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그린 영화들을 보면 미담일색입니다. 그 대부분은 문제 학생을 정상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뛰어난 멘토의 캐릭터 구조를 가지고 있죠. 뭐 이건 이거 나름대로 아직까지 먹히는 이야기이긴 한데, 진부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 틀을 깬 영화가 [위플래쉬]입니다. 이 영화는 겉으론 음악영화의 장르적 베이스를 취하면서도 구조적으로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조명합니다. 그런데 이야기의 진행과 캐릭터의 구성은 전혀 다릅니다. 우선 이 영화의 학생은 매우 선량하고 순진합니다. 반면 선생이란 작자는 말그대로 '폭군'입니다. 음악적 능력은 탁월하지만 제자를 보듬거나 격려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죠. 멘토보다는 조련사에 더 가깝달까요.
처음에는 그저 잘하는 재즈 드러머가 되려 했던 학생에게서 재능을 발견한 선생은 그를 최고의 경지로 올리기 위해 극한의 상황까지 몰아 붙입니다. 학생은 이에 굴복하지 않고 오기와 열정을 발휘하며 나약했던 자신을 벗어버리고 점점 더 드럼의 세계로 빠져듭니다. 이를 위해 친구도 연인도 다 버리고 말이죠.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나드는 두 사람의 줄다리기는 드디어 한 사건을 계기로 폭발하고 맙니다.
ⓒ Bold Films, Blumhouse Productions, Right of Way Films. All rights reserved.
[위플래쉬]는 재즈밴드의 드럼이라는 분야에서 스승과 제자가 격돌하는 과정을 박진감 넘치게 묘사합니다. 네, 방금 제가 한 말은 뭔가 이상하죠? 음악영화와 박진감이라는 표현말입니다. 그런데 달리 표현할 말이 없어요. 이 영화는 그냥 액션스릴러입니다. 물리적 충돌이 없을 뿐 영화 내내 두 사람은 격렬하게 치고 받습니다. 그 템포가 너무나도 절묘한 나머지 이 영화가 과연 무엇을 말하려는지조차 잊어버리고 그냥 그 흐름에 몸을 내 맡기게 되지요.
결말조차도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보통은 이런 경우 예상되는 결말이 관객의 머릿속에 그려지기 마련인데, [위플래쉬]의 경우에는 그 작은 전형성조차 용납하지 않아요. 놀랄만큼 격정적인 엔딩만큼은 근래 봐 온 어떤 영화보다도 강렬한 울림을 줍니다.
영화 내내 굉장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J.K 시몬스와 마일즈 텔러의 연기는 정말이지 기립박수가 나올만큼 뛰어납니다. 이 영화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시몬스의 연기는 두 말할 필요가 없겠고, 원래 데인 드한이 물망에 올랐던 자리에 마일즈 텔러를 캐스팅한 것도 결과적으로는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보여집니다.
작품성으로나 상업성으로나 [위플래쉬]의 완성도는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음악영화로서도, 학원 드라마로서도 [위플래쉬]는 소재가 지닌 원천적인 한계를 훌쩍 뛰어넘고 있습니다. 참 대단한 영화입니다.
P.S: 국내 개봉이 너무 늦은 탓에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보여준 조크를 대다수의 관객이 즐길 수 없다는 건 참 슬프네요. 물론 이는 [버드맨]에게도 적용되는 얘기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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