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는 우리 고전만화의 복간작을 '한국만화걸작선'이라는 시리즈로 출간하고 있다. 솔직히, 1년에 5편의 작품은 선정해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만 이렇게라도 한 작품씩 내주는게 어디냐 싶기도 하고. 또 그래서 진흥원 차원의 복간 보다는 민간 차원의 복간에 더 기대를 거는 것이겠지만.
뭐 어찌되었건 이번 한국만화걸작선 29번째 작품으로 선정된 만화는 이우정 작가의 [모돌이 탐정]이다. 1970년대 <소년중앙>에서 연재된 작품으로 이후 <클로버문고>를 통해 단행본으로 나왔고 이후 두 차례 더 문고본과 대본소용으로 재복간이 이뤄진 나름의 탄탄한 마니아층을 가진 탐정 모험물이다.
나는 이번 작품에서 작품 해제를 썼는데, [모돌이 탐정] 1권에 실려 있다.
패키지 구성은 나름 신경을 썼다. 고급스런 아웃 케이스에 4권의 양장본으로 된 [모돌이 탐정] 본편이 들어 있고 기존의 한국만화걸작선보다 훨씬 더 좋은 종이를 사용해서 보관성을 높혔다. 지금까지 발간된 한국만화걸작선 중에서는 단연 최고의 퀄리티로 구성된 패키지다.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은 이번 [모돌이 탐정]의 복간 내용이다. 사실 나는 작품 해제를 쓰면서 아직 출간되지 않은 원고본을 자료로 받아 볼 수 있었는데, 작품을 보면서 이전에 봤던 [모돌이 탐정]과는 뭔가 다르다는 이질감을 지울 수 없었고, 작품의 베이스가 되는 작품이 [모돌이 탐정]의 오리지널 원고가 아닌 대본소용 복간본인 [맹코탐정]에 더 가까울 것이라는 점과 이러한 결정이 원고의 유실 때문에 생긴 부득이한 조치인지, 작가의 의중인지를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실제 복간된 [모돌이 탐정]은 올드팬들에게는 꽤나 불편한 작품이 되었는데, 과거의 향수에 젖어있던 독자들에겐 완전히 뜯어 고친듯한 몇몇 장면들과 전개들에서 당황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이같은 현상은 결국 작가인 이우정 화백의 결정이었으며 작가 본인이 가진 복간본에 대한 정의가 "복간 본은 복간 본의 영역을 다시 구축함이 옳다."는 것이었기에 과거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 리뉴얼에 가까운 형태의 복간이 나올 수 밖에 없었던 것.
물론 이러한 복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어서 안제일 작가의 [별나라 삼총사]나 [삼총사 타임머신 001] 같은 작품에서도 작가가 다시 작화를 뜯어 고친 상태로 복간된 적이 있는데, 이 경우에도 사전에 작가가 직접 작화 수정을 했다는 안내가 첨부되어 있어 별다른 논란은 없었지만 [모돌이 탐정]에서는 그런 사전 고지가 전혀 없는 상태라 논란이 좀 더 커진 상태다.
이번 일을 통해 나는 복간에 대한 의미와 그 무게감을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었는데, 작가가 생각하는 복간의 지점과 독자들이 받아들이는 복간의 지점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으며, 그 중간의 적절한 절충점을 찾지 못한다면 아무리 그 의도가 좋다한들, 그 복간은 실패작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사건은 "복간의 주체"란 누구인가...에 대한 숙제를 남겼다고 생각한다. 그간 복간이라는 사업을 "당연하게도" 기존 판본을 그대로 다시 찍어내는 것으로 인식해 온 것이 사실인데, 여기에 "만약 원작자가 일부 수정을 원할 경우에는?" 이라는 변수가 개입 했을 때 그 복간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된 것. 이건 한 번쯤 생각해볼 문제다.
앞서 언급한 [별나라 삼총사]나 [삼총사 타임머신 001] 외에도 게나소나판 및 마나문고 펀딩판 [로보트 태권브이와 황금날개의 대결]도 엔딩을 송두리째 드러내고 임의적으로 급조해낸 사례가 있다.
조금 더 딥하게 그리고 넓게 보자면 가장 대중적인 사례로서 영화 [스타워즈] 클래식 3부작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스타워즈] 3부작을 리마스터링하면서 (사실 이 리마스터링을 우리말로 치환할 단어가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지만 이에 근접한 단어가 복간이라고 본다. 물론 Restore라는 단어도 있긴 하지만...) 몇몇 장면들을 원작자인 조지 루카스가 몇 차례에 걸쳐 임의대로 뜯어 고친다. 특히 [스타워즈: 제다이의 귀환] 편에서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모습을 세바스찬 쇼에서 헤이든 크리스텐슨으로 바꿔버린 건 두고두고 팬들에게 논란이 되고 있다.
[철인 캉타우] 애장판의 경우도 오탈자나 페이지 바뀜 등의 부수적인 문제가 있긴 했지만 이건 차치하고서라도 엄밀히 말해 그 내용이 100% 오리지널 연재본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캉타우의 경우엔 연재본과 엔딩부터도 다르다) 결국 이 같은 변화에 개입하는 건 작가 본인이거나 또는 복간을 진행하는 주체의 판단이라 볼 수 있다. 문제가 되건 안되건, 이러한 변화 자체는 복간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상황일 수도 있다. 그만큼 100% 똑같은 복간을 하는게 원고의 보관 현실이 참담한 한국의 특성상 더욱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복간의 열쇠는 최종적으로 작품의 디렉터이자 저작권자, 그리고 창조자인 작가의 의중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수 밖에 없고, 그렇기에 복간을 담당하는 PM이 중간에서 조정하는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는 건 더욱 분명해졌다. 복간사업이 활발한 것도 아니고, (만화진흥원 차원의 복간사업이 1년에 한 편 정도니....) 시장도 크지 않아서 방향성을 정하는데는 좀 더 시간과 경험, 기술, 인력이 필요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조금 더 글을 쓸 여유가 된다면 복간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좀 더 적어보기로 하고, [모돌이 탐정] 복간본에 대한 소회는 여기에서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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