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페니웨이 (admin@pennyway.net)
진부함을 비범하게 바꾸는 긍정의 힘
문득 학창시절의 일화가 생각납니다. 고3때의 수학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선생님이 무언가를 설명하면서 갑자기 한 학생을 일으켜 세우더니 “얘가 서울대를 못간다는 건 확률적으로 100%에 가깝지, 그렇지?” 라고 말하는게 아닙니까. 그 순간 반 아이들이나 그 당사자는 멋적게 웃고 넘겼지만 지금도 내 기억 속에 이 일이 남아있는걸 보면, 선생이란 작자가 학생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는 느낌이 각인되어 버렸기 때문일 겁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어 온 크고 작은 폭력들은 비단 물리적인 형태만으로 행사된 건 아니었죠. 적어도 필자가 학생이던 시절에는 학생들을 노골적으로 차별하는 것도 모자라 기분 내키는데로 막말을 일삼는 교사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지만 최근 교권에 대한 학부형들의 뿌리깊은 불신은 그러한 학창 시절을 겪어 온 아이들이 이제 부모가 되어 나타나는 또다른 부작용이라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이 생각이 떠오른 이유는 츠보타 노부타카의 논픽션 에세이를 영화로 옮긴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를 보면서 주인공이 처한 환경, 일본의 입시제도와 교육문화, 심지어 가정의 모습까지도 한국과 무척 닮아있었기 때문입니다.
ⓒ Asahi Shimbun, CBC Television, Dentsu.
어린 시절 왕따를 경험하며 이 학교 저 학교를 전전하던 사야카는 마침내 마음에 맞는 친구들을 사귀면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만 공부는 뒷전으로 여긴 탓에 전교 꼴찌의 문제아로 낙인찍힙니다. 학교에선 선생에게 “쓰레기”라고 불리며 누구에게도 기대란 걸 받아본 적이 없는 사야카는 결국 소지품 검사에서 담배가 나오는 바람에 정학처분을 당하게 되죠.
헌신적인 어머니의 도움으로 1:1 맞춤교육을 모토로 하는 학원에 등록한 사야카는 츠보타 선생을 만나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절대로 학생을 나무라는 법이 없고,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항상 긍정의 말로 격려를 베푸는 츠보타의 교습 방식을 통해 사야카는 일본 최고의 사립대학인 게이오기주쿠대 진학이라는 목표를 세우게 됩니다.
ⓒ Asahi Shimbun, CBC Television, Dentsu.
어찌보면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는 진부한 소재를 가진 영화입니다. 솔직히 말해 이 영화의 기본 줄거리, 즉 ‘전교 꼴찌가 일류 대학에 합격한다’는 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 감동을 주기엔 부족합니다. 일류 대학을 간다는 것 자체가 인생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고, 신물이 넘어올 정도로 공부에 몰두하는 사야카의 모습을 보노라면 [록키]의 훈련장면처럼 감정이입이 되기 보다는 그냥 딱하다는 느낌이 먼저 들거든요. ‘저 아이가 대학을 나온다고 해서 과연 행복한 삶을 살게 될까?’ 이런식의 다큐적인 접근을 하게 되면 답이 안 나옵니다. 이는 아마도 입시 위주의 교육 시스템을 가진 한국과 일본에서 나올 수 있는 드라마의 한계라고 봐야겠지요.
그럼에도 이 영화는 몇 가지 교훈과 감동을 줍니다. 일단 이 이야기가 실화라는 점은 진부한 줄거리의 힘을 실어주는 효과를 냅니다. 특히 사야카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츠보타 선생의 긍정의 가르침은 누군가의 멘토가 되려는 사람에겐 상당히 귀감이 되는 부분입니다. 동시에 아들에게 자신의 못다한 꿈을 강요하는 아버지와는 달리 딸을 위해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하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교육의 주된 역할이 교사와 부모에게 모두에게 있다는 점을 진정성있게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 Asahi Shimbun, CBC Television, Dentsu.
감독인 도이 노부히로는 [지금, 만나러 갑니다], [눈물이 주룩주룩] 등을 통해 특유의 감성적인 코드를 매끈하게 뽑아내는 연출자로 유명한데, 이 작품에서도 영화의 주제인 긍정의 에너지를 재치있고 기복없는 연출로 잘 표현해 주었습니다.
감독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배우들의 개성도 잘 활용했습니다. [전차남]의 노력파 배우 이토 아츠시는 모처럼 자신에게 걸맞는 캐릭터를 찾아간 느낌입니다. [전차남] 이후 딱히 인상적인 작품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만 이번 작품에서 주연급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주연인 사야카를 연기한 아리무라 카스미는 인생 연기라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로 사랑스런 불량소녀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 냅니다. 만약 아리무라 카스미의 팬이라면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는 연기자로서의 그녀를 발견할 수 있는 필견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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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는 이야기의 한계가 명확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실화에서 오는 의외의 재미와 더불어 긍정의 말 한마디가 이룬 기적적인 힘의 결과를 확인한다는 점에서 감동적이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화입니다.
블루레이 퀄리티
1.85:1 화면비의 1080p 해상도를 갖춘 본 블루레이는 대체적으로 무난한 화질을 보여줍니다. 낮 장면에서는 안정되고 은은한 명부를 표현하고 있으며 야간 장면은 전반적으로 인공적인 조명이 들어간 촬영 장면이 대부분이지만 암부에서의 계조나 노이즈 측면에서 딱히 불만스런 부분은 없는 담백하고 현실적인 화면이 특징입니다. 감독의 대표작인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서는 상당히 서정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영상미를 보여주었는데,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는 그런 영상미가 주를 이루지는 않지만 주인공 사야카가 노을지는 풍경 위로 영어 문법을 복습하며 자전거를 타는 장면에서의 색감은 아름답다는 감탄이 절로 나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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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sahi Shimbun, CBC Television, Dentsu.
사운드는 DTS-HD MA 5.1의 다소 평범한 스펙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르적인 특장점이 두드러지는 영화는 아니기 때문에 딱히 사운드의 임팩트를 느낄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는 반면, 멀티 채널의 기능을 잘 살린 각 채널의 분리도나 프론트의 대사 전달 및 소소한 일상에서 전해지는 디테일한 사운드믹싱은 꽤 준수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영화 중간 중간에 삽입된 사운드트랙이 영화의 분위기와 꽤 잘 맞아 떨어지기 때문에 듣는 즐거움도 적지 않은 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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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피쳐
부가영상의 종류는 많지 않지만 나름 알찬 메이킹 영상과 배우의 인터뷰, 그리고 예고편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모두 한글자막이 수록되어 있고요.
먼저 메이킹 영상은 말 그대로 촬영 현장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는 영상 다이어리입니다. 진지하게 연기에 임하는 배우들의 모습, NG 장면 등 현장에서의 생동감 넘치는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예의 자전거 씬을 찍기 위해 새벽 3시부터 기상해 촬영에 임하면서도 피곤한 기색하나 없는 아리무라 카스미의 모습에서 프로의 느낌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또한 감독의 연기 지시사항이 어떻게 배우에 의해 실현되는지도 볼 수 있습니다. 헐리우드 메이저 영화사 타이틀의 메이킹 필름과는 달리 인위적으로 가공되지 않는 순수한 제작 과정을 지켜보는 건 색다른 경험입니다.
ⓒ Asahi Shimbun, CBC Television, Dentsu.
인터뷰 영상에서는 아리무라 카스미, 이토 아츠시, 그리고 사야카 엄마로 열연한 요시다 요의 인터뷰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에 대한 소감, 동료 배우와의 관계, 감정적으로 힘들었던 촬영 등 다양한 질의-응답의 구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본편 영상을 삽입하지 않고 순전히 배우와의 일문일답으로만 이루어져 조금 딱딱한 느낌이긴 합니다만 실제 배우와의 인터뷰 자리에 배석해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좀 더 많은 배우들의 인터뷰가 담겨 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은 남는군요.
ⓒ Asahi Shimbun, CBC Television, Dentsu.
총평
누구에게나 학창시절은 있습니다. 그것이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그 시기는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만한 수많은 가능성이 내제된 시절이지요. 무한한 가능성이 내제된 아이들의 잠재력은 보지 않고 당장 눈앞에 나타난 성적만으로 평가하는 경향은 여전히 우리의 일상화된 현실일지도 모릅니다.
따뜻한 긍정의 말 한 마디로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게 된 실화를 담은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는 치열한 입시제도의 경쟁 속에서 교육의 본래 목적이 상실된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보며 어른으로서의 올바른 지도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게 합니다. 국
내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작품이지만 뒤늦게나마 포토북 책자가 들어간 풀슬립 1000세트 한정판 패키지와 준수한 퀄리티를 가진 블루레이로 출시되어 높은 만족도를 안겨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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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 : PET 풀슬립 1,000세트 넘버링 리미티드 에디션 - 도이 노부히로 감독, 이토 아츠시 외 출연/아이브엔터테인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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