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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페니웨이 (http://pennyway.net)


 

다카하타 아사오의 미학적 리얼리즘 

 해군 장교인 아버지의 생사는 알 수가 없고, 어머니는 공습으로 사망해 결국 먼 친적집에 더부 살이를 하게 된 세이타와 세츠코 남매는 자신들을 반기지 않는 친척 아주머니의 핀잔에 못이겨 결국 그들만의 보금자리를 찾아 독립해 나온다. 하지만 무방비 상태의 어린이 두 명이 버텨낼만큼 전쟁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돌봄의 손길이 끊긴 채 아버지가 돌아올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남매는 굶주림과 질병에 노출되어 결국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다.

© STUDIO GHIBLI Inc.

나오키상을 수상한 노사카 아키유키의 단편소설 ‘반딧불의 묘’가 출간된 해인 1967년은 베트남전쟁이 개전한 지 2년이 흐른 시점에서 일본내에 반전운동이 확산되던 시기다. 소위 원폭문학의 걸작으로 불리는 이부세 마스지의 ‘검은 비 黑い雨’나 주간 아사히가 병사 50명의 수기를 모아 펴낸 ‘아버지의 전기 父の戦記’가 주목을 받은 것도 이 즈음이다. 

노사카 아키유키의 자전적 경험에 근거한 ‘반딧불의 묘’를 통해 작가는 현실에서 동생에게 자상하지 못했던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이자 죄의식을 투영한다. 전쟁의 직접적인 책임이 있던 어른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하고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의 눈높이로 전젱을 바라 본 이 작품은 기성세대가 일으킨 전쟁에 매몰된 어린 남매의 최루성 짙은 이야기로 그려냈다. 

© STUDIO GHIBLI Inc.

아마도 국내에 더 잘 알려진 건 소설판 ‘반딧불의 묘’가 아닌 지브리표 애니메이션 [반딧불의 묘]일 것이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2인자로 군림했던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이 작품은 [이웃집 토토로]의 동시상영작으로 개봉되어 한없이 동화적인 분위기인 [이웃집 토토로]와는 정 반대의 극사실주의적인 애니메이션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더구나 전연령층을 상대로 한 애니메이션치고는 너무나 비극적인 이야기를 소재로 한 만큼 해외에서도 주목받았는데,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애니메이션이지만 압도적이고 드라미틱하다 …(중략)… 지금까지 제작된 가장 위대한 전쟁영화 중 하나다”라고 극찬하기까지 했다.

© STUDIO GHIBLI Inc.

문제는 태평양 전쟁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우리가 바라보는 시각일 것인데, 원작자와 감독의 의도가 무엇이 되었든 [반딧불의 묘]가 가진 반전의식의 한계와 자기합리화의 갑론을박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본 글을 읽는 분들이라면 익히 알고 있을 것이며 각자의 관점을 대변하는 글 또한 수없이 많다. 따라서 (이의가 없다면) 본 리뷰는 그러한 논쟁적인 부분보다는 [반딧불의 묘]가 가지는 미학적인 부면에 대해 보다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 STUDIO GHIBLI Inc.

미군의 공습장면. 원작에 없는 이 장면이 굳이 상세하게 묘사된 것은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 개인의 트라우마를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관점에 따라서는 '민간인에게 공습을 가하는 미군=악당'으로 비춰칠 개연성이 충분하다. 이처럼 [반딧불의 묘]는 시각적 심상을 중요시하는 애니메이션의 특성상 은유적인 형태로 해석될 수 있는 여러 요소들이 내제되어 있어 여전히 불편한 한일관계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분명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

 

지금은 일반적이 되어버렸지만 [반딧불의 묘]에서는 현지 답사를 통해 실제 장소를 배경으로 사용한 장면들이 종종 등장하는데 고베의 미카게 소학교나 세츠코와 세이타 남매가 독립생활을 시작한 이시야가와 강과 강에서 바라본 풍경들, 세이타가 숨을 거두는 국철 산노미야 역 등 현실적인 픽션 세계를 구성하는 면에 있어서 다카하타 이사오 특유의 리얼리즘이 가장 잘 표현된 작품 중 하나다.

© STUDIO GHIBLI Inc.

이러한 리얼리즘적 연출은 비단 배경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사물이나 지형, 음식 등 각종 피사체의 섬세한 표현 뿐만 아니라 인물의 묘사에 있어서도 탁월하다. 슬픔과 환희, 굶주림의 고통과 절망감을 시시각각 드러내는 인물들의 표정은 실사영화를 뛰어넘는 표현력이라 하겠다. 이러한 표현의 사실감은 비극성을 효과적으로 극대화시키며 관객들을 감정적으로 압도한다.

© STUDIO GHIBLI Inc.

상상력과 소재의 자유를 애니메이션 최고의 장점으로 부각시키던 기존 작품들과는 달리, 물리적인 세트의 한계를 벗어나 서사의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면에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반딧불의 묘]는 미학적 성취와 완성도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뛰어난 작품임에 틀림없다.

 

오픈 케이스

 

오랜 세월 기다려온 스튜디오 지브리의 첫번째 블루레이 타이틀이니만큼 이번에 발매된 초회한정판의 패지키는 여러모로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하다. 일본판과 거의 유사한 형태로 출시되어 라이센스 인증의 의구심을 제기한 분들도 있었으나, 더 블루 측에서 저작권자로부터 패키지 디자인 소스를 받아 컨펌 받아 진행한 것임을 밝힌 만큼 소장가들이 선호하는 패키지의 통일성을 고려한 선택에 점수를 주고 싶다.

[반딧불의 묘] 블루레이 패키지의 구성은 소책자와 오리지널 포스터 카드, 더블루콜렉션 한정카드, 한정판 넘버링 스티커 및 필름 북마크 등으로 이루어져있다. 

아담한 사이즈로 축소된 소책자를 살펴보면 1988년 [반딧불의 묘] 메모리얼 앨범 세츠코에 실린 노사카 아키유키의 에세이를 비롯해 2008년 [반딧불의 묘] 완전보존판 DVD를 위해 무라세 타쿠오가 정리한 제작 비화가 실려있다. 

붉은 색으로 통일된 디지팩을 아래위로 절반씩 띠지처럼 감싸는 스펙지의 형태도 특이하다. 접합부분은 자석으로 처리되어 있어 마감에 한번 더 신경을 쓴 느낌을 전달한다. 이만하면 모름지기 한정판이라는 이름에 손색이 없는 패키지다.

 

메뉴화면

 

© STUDIO GHIBLI Inc.


블루레이 퀄리티

거의 30년 전 작품이니 최근 디지털 세대의 애니메이션들과는 어느 정도 영상 퀄리티의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가끔씩 눈에 띄는 지글거림은 셀 애니메이션 특유의 아날로그적인 질감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이며 (당시로선 꽤 수준급의 트렌스퍼 였음에도) DVD에 비해 비약적으로 향상된 선예도와 색감을 경험할 수 있다. 

 

▽ DVD vs. Blu-ray 비교

© STUDIO GHIBLI Inc.

전술했듯이 미학적 완성도가 매우 뛰어난 작품인 만큼 사물과 배경의 섬세한 묘사, 색상의 대비를 통해 분위기와 감정선을 조율하는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연출 솜씨를 만끽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화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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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IO GHIBLI Inc.

음향은 DTS-HD 2.0를 지원하는 다소 소박한(?) 스펙인데, 동적인 장면보다는 정적인 분위기가 지배하는 작품이어서 역동적인 사운드의 쾌감에 집중할만한 작품은 아니다. 남매가 나누는 대화나 오빠인 세이타의 네레이션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므로 대사 전달력에 있어서는 만족할만한 사운드를 제공한다고 하겠다. 아쉽게도 한국어 더빙은 생략되어 있어 혹 DVD를 소장하고 있다면 중복소장이 정답인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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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IO GHIBLI Inc.

 

스페셜 피쳐

서플먼트의 절대적인 분량은 그리 많지 않으나 DVD와는 겹치는 부분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소장가치를 높힌다. 우선 ‘그림콘티’는 러닝타임 전체를 콘티로만 짜여진 영상과 함께 오리지널 사운드를 입혀 감상하도록 만든 영상이다. 색체없이 러프스케치로만 이루어진 영상으로 본편을 감상하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 STUDIO GHIBLI Inc.

또한 이번 블루레이에는 음성 코멘터리가 수록되어 있는데, 다카하다 이사오 감독을 비롯, 미술을 맡은 야마모토 니조와 작화를 맡은 모모세 요시유키, 색체담당 야스마 미치요, 음향감독인 우라카미 야스오, 음악감독 마미야 미치오의 인터뷰가 자막과 함께 제공된다.  다카하다 이사오 감독과의 인터뷰에서는 전후 세대의 스태프들에게 현장감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어떻게 이끌었는지에 대한 내용들을 다루며 단순히 그림으로 보여지는 환경뿐만 아니라 내면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 STUDIO GHIBLI Inc.

또다른 서플먼트인 녹음 기록은 더빙현장을 담아놓은 기록물로 성우가 해당 장면의 어떻게 연기하는지 반복적인 연습과 리테이크 하는 내용들이 담겨있다.

 

총 평

공교롭게도 지난번 리뷰했던 [아메리칸 스나이퍼]와 더불어 보는 관점에 따라 메시지가 명확히 달라지는 작품을 다루게 되니 필자로서는 살짝 당혹스럽기도 하다. 특히나 [반딧불의 묘]의 경우 은유적인 표현이 많이 사용되어 텍스트로 된 원작과는 또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작품이기도 한데, 어쨌거나 작품이 지닌 논란에 대해서는 관객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다.

분명한 건 [반딧불의 묘]가 기존의 애니메이션들과는 분명히 차별화된 작품이란 점이다. 실사에 근접한, 아니 그 이상의 완성도를 바탕으로 관객에게 접근하는 감정의 호소력이 상당한 효과를 낳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도가 어떻게 읽히든 애니메이션이라는 표현 양식의 파급력이 무시못할 수준에 이르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무엇보다 이미 30년전에 이룩한 스튜디오 지브리의 가공할만한 애니메이션 퀄리티는 [반딧불의 묘]를 통해 분명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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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반딧불의 묘 : 디지팩 넘버링 한정판 - 10점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 타츠미 츠토무 외 목소리/더블루(The Bl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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