는데, 외상에 필요한 연고나 하다못해 바세린이라도 챙겼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외에 혈압계와 산소포화도 측정기, 체온계 같은 기기가 준비되어 있다. 다만 체온계는 비접촉식 체온계를 따로 가져오는 것이 좋다. 지급되는 체온계의 정확도가 그리 좋지 않을 뿐더러 겨드랑이에 끼우고 측정하는 방식이라 영 불편하다.
식사
식사는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주는대로 먹는 주의라 큰 불만은 없다. 식사시간은 정해져 있다. 아침 8시, 점심 12시, 저녁 6시.
아침은 샌드위치나 샐러드빵 같은 메뉴에 과일과 음료, 간단한 주전부리류가 곁들여진 스타일의 조식으로 세 끼 중에서 가장 맘에 드는 구성이다. 특히 과일 같은 경우는 상큼한 게 먹고 싶던 격리 이틀째 정말 반가운 메뉴였는데, 아침에만 지급되는 지라 가급적 조금씩 먹고 냉장고에 보관하면서 세 끼를 나눠먹길 권한다. 중식과 석식에 야채가 거의 없기 때문에 저런 과일류가 특히 땡기게 된다.
중식과 석식은 도시락인데, 메뉴가 매일 바뀌기는 하나 구성 자체가 그리 다채롭지는 않다. 밥과 젓갈류, 김치 같은 기본 반찬에 국, 그리고 불고기나 제육볶음 같은 육류가 번갈아 나오는데 사실 거기서 거기다. 간혹 우동이나 떡국 같은 메뉴가 곁들여 지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도시락 도착 후 배식까지의 텀이 긴 탓인지 식어버린 상태로 오기 때문에 따뜻함과는 거리가 있다. 따끈한 국물이 생각날 때 쓰이는 게 바로 컵라면.
나는 딱히 간식을 선호하는 편이 아니지만 군것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B마트 등을 이용한 간식 배달도 가능하다. 단, 배달의xx, 요x요 같은 음식배달은 불가능. 택배로 필요한 물품을 반입하는 것도 가능하다. 나는 설 연휴 시즌에 격리를 당한 터라 택배로 뭘 주문하는 게 좀 어렵긴 했지만…
증상과 처방
코로나19의 증상은 사람마다 다양하다. 무증상도 있고 죽음만큼 아픈 사람도 있다. 나도 증상이 경미한 편은 아니었는데, 처음엔 오한과 고열이, 그 이후론 인후통과 두통, 간헐적 콧물과 코막힘, 기침, 가래, 후각 상실 등의 다양한 증상이 복합적으로 나타났다. 전담 의사와 간호사가 하루 두 차례 정도 전화 문진을 하는데, 여기서 적절한 약처방을 해 준다. 필자의 경우 타이레놀을 2통 정도 갖고 들어갔지만 아마 안 가져갔어도 처방을 해줬을 거라 본다.
격리 생활
기본적으로 언제 자고 언제 기상해야 하는지에 대한 규칙은 없으나 보통 오전 문진기록 작성과 배식안내 방송이 나오기 때문에 늦잠을 잘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 대략 7시~8시 사이에는 일어나게 되어 있다. 초반 증상이 심한 환자에게는 이른 기상 시간이 조금 부담이 될 수 있는 상황.
하루 두 번 문진기록을 앱으로 작성해야 하는데, 체온, 맥박, 혈압, 산소포화도, 임상증상 등을 체크해서 입력해야 한다. 필자의 경우에는 오전 6시 반이면 문진표를 작성하라고 앱으로 알리미가 뜬다. 은근 귀찮지만 본인이 아파서 격리된 환자임을 잊지 말자. 필자는 첫 날 산소포화도가 낮아 응급실로 실려갈 뻔 했다. 보통 95% 이상은 나와줘야 그나마 안심할 수 있다.
쓰레기는 하루 한 번 배출할 수 있는데, 지급된 박스를 만들어 의료폐기물용 봉투 두 장을 씌운 뒤 완전 밀봉하여 내놓는 방식이다. 음식물 쓰레기를 따로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오는 모든 쓰레기를 여기에 넣어 배출해야 한다.
격리시설이 기본적으로 호텔이다보니 시스템 에어컨으로 방안 온도를 조절하게 되어 있다. 이 부분이 나로서는 정말 곤혹스러웠는데, 온도를 높게 하면 공기가 건조해져 기침을 가속화시키고, 또 히터를 끄자니 차가워진 방안 공기가 다시 폐로 들어가 기침이 심해진다. 퇴소한 지 한참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기침이 나오는 거 보면 이 때 분명 뭔가 관리가 잘 안된 느낌이다.
그렇다고 가습기를 가지고 들어올 수는 없어서 (어떤 이는 휴대용 가습기라도 가져가라고 한다만 원칙적으로는 비말 병원균 확산 방지 차원에서 가습기 반입은 금지로 알고 있다) 결국 젖은 수건을 걸어놓은 방식으로 습도를 높여줄 수 밖엔 없다.
여가 시간
초반 며칠은 아파서 정신을 못 차리지만 증상이 호전되면 이제 남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지가 관건이다. 필자는 천만 다행으로 혼자 방을 쓸 수 있었고, 방안에는 최신 스마트TV가 있어서 이를 활용하기가 좋았다. 넷플릭스와 유투브 앱이 내장되어 있어서 기본적으로 활용도가 높다.
노트북을 가져간 덕에 노트북과 TV를 무선으로 미러링할 수 있었기에 미디어 시청에는 최적의 환경을 구축할 수 있었다. 그리고 뒹굴거리며 사용할 수 있는 태블릿PC도 필수. 이렇게 밀린 영화와 웹툰 등을 보며 심심할 수 있는 여가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었다.
퇴소
퇴소절차는 시설이나 지역마나 다른 듯 하다. 어떤 곳은 철저하게 방호복까지 착용하고 가져간 짐은 다 소각시킨다는 얘기도 있는데, 필자가 격리된 곳은 다소 이러한 퇴소 절차가 느슨한 편이었다.
우선 퇴소일자는 격리시점이 이미 결정되어서 언제 퇴소할 거라는 짧은 안내만 구두로 있었는데, 전달받은 날에는 코로나 증상으로 정신이 없어서 사실 이 부분이 가물가물했다. 다른 지역은 퇴소절차에 대한 안내문자가 나가는 곳도 있다고 한다만 우리 지역은 전혀 그런 안내가 없어 결국 전화로 직접 문의를 했고 그제서야 언제 퇴소하는지를 간략하게 알려줬다.
퇴소시에는 딱히 폐기해야 할 물건과 가져가야 할 물건에 대한 규정이 없다. 숙소에 원래 비치되어 있던 기물을 제외하면 자기가 가져왔던 물건, 심지어 지급품들도 가져갈 수 있다. 오전 10시경, 신분을 확인함과 동시에 간단한 방역과정을 마치고 나니 굳게 닫힌 철문을 열고 드디어 집으로 갈 수 있었다. 10일 만에 세상 밖으로 나오니 그 아침 공기가 그렇게 상쾌할 수 없었다. 타 지역에서는 방역택시를 의무적으로 타고 가야 한다는 얘기도 있으나, 필자의 경우는 그냥 대중교통으로 귀가했다.
마치며
오늘로 오미크론 확진자 6만명이 훌쩍 넘는 대기록(?)을 경신 중이다. 사실 오미크로 확산으로 인해 방역 기준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 모양이라 필자가 겪은 일들은 벌써 구시대의 경험이 되어 버린 상황. 그럼에도 개인적으로는 너무 특별한(?) 경험이었고, 꼭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이렇게 몇 자 적어본다. 내가 걸린 게 오미크론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정황상 확진되던 시점에서는 아직 수도권에서의 오미크론 확산이 본격적이지 않았던 점, 흔히 알려진 경미한 오미크론에 비해 꽤 심하게 앓았던 점 등을 보면 오미크론은 아니지 않았나 하는 추측만 있다.
한 가지 꼭 말해두고 싶은건 코로나19=독감 수준으로 생각하면 절대 오산이라는 것. 자가격리가 풀린지 2주가 지난 상황인데도 아직까지 잔기침과 가래, 숨가쁨 둥의 증상이 남아있으며, 컨디션과 체력도 예전같지 않다. 후에 어떤 후유증으로 남을지도 걱정이고…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누가 걸리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위기상황이지만 부디 조심해서 확진자 대열에 끼지 않으시길 바란다.
P.S: 참고로, 필자는 화이자 2차까지 접종한 상태에서 확진되었으며, 회사나 다른 부하직원은 모더나로 1,2,3차, 그 외 아스트라 제네카나 얀센 등 다양한 백신을 맞은 사람 모두가 확진판정을 받았다. 그렇다고 백신이 효과가 없다는 얘긴 아니다. 아마도 백신을 맞지 않았다면 더 심한 증상을 겪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안심이 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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