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이끄는 명품 배우들의 힘
온라인 만남 사이트에서 각자 자신에 대해 거짓 프로필을 올리는 노년의 남녀. 이윽고 만남을 가진 두 사람은 의외로 자신과 잘 맞는 상대에게 호감을 느끼며 점차 친밀한 관계로 발전한다. 그러나 황혼의 로맨스로 포장된 거짓은 기나긴 세월 속에 감춰졌던 진실을 조금씩 들춰내기 시작한다.
영국의 작가 니컬러스 설이 쓴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굿 라이어]는 능수능란한 사기꾼이 한 미망인을 타겟으로 삼으면서 서서히 덫을 설치해 가는 과정을 보여주지만 눈치 빠른 관객이라면 이내 반전을 알아차릴 만한 여지가 많은 반전 스릴러다. 기교에 치우치지 않고 정공법으로 진실에 접근해 가는 방식이기에 플롯이 단촐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긴 하다.
의외의 파격성은 캐스팅에서 발견된다. 흔히 이런 류의 장르물이 뇌쇄적인 팜프파탈이나 미끈한 옴므파탈 캐릭터를 내새운 것과는 정 반대로 헬렌 미렌과 이언 맥켈런이라는 걸출한 영국 노장 배우 두 명이 한 화면에서 불꽃 튀는 연기를 보여준다는 점만으로도 주목할만하다. 놀랍게도 두 배우가 공연한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다.
등장 인물을 최소화시키고 두 사람에게 포커스를 집중한 덕분에 두 배우가 보여주는 연기 대결은 영화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고 기시감이 느껴지는 플롯임에도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시켜 준다. 두 캐릭터가 각자 무언가의 거짓을 말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식도 상이한데, 영화의 대부분이 로이의 관점에서 진행되는 만큼 그에게서는 보다 직접적으로 양면성을 드러내는 반면, 순진한 미망인의 얼굴 뒤에 숨겨진 베티에게서는 은밀하고 궁금증을 자아내는 방식으로 표현된다. 캐스팅에 있어서는 가히 완벽에 가깝다.
다수의 뮤지컬 영화에서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몇몇 드라마 장르에서는 직접 각본까지 쓰며 작가로서의 면모도 드러냈던 빌 콘돈이 메가폰을 잡았지만 베스트셀러 원작의 힘과 배우들의 카리스마에 가려 연출가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 건 아쉬움으로 남는다.
블루레이 퀄리티
[굿 라이어]는 아리 알렉사 XT Plus로 촬영된 2K D.I 마스터포맷을 1080p AVC로 인코딩해 2.38:1 화면비로 담아냈다. 탐미적인 영상을 추구하거나 시각적으로 감탄사가 튀어나올 만큼 화려한 비주얼을 제공하는 영화는 아닌지라 딱히 임팩트 있는 화면을 제공하지는 않지만 안정적인 색감과 디테일한 영상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일부분을 차지하는 플래시백 장면은 약간 채도가 떨어지는 느낌이 들지만 감독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이며 그 외의 장면들에서는 선명한 컬러와 선예도가 잘 살아있다.
사운드는 최근 블루레이 스펙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돌비 애트모스가 아닌 DTS-HD 5.1ch의 다소 평범한 스펙을 채용했다. 마찬가지로 이렇다 할 인상적인 사운드를 체험할 만한 장면을 제공하는 영화가 아닌 탓에 사운드의 특징을 구체적으로 지적할 순 없지만 음성 채널의 분리도나 사운드 믹싱에 있어서의 기술적 문제들은 발견하기 힘들다. 전반적으로 무난한 사운드.
스페셜 피처
단촐한 부가영상을 제공하는데, 먼저 몇 가지 삭제장면이 수록되어 있어 이를 소개할까 한다.
SCENE 4
로이와 베티가 만나기 전 다양한 사람들과 만남을 갖는 장면들이다. 두 사람이 만나기까지 성향이 맞지 않는 사람들과 만남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SCENE 26-27
베티가 로이를 집으로 맞아들이는 장면에서의 추가씬. 로이가 스티븐에게 자신의 집에서 우편물을 가져와 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이 포함되었다.
SCENE 30-31
위에서 연결되는 장면으로 로이의 아파트에 들어간 스티븐이 로이의 집을 살펴보는 내용이 담겨있다. 여기서 무언가를 발견하면서 스티븐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는다.
SCENE 33-36
역시 위의 장면들에서 연계되는 장면인데, 스티븐이 로이의 우편물을 가져다 주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스티븐이 로이의 아파트에서 발견한 사실들에 대해 베티에게 은밀히 보고하고, 로이는 베티가 ‘의도적으로’ 숨겨놓은 뇌졸증 진단서를 훔쳐보면서 그녀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일련의 장면들은 베티가 로이를 뒷조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 주는 것이기 때문에 최종 편집에서는 삭제된 듯 하다. 덕분에 베티는 좀 더 모호하게 비밀을 감춘 캐릭터가 되었다.
SCENE 41
경찰이 들이닥친 후 브린과 베니가 도망치는 장면에서 약간의 추가씬.
SCENE 46-48
베티가 악몽을 꾸고 비명을 지르는 장면. 그리고 그 다음날 남편의 묘지에 가려고 길을 떠나는 장면이 담겨 있다.
SCENE 62
간밤에 베티의 집에 누군가 칩입하자 로이가 경찰과 스티븐을 부르자고 제안한다. 그러자 베티는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냐며 로이를 안심시킨다.
SCENE 106-110
베티가 로이의 칫솔을 가지고 변기를(…) 닦는다. 그리고 스티븐과 자신의 집 주변을 맴돌던 흑인 청년을 만나 일을 망칠 뻔 했다며 화를 내는 장면이다. 이 장면들은 베티가 로이에게 매우 큰 분노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베티 역시 로이에게 접근한 모종의 이유가 바로 ‘복수’였음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베티는 두 사람에게 이 일에서 빠지라고 명령하며, 또한 흑인 청년이 바로 베티의 손자라는 사실도 드러난다. 너무 많은 정보가 담겨있는 장면이라 반전의 묘미를 위해 삭제된 듯 하다.
이제 다음으로는 “A Perfect Match: Inside the Good Liar”라는 영상으로 영화의 메이킹 필름에 해당한다. 영화가 만들어지게 된 계기는 제작자 그렉 욜렌이 흥미로운 책이 있으니 한번 읽어보라고 빌 콘돈에게 이메일을 보냈는데, 빌은 6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도중에 책을 다 읽었고 내용이 마음에 드니 당장 영화로 만들자고 했다고 한다.
조금 흥미로웠던 지점은 각색을 맡은 제프리 해처-그는 빌 콘돈의 전작인 [미스터 홈즈]의 각색도 맡은 바 있다-가 원작을 어떻게 해석해 이를 적용했는가 하는 부분인데 보다 방대한 분량의 원작을 세 개의 층으로 분류했고, 사기 행각이 전체적인 틀이라면 그 안에 러브스토리가 들어 있고, 다시 그 안에 복수극이 있는 방식으로 구성했다는 것이다. 원래 이 작품은 네 개의 시기에 걸쳐서 캐릭터를(특히 로이를) 보다 깊이 있게 분석하는 방식으로 다룬 각본도 존재했는데, 베티와 그의 시점을 동등한 비중으로 다룬 방향으로 마음을 정했다고 한다.
총평
원작소설에 담긴 함의나 장점들을 모두 담아낸 영화는 아니지만 명배우들의 열연과 더불어 거짓말로 서로의 약점을 파고드는 고도의 심리전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는 스릴러다. 또한 2차 세계대전을 둘러싼 시대의 상흔이 혼란의 시기를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생존을 모색해야 했던 인물들에게 어떤 비극과 복수의 알고리즘을 만들어 내는 지를 흥미로운 시각에서 살펴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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