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ㅋ

킹덤 오브 헤븐 - 예루살렘은 과연 천상의 왕국인가

페니웨이™ 2007. 8. 10. 10:16
반응형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0년, 전세계를 휩쓴 최고의 화제작은 단연 [글래디에이터]였다. 간만에 등장한 역사 서사극이었지만 오락성과 재미, 작품성까지 고루 갖춘 이 작품은 그해 흥행전선뿐만아니라 아카데미를 독식하는 쾌거를 이룬 명작으로 꼽힌다. 이를 계기로 헐리우드에는 다시금 서사물이 하나 둘 제작되어지게 된다.


사실 [킹덤 오브 헤븐]은 이전부터 순탄하게 제작이 이뤄진 작품이 아니었다. [로보캅],[토탈리콜],[원초적 본능] 등으로 헐리우드의 흥행메이커로 떠오른 네덜란드 출신의 폴 버호벤 감독이 일찍이 탐냈던 프로젝트였다. 당시에 아놀드 슈왈제네거를 기용해 만들려고 했던 십자군 프로젝트가 정확히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현재로선 확인할 길은 없지만 유혈과 폭력이라는 소재를 즐겨쓰는 폴 버호벤 감독의 특성상 [스타쉽 트루퍼스]의 중세버전이 되었을런지도 모를일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TriStar Pictures/ Touchstone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킹덤 오브 헤븐]은 어쩌면 폴 버호벤의 중세판 [스타쉽 트루퍼스]가 되었을지도?


어쨌든 1990년대 당시의 상황으로서는 폴 버호벤이 구상했던 거대한 스케일의 대서사극을 감당할 여건이 도저히 성립되질 않았다. 이미 서사극은 한물간 장르로 취급되었으며, 오늘날과 같이 훌륭한 CG효과 없이 전투장면등을 묘사하기란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십자군 프로젝트는 여러 감독의 손을 전전하다 상당기간 보류된채 실행되지 못하고 있었다.

ⓒ 20th Century Fox. All rights reserved.

거장의 반열에 들어선 명감독 리들리 스콧(오른쪽).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중 한명이다


결국 이 십자군 프로젝트는 [글래디에이터]로 서사극의 부활을 알린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에게로 돌아갔다. 제작사 측으로서는 리들리 스콧이야말로 '검증된' 선택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꼭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글래디에이터] 이후 등장한 또하나의 대작 서사극 [트로이]가 비교적 성공적인 케이스라면, 올리버 스톤의 <알렉산더>는 그야말로 재앙에 가까운 작품이었다. 서사극이라고 해서 무조건 큰 스케일에 유명배우나 명감독을 쓴다고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님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특히나 [알렉산더]의 실패는 다음차례인 [킹덤 오브 헤븐]에게 있어서도 가히 좋은 소식은 아니었던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올리버 스톤의 야심작 [알렉산더]. 1억 5천만불을  투자했지만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참패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는 달리 [킹덤 오브 헤븐]은 주말 3일동안 1,964만불의 수입을 기록, 주말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평론가들의 반응도 상당히 호의적이었다. 다만 제2의 [글래디에이터]를 기대한 관객이라면 다소 실망했을지도 모르겠다. 국내에서의 흥행성적이 신통치 않았던 이유도 그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작품은 오늘날의 국제정세 -기독교 국가와 이슬람 국가의 충돌이라는 상황을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듯 하다. 영화의 제목인 [킹덤 오브 헤븐]이 의미하는 것, 성지 예루살렘은 과연 무엇인지를 놓고 고뇌하는 주인공 발리안(올랜도 블룸 분)의 모습에서도 가족을 잃은 분노에 몸을 싣는 막시무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출발은 그와 비슷했지만 말이다.

십자군 원정이 역사적으로 가톨릭에 있어서는 씻을 수 없는 유혈죄임을 일깨워 주듯, 이 영화는 오히려 이슬람 교도들에게 더 동정적인 시선을 보낸다. 마치 모든 것이 신의 뜻인냥 남발하는 가톨릭 사제들이나 가식적인 영주들의 모습에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는가? 마치 전 세계의 평화를 위해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의 명분없는 전쟁과 무엇이 다를 바 있는가? 이렇듯, 이 작품은 수백년 이상 해결되지 않는 십자군 전쟁의 상흔을 거슬러 올라가는 사뭇 진지한 테마로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물론 클라이막스의 공성전 장면은 매우 박진감 넘치는 명장면이지만 전반적으로 영화는 주인공 발리안 만큼이나 차분하고 현실적이다.

ⓒ 20th Century Fox. All rights reserved.

서사극인 만큼 전투장면과 후반부의 공성전은 대단한 장관을 이룬다


그러면 배우들의 연기는 어떠한가? [글래디에이터]의 성공요인은 물론 리들리 스콧감독의 뛰어난 연출없인 불가능했겠지만, 아무래도 주연을 맡았던 러셀 크로우의 호연을 빼놓을 수 없다. 단지 연기를 잘했다는 것만이 아니라 이 정도의 큰 서사극을 이끌고 가기 위해선 배우의 카리스마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영화가 그저 전투씬만을 위한 눈요기용 영화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선 극의 흐름을 끌고갈 파워풀한 배우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선택은 어떠했는가? 그는 [반지의 제왕]의 꽃미남 레골라스역으로 전세계 수많은 여성팬들을 뿅가게 만든 올랜도 블룸을 택했다. 물론 [반지의 제왕]에서 그는 기대치 이상의 멋진 호연을 보여준 것이 사실이나, 대서사극에서 '원톱'으로 나설 올랜도 블룸은 다시 생각해 볼만한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그의 연기가 딱히 흠잡을 만한 점은 없다하더라도 이 거대한 영화를 혼자서 끌고 나가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주인공 발리안의 캐릭터엔 마초적인 면은 없을지언정 분명 야리야리하고 보호본능마저 불러일으키는 올랜도 블룸에겐 다소 부적합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필자뿐만이 아닐 것이다.

ⓒ 20th Century Fox. All rights reserved.



감독도 이런 원톱의 부족함을 느꼈는지 무게감있는 조연들로 만회하려고 한 흔적은 보인다. 하지만 니암 리슨이나 제레미 아이언스, 가면 쓴 모습만 나오는 에드워드 노튼 등 웬만한 영화들에서 주연으로 활약할 인물들이 올랜도 블룸의 서포터나 하고 있으려니 오히려 감질나기만 하다. 이 작품에서 가장 아쉬운 부면이 아닐 수 없다.

반면 [007 카지노 로얄]의 본드걸로 캐스팅된 에바 그린은 프랑스 배우로서 영화 [몽상가들]에서 인상적으로 다가온 신예다. [킹덤 오브 헤븐]에서 그녀는 다른 남자 배우들보다도 터프한 이미지의 캐릭터를 연기했는데 80년생인 그녀의 연륜이 믿기지 않을정도로 강한 카리스마를 분출하고 있다.

ⓒ 20th Century Fox. All rights reserved.


결국 영화는 대장장이에서 영웅으로 떠오르는 한 남자의 인생역전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십자군 원정이 지녔던 의미에 중심을 두다 보니, 정작 중요한 스토리는 뒷전이 되어 버리고 주제만이 남아 버린 셈이다. 하지만 이런 단점들을 눈감아 준다면 [킹덤 오브 헤븐]은 바람직한 주제의식을 가진 서사극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작품이다. 너와 나, 선과 악을 이분화시키는 단순한 영화에서 한발짝 나아가 너와 내가 공존할 수 있는 천상의 왕국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염원을 느낄 수 있다면 말이다.


* [킹덤 오브 헤븐]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20th Century Fox.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 참고: 알렉산더(ⓒ Warner Bros. Entertainment Inc. All rights reserved.), 스타쉽 트루퍼스(ⓒ TriStar Pictures/ Touchstone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