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 40대 중후반을 달리는 아재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습니다. MBC에서 흑백 찬란한 화면으로 필살의 로케트 주먹을 날리는 ‘마징가 제트’의 추억이죠. 이 마징가 신드롬이 얼마나 대단했냐하면…. 궁금하신 분들은 [한국 슈퍼 로봇 열전] 1,2권을 참고하세요. 데헷~
한국의 태권브이는 지금 대부업체 광고나 찍는 찬밥신세로 전락했지만 일본에서의 마징가는 여전히 콘텐츠 파워가 있습니다. [마징가 걸즈]라든가 [진 마징가 제로] 등등의 파생작들만 봐도 마징가 브랜드가 지닌 잠재력을 짐작할 만하죠. 포스트 에반게리온을 이을 마땅한 대체제들이 없는 지금 과거로의 회귀를 꿈꾸는 사람들도 분명 있기 마련입니다.
[마징가 제트: 인피니티]는 원작자 나가이 고 데뷔 50주년을 기념해 만든 극장판 신작입니다. 기술의 진보에 걸맞게 CG를 도입했으며, 최근 메카닉 디자인의 추세를 반영하듯 패널라인이 살아있는 마징가로 리모델링되어 등장하고 있지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헬박사가 사라진 지 10년… 광자력 연구소는 박물관으로 개조되었고, 신 광자력 연구소의 소장으로 애리가 부임하고 쇠돌이는 은퇴해 연구직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장검철은 여전히 현역 그레이트 마징가의 조종사로 남았지만 그도 김숙과 결혼한 유부남이 되었지요. 숙이는 김철의 아이를 가진 임산부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미케네 유적을 발굴하던 중 초 거대 마징가를 발견하게 되고 이를 인피니티라 명명하게 됩니다. 인피니티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지만 갑자기 사라졌던 헬박사가 등장해 다시금 지구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게 되지요. 더 강력해진 헬박사와 맞서는 더블 마징가. 과연 그들은 지난 날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마징가 제트: 인피니티]의 이야기는 딱 40년 전의 스토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평행우주니 하는 다차원의 개념을 섞어넣어 약간 어렵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각종 클리셰들의 범벅입니다. 사실 이러한 스토리는 [진 마징가 제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도 볼 수 있어요. 애당초 원작에서 이미 끔살당한 헬박사와 브로켄, 아수라가 다시 멀쩡히 등장한다는 것만봐도 이건 [마징가 제트]의 후속이라기 보단 일종의 패러랠 월드죠.
너무너무 진부한 이야기다 보니 사실 내용적인 면으로 큰 감동은 없습니다. 화려한 기술력을 동원해 만든 전투씬이 꽤 장관을 이루지만 이마저도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아요. 극장판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음에도 팬들을 위한 깜짝 이벤트 정도의 임팩트랄까요. 개인적으로는 어린 시절 TV로 감상한 [마징가 제트 대 암흑대장군]이 인생 최대의 충격이어서리…
최종 빌런인 헬박사의 목적을 재해석한 부분은 신선했습니다. 예전부터 ‘세계정복? 그 따위꺼 해봤자 피곤하기만 하잖아”의 딜레마를 완벽히 깨부수는 설정을 도입했더군요. ‘천재’ 과학자인 헬박사가 취할 법한 나름의 행동을 설득력있게 설명한 점이 좋았습니다.
감상한 작품이 더빙판이어서인지 옛날 추억이 제법 떠올랐습니다. 의도적으로 일본을 한국으로 바꾼 것이나 쇠돌이, 애리 처럼 로컬라이징한 네이밍을 그대로 사용한 것도 나름 좋았어요. (근데 츠루기 테츠야는 방영당시 김철이란 이름이 아니었나요?) 오프닝 주제가도 민경훈이 부른 한국어 주제가를 썼습니다. 아마 챔프판 리마스터링 버전을 의식해 그대로 사용한 듯 합니다.
보고 난 후의 소감은 ‘그저 부럽다’ 입니다. 어찌되었든 40년이 넘은 작품을 가지고 새로운 극장판을 만들 수 있는 크리에이터들의 환경이나 팬덤의 크기 같은 것들이 한국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점에서 말이지요. 만약 태권브이의 파생지점이 마징가가 아니었던들 지금보다 더 나을 것 같진 않다는 생각도 듭니다.
내 인생에 극장에서 마징가를 보다니… 참 묘한 경험이었습니다.
P.S:
1.아무리 클리셰 범벅이라도 원기옥 설정은 너무 크리티컬했습니다. -_-;;;
2.미취학 아들을 데리고 볼까 했는데 안보길 잘했어요. 아이에게 조금은… 민망한 장면 나옵니다. (역시 나가이 고!!!)
3.영원히 고통받는 헬박사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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