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에 깜짝 개봉을 단행한 [비행기]는 픽사의 -어정쩡한- 히트작 [카]의 스핀오프격인 작품입니다. 말이 스핀오프지 [카]의 조연급이 주연으로 등장하는.. 뭐 그런 작품은 아니고 세계관을 공유하는 정도랄까요. 1년에 한 편의 작품만 발표하는 것으로 알려진 픽사가 다작으로 영업방침을 바꿨나 하는 생각은 접어두십시오. [비행기]는 픽사와는 관련없는 디즈니의 독자적인 프로젝트입니다.
그리고 엄밀히 말해 디즈니에서도 극장판을 내놓는 월트 디즈니 픽쳐스가 아니라 '디즈니 툰 스튜디오'라는, 주로 [라이언 킹 2]나 [타잔 2] 같은 비디오용 작품들을 뽑아내던 2진급 멤버들로 구성된 팀입니다. 같은 디즈니 마크를 달고 나와도 비디오용과 극장판의 퀄리티가 큰 차이를 보인다는 걸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테지요.
그러나 [비행기]의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엄연히 극장 개봉용으로 개봉된 이 작품은 픽사 출신의 구원투수 존 라세터가 직접 각본까지 써가며 제작진으로 참여했고 5천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북미 개봉당시 9천만 달러가 넘는 흥행성적을 기록했거든요. 게다가 [카]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 이 프렌차이즈는 작품성보다는 캐릭터 상품으로 엄청난 수익을 거두는 효자 품목이기도 합니다.
ⓒ Disney Toon Studio. All rights Reserved.
흥미롭게도 원래 [비행기]는 픽사의 [카]보다 한발 앞서 기획된 작품이었습니다. 2005년 [곰돌이 푸 - 히파럼프 무비]의 후속작으로 기획되었다가 [카]에게 자리를 양보했다가 이제서야 개봉하게 되었지요. 존 라세터가 [카]와 비슷한 시기에 구상을 마친 작품이니만큼 본질적으로는 [카]의 비행기 버전이라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겁니다. [카]의 라이트닝 맥퀸이 거만하기 이를 데 없는 스타 레이서라면 [비행기]의 주인공 더스티는 아무도 주시하지 않던 무명 레이서라는 점이 유일한 차이점이랄까요.
[비행기]는 시골 마을에서 농약이나 살포하는 경비행기 더스티의 성공담을 다루고 있습니다. 더스티는 농약살포기의 삶 대신 레이싱 챔피언을 꿈꾸는 공상가입니다. 비록 고소공포증이 있긴 해도 제법 빠른 스피드에 소질도 갖춘 그는 마침내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세계 레이싱 대회의 출전 자격을 획득하게 되지요.
몇차례의 위기와 절망을 딛고 마침내 우승컵을 거머쥐게 되는 수순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멘토, 친구들, 연인, 그리고 악당까지 [비행기]는 전형적인 아동용 애니메이션의 클리셰를 모두 갖추었습니다. 사실 두 회사가 한솥밥을 먹다보니 요즘 경계가 모호해지긴 했습니다만 어쨌거나 [비행기]는 픽사보단 디즈니에 걸맞는 작품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요.
뭔가 참신한 작품을 기대하고 극장을 찾은 관객이라면 [카]의 저예산스런 재탕에 조금 실망할 것이고, 아이들과 함께 극장가를 찾는 부모들이라면 딱 시간을 보내기에 좋은 그런 디즈니 작품입니다. 하긴 뭐 요즘은 디즈니가 아니라 픽사 이름을 들고 나와도 예전만큼의 허를 찌르는 파격성을 찾기 힘들지만요.
P.S
1.안소니 에드워즈와 발 킬머가 각각 에코와 브라보 역으로 목소리를 맡았습니다. 이 캐스팅이 흥미로운 점은 두 사람이 [탑 건]에서 코드네임 구즈와 아이스맨으로 서로 호흡을 맞췄다는 점이지요. 이번 작품에서도 에코와 브라보는 탑 건에서 두 배우가 썼던 헬멧의 디자인과 색상을 그대로 오마주했습니다. 이런 면에서 미국이란 나라의 문화적 재활용(?)은 참 부러운 면이 있어요.
2.왜 Cars는 [카]로 개봉하고 Planes는 [비행기]로 개봉하는 걸까요? 뭔가 좀 일관성있게 제목을 정하는게 좋지 않나... 마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
3.십시일반으로 모은 부품을 가지고 오버홀에 성공해 우승하는 주인공도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농약살포용 경비행기의 모습 그대로 우승을 거두는 컨셉이 더 좋지 않았을까 합니다. 결국은 아이템빨로 이겼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뭐 어디에 교훈의 초점을 맞추느냐의 문제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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