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페니웨이 (admin@pennyway.net)
비커밍 윈스턴 처칠
종군 기자 출신으로서 수 차례의 장관직 수행, 두 차례의 영국 총리 임명, 기사 작위 수여, 노벨 문학상 수상 등등 영국 정치사의 아이콘 중 한 명인 윈스턴 처칠이 걸어온 길은 사뭇 화려하다.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나는 그보다 더 위대한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처칠을 향한 외부에서의 시선은 호의적이다. 영국 외의 수많은 나라에서 처칠에게 훈장을 수여했으며 비교적 최근인 2014년에는 체코에서 하얀 사자 훈장을 서훈하기도 할 만큼 그의 인기는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2차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서 전세를 역전시키는데 큰 공을 세웠지만 처칠에 대한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처칠은 그가 총리직을 수행하며 권력의 정점에 서 있을 당시에 훨씬 더 거센 비판과 반대에 직면한 인물이다. 살아생전 그가 보인 기행과 폭언은 차치하고서라도 제국주의 시절 몸에 벤 인종차별적 사상과 태도, 군사적 판단에 있어서의 실책, 당적 변경으로 인한 철새 인식, 강경 일변도의 비타협적 자세 등등 부정적인 평가도 만만치 않다.
워낙 자기 색깔이 분명하고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정치인이었기에 많은 영화들에서 다양한 관점에서 처칠을 다루었다. 리처드 아텐보로 감독의 [젊은 날의 처칠]에서는 유년기 시절과 정치계 입문까지의 과정을 다루었고, 명배우 알버트 피니가 처칠 역으로 열연한 [윈스턴 처칠의 폭풍전야]는 야인으로 있던 처칠이 나치의 폴란드 침공을 기점으로 해군장관을 맡게 되면서 정계에 복귀하는 내용을 다룬다.
그런가 하면 크리스찬 슬레이터가 처칠로 분한 2004년작 [처칠]은 괴랄한 발상으로 접근한 작품인데, 방탕한 미국군인 처칠이 2차세계대전 유럽을 구하기 위해 영국 국왕의 부름을 받게 된다는 가상 역사의 슬랩스틱 코미디이다.
2017년에는 두 편의 처칠 전기영화가 개봉되었다. 하나는 조나단 테플리츠키 감독의 [처칠]로서 브라이언 콕스가 몸무게 10kg을 불려가며 처칠 역에 도전했고, 또 하나는 조 라이트가 연출을 맡고 게리 올드만이 처칠 역을 맡은 [다키스트 아워] 였는데, 감독의 역량이나 캐스팅의 화제성 면에서 주목을 받은 건 단연 후자였다.
[다키스트 아워]는 윈스턴 처칠이 총리로 임명된 첫 한 달을 전후로 영국이 처한 대외적 상황과 처칠의 정치적 결단을 그리고 있다. 전 유럽을 삼킨 독일군의 침공이 영국의 턱밑까지 밀로 올라오자 영국은 일대 혼란에 빠진다. 전무후무한 국가적 비상사태 와중에 총리로 선출된 처칠은 자신의 판단력을 의심하는 정적들과 날로 악화되는 전황 속에서 고뇌에 가득 찬 나날들을 보낸다.
ⓒ Perfect World Pictures, Working Title Films. All right reserved.
흥미롭게도 영화를 구성하는 중요 플롯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덩케르크]의 소재였던 다이나모 작전이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키는 처칠의 결단력은 사뭇 잔인하기까지 하지만 (필자 주: 덩케르크에 고립된 30만명을 살리기 위해 처칠은 칼레에 주둔한 4000명을 방패막이로 삼았다)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려있던 그가 성공시킨 최초의 대업이라는 측면에서도 다이나모 작전의 이면에 진행되던 긴박한 순간들의 묘사는 매우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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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술했던 처칠의 명암을 모두 담아내려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정적들과의 대립 속에서 갈등을 해쳐나가는 흥미로운 과정들은 후반부의 매너리즘에 빠지면서 흔들린다. 영화가 위인전에서나 볼 법한 처칠의 영웅만들기에 주력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론적으로 구국의 영웅이 될 수 밖에 없는 처칠의 의회 연설장면은 제3자의 입장에서 다소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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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처칠을 연기한 배우 중에서 가장 독보적인 연기를 보여준 게리 올드만은 [다키스트 아워]를 장악하는 알파이자 오메가다. 벗겨진 머리, 거동조차 불편해 보이는 거구, 늘어진 턱살과 항시 실룩거리는 안면근육 등 1년내내 처칠의 몸동작과 습관을 연구했다는 개리 올드만의 연기를 보면 마치 처칠이 영화 속에 현신한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다. 때문에 단순한 '오스카 베이트' 영화가 아니냐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가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받은 것에 그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기 어렵다는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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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역사와 인물을 다룬다는 건 참조할만한 레퍼런스가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키스트 아워]가 시대적 배경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진행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영화를 참고한다면 영화에 대한 이해에 깊이를 더할 수 있다. 처칠을 수상으로 임명한 조지 6세의 이야기를 다룬 [킹스 스피치]와 다이나모 작전의 한 가운데로 관객을 인도하는 [덩케르크]는 [다키스트 아워]와 함께 일종의 ‘유사 트릴로지’를 이룬다.
블루레이 리뷰
[다키스트 아워]의 촬영감독은 조 라이트와 자주 호흡을 맞췄던 시머스 맥가비가 아니라 블루스 델보넬이다. 그가 촬영했던 전작 [다크 섀도우], [르윈 데이비스],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 등에서도 알 수 있듯 화면상에 느껴지는 색감은 다소 색바랜 듯한 모노톤이 특징을 이룬다. 따라서 원색의 표현이 부족하지만 이는 조명기술이 크게 발달하지 않은 시대의 이미지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데 효과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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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질 개인의 음과 양을 암시하듯 영화상에서 빛과 그림자가 대조되는 장면이 많은데, 그러한 화면에서 명암과 선예도가 매우 말끔하게 표현되고 있다. 책들 위에 뽀얗게 내려앉은 먼지도 잡아낼 만큼 디테일이 우수한 화면을 보여주며 의회 내부나 방공호 안에 설치된 전쟁 상황실의 세트를 구성하는 각종 오브젝트의 질감도 아주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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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비 애트모스로 구현된 사운드는 뛰어난 공간감을 제공하는 구체적인 장면들이 많지는 않지만 국회 의사당에서의 연설 장면에서는 연설하는 무대에서와 연설을 듣는 청중석에서의 느낌을 그대로 반영하는 상당한 현실감을 제공한다. 문이 닫히는 소리, 타자기 자판을 치는 소리, 샴페인 마개를 따는 소리, 시계의 지하철의 덜컹거리는 충격음 등 소소한 효과음을 잡아내는 능력도 훌륭한 편이다. 조 라이트와 손발을 맞춰온 다리오 마리아넬리의 사운드 스코어는 영화 전반에 자연스럽게 풍미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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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피쳐
최근 출시되는 블루레이 치고는 다소 빈약한 편이다. 조 라이트 감독의 음성 코멘터리가 수록되어 있으나 한국어 자막은 누락되었다. 부가영상으로는 두 개가 제공되는데, 먼저 ‘Into Darkest Hour’는 주요 메이킹 필름으로서 일반적인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주제별로 나눠서 소개하는 것과는 달리 하나의 메이킹 필름으로 제공된다.
각 배우들의 특징과 소개, 메이크업 및 헤어 디자인, 프로덕션 디자인, 디렉팅 등 다양한 부면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는데, 영화의 고증과 관련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을 소개하자면 전쟁 상황실 세트의 경우 자문을 받아 실물과 흡사한 크기로 재현해 폐쇄적인 상황에서의 압박감을 표현하려 하였고, 지도에 꽂혀있는 핀까지도 정확한 위치에 꽂아놓아 세심한 디테일을 완성시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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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ry Oldman: Becoming Churchill’은 영화의 주역인 게리 올드만이 처칠로 변신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한다. 게리 올드만이 처음 처칠 역을 제안받았을 때 가장 고민되었던 부분은 연기에 대한 문제보다는 체격 조건이었다고 한다. 너무 다른 체형 때문에 스텝들은 꽤 오랫동안 고민해야 했는데, 단지 그를 처칠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게리 올드만의 눈, 입, 표정 등 그의 진짜 연기를 관객들이 확인할 수 있도록 배우를 완전히 지워서는 안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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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분장이 너무 자연스럽고 완벽해서 촬영장에서 지켜본 동료 배우들은 매 순간이 쇼크의 연속이었다는데, 여기서 흥미로운 일화 하나. 역사가 중 한 명이 벽에 걸린 처칠의 사진을 보고는 ‘어, 이거 흥미로운 사진인데 어디서 찾으셨나요?’라고 물었고, 그 사진이 바로 처칠로 분장한 게리 올드먼의 사진이었다.
총평
실존인물을 다루는 전기영화는 주연배우의 연기를 빼고 나면 영화적 구성은 실망스런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케이스로 애쉬턴 커처가 출연한 [잡스]를 들 수 있는데, 평이한 전개와 사건들의 순차적인 나열로 큰 인상을 주지 못한 반면 대니 보일 감독의 [스티브 잡스]는 세 개의 사건을 중심으로 꽉 짜인 내러티브를 구축해 훨씬 더 입체적이고 영화적 재미를 살리면서도 캐릭터의 매력을 잘 표현하는 등 큰 차이를 보인 바 있다.
마찬가지로 [다키스트 아워]는 처칠의 일생 전체를 보여주려는 과욕을 버리고, 특정 사건에 얽힌 상황을 밀도있게 담아내면서 평이한 전기영화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조 라이트 특유의 관조적인 미장센과 인물의 감정선을 절실하게 표현하는 연출에 게리 올드만의 열연이 더해져 현대사의 한 장면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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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다키스트 아워 - 조 라이트 감독,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 외 출연/유니버설픽쳐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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