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작열전(怪作列傳) No.142
문득 40년전의 한 사건이 생각납니다. 때는 1977년 9월이었습니다. 강동구의 한 초등학생이 [6백만불의 사나이]를 보고 흉내를 내다가 교각에서 추락사한 사고가 발생했지요. 메스컴에서는 일제히 TV활극의 유해성을 맹비난했고, 사회적으로도 꽤 논란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 사건으로부터 몇 개월 후에 한 신문에서 [6백만불의 사나이]의 감독인 윌리엄 제카라는 사람과의 인터뷰 기사를 내보냅니다. 그 인터뷰 내용 가운데는 한국에서의 그 사건에 대해 언급하면서 TV 드라마의 역기능에 대해 의견을 묻는 대목도 나오는데요, 돌아온 답변은 “미국에서도 그런 불상사가 있지만 극히 드문일이며, 이런 일을 일반화 시켜서도 안되고 가공의 세계를 구별하는 법을 가르쳐 줘야하는 건 부모의 책임이지 매스미디어에 전가해서는 안된다”는 따끔한 일침이었습니다.
말이야 바른 말이긴 한데, 미스터리한건 이 윌리엄 제카라는 인물입니다. 분명 [6백만불의 사나이]의 감독이자 각본가이고 단골 악역으로도 출연했다고 소개되는데, IMDB에는 그 어디에도 윌리엄 제카라는 인물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구였던 걸까요?
암튼 뭐 이런 추억속의 미스터리는 잠시 잊어두고… 문제의 추락사고가 발생하기 몇 개월 전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6백만불의 사나이]가 방영된 이후 한국은 그야말로 신드롬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큰 인기를 모았습니다. 오죽하면 여기저기서 [6백만불의 사나이]를 모방하거나 슬그머니 끌어다 쓴 만화들이 나오기 시작했는데요, 예를 들자면 이두호 화백의 코믹컬라이즈판 [6백만불의 사나이]가 대표적입니다. 그리고 제목만 살짝 바꾼 우호 작가의 (이두호의 패러디인가 ;;;;) [7백만불의 사나이]란 만화도 있었지요.
ⓒ 이두호/ 중앙일보사 All Rights Reserved.
그 외에도 박수동 화백의 명랑만화 [5학년 5반 삼총사]를 보면 번외편으로 ‘6백만불의 사나이’ 에피소드가 등장하며 (바다그림판의 복간판에서는 삭제됨), 김철호 화백의 [초능력 전자로봇의 위력] 같은 작품은 이소룡과 6백만불의 사나이를 뒤섞은 플롯의 공상과학만화입니다. 애니메이션 [전자인간 337]의 337이 당시 6백만 달러를 한화로 환산한 33억 7천만원에서 따온 숫자라는 건 너무나도 유명한 사실이죠.
ⓒ 김철호/ 오똑이문고 All Rights Reserved.
이렇듯 [6백만불의 사나이]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자, 한국 영화계는 본 고장인 미국에서도 손대지 않았던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됩니다. 바로 극장판 [6백만불의 사나이]를 제작하기로 한 것이죠. 제목은 [무적 600만불] !!
[성난 얼굴로 돌아 보라]로 충무로에 입성해 50여편이 넘는 영화를 연출한 B급 무협액션물의 거장 김시현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살어리랏다]의 윤삼육 감독이 각본을 쓴 이 작품에는 당연하게도 스티브 오스틴 역의 리 메이저스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어디 미군부대에서 캐스팅한 느낌의 짝퉁 배우를 섭외, 리 메이저스 대신 주인공으로 등장시키지요.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미 국무성과의 공조하에 신무기를 개발하던 한국의 황박사가 어느날 서류가 담긴 가방을 도난당하게 됩니다. 이에 황박사는 미국 측에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600만불의 사나이를 보내달라고 요청하지요. 그래서 스티브 오스틴…. 이 아니라 오스카 콜맨이라는 사이보그 첩보원에 파견됩니다. 한편 서류를 훔친 범죄조직은 어이없게도 공사장에서 놀던 꼬맹이 두 명에게 가방을 빼앗기게 되는데, 이 때문에 범죄조직과 꼬맹이들, 오스카 콜맨 사이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집니다.
ⓒ 화천공사 All Rights Reserved.
간단한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무적 600만불]은 무지막지하게 단순한 아동영화 스토리에 인기 캐릭터인 6백만불의 사나이를 우겨넣어 급조한 괴작입니다. TV 드라마야 원래 더빙판이니 그러려니 하지만 난데없이 오스카 콜맨(성우는 이강식씨 입니다 -_-;;;)이 한국인들과 아무 통역없이 이야기하는 걸 보면 뭔가 기분이 아스트랄해지지요.
특수효과 따위는 사용될리가 없고, 그저 뚜뚜뚜뚜뚜….하는 효과음과 슬로우 모션 범벅으로 6백만불의 사나이의 괴력을 표현하는데, 그 방법이 너무나도 조악하고 형편없어서 실소가 터집니다. 가령 콜맨이 강 건너 편으로 점프를 하면 뭔가 공중에서 전방 이동하는 장면이 나와야 하는데 점프하는 장면과 착지 장면만 나온다든지 하는 것들이죠.
ⓒ 화천공사 All Rights Reserved.
액션씬도 배꼽을 잡습니다. 콜맨과 악당들이 주먹다짐을 벌이는 액션씬에서조차 슬로우 모션이 남발되는데, 악당이 맞으면서 쓰러질 때 보통은 ‘으악’하고 단발마의 비명을 지르며 쓰러집니다만 이 영화에선 슬로우 모션이라 ‘으악 으악 으악 으악 으악~’이러면서 노래방 마이크 에코음이 퍼지듯 쓰러지니 웃음이 안나올래야 안나올수가 없어요. 게다가 단역 한명이 뒤돌려차기를 하다가 그만 바지가 북~하고 찢어지는데 의도적인 장면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라 더 배꼽빠집니다. ㅎㅎ
ⓒ 화천공사 All Rights Reserved.
그래도 나름 저작권을 의식했는지 리 메이저스 짝퉁 배우를 데려다 놓고 스티브 오스틴이라고 우기지는 않고, ‘6백만불의 사나이’가 진짜 있는 겁니까? 라는 식으로,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설정하며 현실에서의 6백만불의 사나이는 오스카 콜맨이라고 설득력이 들어간 설명이 있….긴 개뿔이!
하여간 이 작품은 1977년 7월 24일, 서울의 1급 상영관인 대한극장에서 개봉하면서 방학시즌 특수를 노렸지만 26000명 정도의 관객동원에 그치며 사실상 흥행에는 참패하고 맙니다. 근데, 이 흥행부진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단지 작품성 때문만은 아니었죠.
[무적 600만불]이 개봉되기 전, 대한극장에서는 10만 관객을 돌파한 흥행작 [엄마없는 하늘아래]를 상영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적인 신파를 잘 살린 이 작품은 꽤 큰 화제를 모았었는데, 어느 정도 관객몰이가 되었다고 판단한 대한극장 측에서 1개월만에 [엄마없는 하늘아래]를 내리고 [무적 600만불]을 걸게 된 것이지요.
[엄마없는 하늘아래]의 제작사 한진흥업 측은 계약 위반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합니다. 원래 하루 관객 수 1000명 이상이 들면 상영을 계속한다는 계약을 극장측이 위반했다는 것이었지요. 법정소송까지 간 이 사건은 한진흥업 측의 승리로 끝나면서 [무적 600만불]은 세기극장에서만 상영하게 됩니다. 이는 당시 사회적으로도 꽤 큰 사건으로서 영화 제작사와 극장 사이에 누가 갑의 횡포를 부리는지 명확히 알려준 계기가 되었지요.
[무적 600만불]을 보면 70년대 후반 당시 한국 문화계의 현실을 알 수 있어 조금은 씁쓸합니다. 내세울만한 콘텐츠가 없어서 타국의 캐릭터를 슬그머니 카피한 것은 여전하고, 이러한 관행이 계속되어 8,90년대 아동 비디오영화 시장에서 [북두의 권]이니 [드래곤볼]이니 하는 괴작들이 줄줄이 양산되는 기록을 남기게 되었으니 많이죠.
이제 곧 헐리우드에서는 [6백만불의 사나이]를 마크 월버그 주연의 영화로 리메이크 한다는데, 개봉기념으로 한국에서 동시상영 같은 이벤트 안해주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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