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평생에 있어 잊을 수 없는 크로스오버가 딱 두 번 있었습니다. 첫번째는 1980년 식목일 오전 1에 MBC에서 방영해 주었던 [마징가 제트 대 암흑 대장군]이었고, 두번째는 2012년의 최대 화제작인 [어벤져스]였죠. 서로 다른 작품의 주인공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두근거림과 예상 외의 완성도가 이를 뒷받침할때 그 시너지 효과는 가히 상상을 초월합니다.
하지만 대게는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은게 사실입니다. [에이리언 대 프레데터]나 [프레디 대 제이슨]만 봐도 이 분야가 단순히 캐릭터의 상품성만 가지고 승부하기에는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단박에 알 수 있는 사례들이죠. 뭐... [로보트 군단과 메카 3] 같은 희대의 괴작은 논외로 칩시다.
이번에 개봉된 [루팡 3세 vs 명탐정 코난] 역시 일본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장수 캐릭터들의 크로스오버로 큰 화제를 모은 작품입니다. 사실 극장판인 이번 작품이 나오기 이전 2009년에 이미 두 캐릭터는 TV 스페셜에서 한 차례 만난 바 있지요. 이는 두 작품의 제작사가 모두 도쿄 무비라는 점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일단 시도 자체는 환영받을만 합니다.
ⓒ Monkey Puch, Gosho Aoyama/ Lupin 3rd vs. Detective Conan Film Partners. All rights reserved.
[루팡 3세 vs 명탐정 코난]은 체리 사파이어를 훔치기 위해 일본에 잡입한 루팡 3세와 아이돌 스타 에밀리오에게 전달된 협박편지를 조사하는 코난이 하나의 사건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다소 산만한 도입부에 비해 후반부의 전개가 좀 더 안정적인 느낌을 주지만 [명탐정 코난] 극장판 특유의 거대한 스케일보다는 사건의 규모가 작은 편인데, 이는 TV판 스페셜의 '베스파니아 왕국 사건'과 연결되는 후속편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본 작품의 감상 포인트는 코난의 사건 해결 능력이나 루팡 3세의 안티히어로적인 활약상보다는 각 작품의 캐릭터들이 시전하는 코믹 요소들과 각종 오마주에서 오는 잔재미입니다. 생각 외로 많은 유머가 포진되어 있으며 각각의 작품들에 대해 조예가 깊은 관객들이라면 이런 소소한 장점들에 미소를 지을 수 있을 거라 봅니다.
ⓒ Monkey Puch, Gosho Aoyama/ Lupin 3rd vs. Detective Conan Film Partners. All rights reserved.
반면에 굳이 이 작품을 극장판으로 만들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루팡 3세] 연재 45주년과 [명탐정 코난]의 연재 20주년을 기념해 만든 이벤트성 콜라보레이션이긴 하지만 지난번 TV 스페셜과 차별되는 부분이 크지 않으며 꼭 극장에서 봐야 할만큼 볼거리가 풍부한 편도 아니거든요.
아무래도 코난의 세계관에 루팡이 원정을 온 형국이라 코난 진영에 무게중심이 맞춰진 감은 있는데, 주도적으로 극의 흐름을 이끄는 인물들이 너무 분산되어 있어 단순한 팬서비스 차원 이상을 뛰어넘지는 못합니다. 애초에 [루팡 3세]와 [명탐정 코난]이 추구하는 지향점이 너무 다르다보니 이 둘을 하나로 묶는데서 오는 괴리감이랄까... 뭔가 완성도 높고 꽉 짜여진 크로스오버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 진지모드로 들어가서 [루팡 3세 vs 명탐정 코난]을 보고나서 느낀 점 한가지는 이렇게 크로스오버로 재탕할 수 있는 컨텐츠가 있다는 사실에 대한 부러움입니다. 한국에서도 [로보트 태권브이와 황금날개의 대결]이라는 작품이 만들어 진 적도 있지만 지금에 와서야 떳떳하게 내놓을 형편도 아니고 그게 벌써 30년도 더 된 일이니, 그간 정체된 문화 현상의 심각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더군요. 결국 이러니 저러니해도 울궈먹을만한 컨텐츠 자체가 없다는 건 세대를 막론하고 참 우울한 일이지 않습니까.
P.S:
1.쿠키씬이 끝나고 나오는 떡밥용 장난이 실제로 이루질지는... 2020년이 되어 봐야 알겠지요?
2.루팡 3세 패거리들이 하이바라와 코난의 정체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건 좀...
3.사토 형사의 첫사랑이 루팡3세라는 설정은 <명탐정 코난>의 11번째 극장판 <감벽의 관>에서 언급됩니다.
4.코난의 캐릭터는 더 이상 탐정이라고 보기엔 그렇고, 적어도 극장판에서는 액션 히어로라 해도 무방하겠더군요. 이미 초등학생의 피지컬 스탯을 넘어선 활약상을 보여주는 지라...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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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에 출간된 [한국 슈퍼로봇 열전]에서는 1979년 식목일로 나와 있는데, 명백한 오타입니다. -_-;;;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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