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 오페라의 역사를 다시 쓴 [스타워즈]보다도 더 오래된 시리즈인 [스타트렉]은 수십년동안 트레키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며 최장수 SF 프렌차이즈로 자리잡았다. 허나 국내에서의 인지도나 인기는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는데, 아마도 그건 [스타트렉]이 활극 위주의 오락물이 아니라 인물간의 관계와 과학적인 현상에 비중을 둔 드라마적 요소가 더 강한 작품이었고, 오리지널 시리즈를 공중파에서 접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지 않나 싶다. 또 한가지 [스타트렉]은 방대한 세계관을 무한대로 확장해 간 만큼 마니아들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시리즈이지만 정작 일반 관객들에게는 진입장벽이 높을 수 밖에 없다는 딜레마를 안고 있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J.J. 에이브람스 감독의 [스타트렉: 더 비기닝]은 마니아와 일반 관객 모두에게 있어 만족을 안겨다 주었다. 그 이유는 [스타트렉: 더 비기닝]이 지닌 독특한 성격 때문인데, 외견상으로는 분명한 리부트이지만 시점상으로 볼 때는 프리퀄이며, 내용의 전개상으로는 씨퀄이 되는 대단히 놀라운 구조를 가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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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스타트렉]에 대해 조금의 애정이라도 가졌던 관객이라면 전작인 [스타트렉: 더 비기닝]에서 젊은 스팍이 그 분과 조우하는 장면을 보면서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이런 측면에서 새롭게 출발한 쌍제이표 [스타트렉]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서는 적어도 [스타트렉] 오리지널 시리즈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지식을 보유한 '기존 팬들'에게 좀 더 유리한 면이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제 두번째 모험으로 돌아온 [스타트렉: 다크니스]는 성공적인 항해를 알린 쌍제이의 본격적인 연출 내공이 발휘되는 작품이다. 본 작품은 전작의 성격 즉 리부트이자 프리퀄, 그리고 씨퀄이었던 다중적 구조에 '리메이크'를 추가했다. 알만한 사람은 대강 눈치챌 테지만 그래도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영화를 감상하지 않은 분들은 다음의 내용을 과감히 패스해주시기 바란다.
[스타트렉: 다크니스]를 소개하기 위해서는 먼저 [스타트렉] 시리즈의 두번째 극장판 [스타트렉 II: 칸의 분노]라는 작품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스타트렉: 다크니스]가 사실상 [스타트렉 II: 칸의 분노]의 리메이크이자 오마주이기 때문이다. 커크와 스팍의 입장이 뒤바뀌는 동력로 씨퀀스를 비롯, 캐롤 마커스의 등장이나 함선의 대결씬 등 실로 깨알같은 디테일이 돋보이지만 본 작품이 지니는 오마주의 성격에 대해서는 다음의 한 장면 만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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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장면은 "칸!!!!"을 외치는 장면들이다. 첫번째 장면은 인터넷상에서도 짤방으로 돌아다니는 유명한 씬인데, [스타트렉: 다크니스]에서는 커크와 스팍의 입장이 바뀌는 상황이 허다하다. 위의 장면을 포함해, 동력 원자로 씨퀀스나 함선간의 통신을 통해 협상을 이루어 나가는 심리전 장면은 모두 커크가 아니라 스팍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 때문에 J.J. 에이브람스의 [스타트렉]에서의 진정한 주인공은 커크가 아니라 스팍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스타트렉: II: 칸의 분노]는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이력을 가진 작품이다. 본래 [스타트렉 II: 칸의 분노]는 오리지널 TV시리즈의 22번째 에피소드인 '스페이스 씨드 Sapce Seed'의 후속편 격인 작품으로서 TV판의 스토리를 극장판으로 확장해 이를 씨퀄로 완결시킨 사례는 영화사를 통틀어 [스타트렉 II: 칸의 분노]가 최초다.
더불어 [스타트렉 II: 칸의 분노]는 정적인 느낌이 강했던 시리즈 전반의 분위기를 쇄신시켜 함선 간의 독파이트 씬을 과감히 도입해 액션을 강화하는 등 오락적 재미를 대폭 향상시킨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상대적으로 미지근했던 [스타트렉] 첫번째 극장판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데 성공했고, 향후 10편까지 이어진 극장판 시리즈의 교두보를 만들기도 했으며, 칸이라는 인물을 [스타트렉] 세계관에서 가장 강력한 악당으로 각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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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깐, 그럼 칸은 과연 누구인가? 본명 칸 누니엔 싱. 1990년대 우성학 논란으로 발발한 세계대전의 생존자로 1993년 경, 40개 국가에서 동시에 출현해 권력을 잡게 된 일련의 초인들 중 한 명이다. 일반인들보다 월등한 완력과 재생력, 그리고 지능을 가진 그는 강력한 전제군주로 군림하다가 반대세력에 의해 축출되어 2세기 동안 SS 보타니 베이호에 동면 상태로 잠들어 우주를 유랑하게 된다. 원작에서는 배우 리카르도 몬탈반이 이 역할을 맡아 중년과 노년의 칸을 모두 멋지게 소화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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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스타트렉: 다크니스]에 등장하는 칸과 오리지널 [스타트렉] 시리즈의 칸은 동일한 인물인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금 다르다. 우선 원작의 칸은 라틴 오리엔탈계로 설정된 반면 이번 앵글로 색슨계의 칸과는 인종부터 다르다. 칸과 승무원들이 발견되는 시점이나 계기도 오리지널과는 다른데, '스페이스 씨드' 편에서는 엔터프라이즈호의 커크 선장에 의해 발견되지만, [스타트렉: 다크니스]에서는 마커스 제독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그 존재가 존 해리슨이라는 인물로 가공되어 은밀히 스타플릿을 돕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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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스타트렉: 다크니스]는 앞서 서술했듯이 리메이크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전작에 이어 리부트한 세계관의 독자적인 성격을 구축하는 한 편, 기존 세계관의 유산들을 취하는 감독의 영리한 연출은 여전히 빛을 발한다. 다시말해 [스타트렉: 다크니스]는 여전히 [스타트렉]답지만 보다 새로워진 [스타트렉]의 본격적인 출발을 알리는 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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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말할 것 없이 이번 작품의 관전 포인트는 단연 존 해리슨, 즉 칸 역을 맡은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열연이라 하겠는데,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과 [다크 나이트]의 조커, 그리고 [샤이닝]의 잭을 뒤섞은 듯한 그만의 독특한 캐릭터는 고요함 속의 파워를 발산했으며, 오리지널에서 각인된 리카르도 몬탈반의 이미지를 뛰어넘어 영화 전반에 크나큰 존재감을 행사하고 있다. 이만큼 악역이 돋보인 작품을 보는 건 실로 오랜만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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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전통적인 [스타트렉]의 정적인 드라마를 포기하고 요란스런 블록버스터의 노선을 택한 에이브람스 감독의 선택을 다소 못마땅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 21세기에 걸맞는 [스타트렉]의 변신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적극 찬성하는 바이다. 오히려 볼거리만 풍부한 여느 작품들과는 달리 드라마와 캐릭터 구성이 탄탄하고 시리즈로서의 연계성까지 갖춘 쌍제이표 [스타트렉]은 마니아들과 일반 관객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오락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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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만점을 주고 싶은 타이틀이 나왔다. [스타트렉: 다크니스]는 작품적인 재미만으로도 소장욕구를 증가시키지만 시청각적인 요소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는 작품이다. 사실 [스타트렉: 다크니스] 같은 SF영화의 특성상 일부 영화들에서는 CG와 실사와의 괴리감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경우가 있는데 본 타이틀의 경우 그러한 단점을 전혀 찾아 볼 수가 없다. 100% CG로 처리된 장면과 배우가 등장하는 실사화면의 화질 편차가 아주 미세하게 드러나긴 하지만, 이는 CG로만 구성된 화면이 완벽할 정도로 깨끗하다는 뜻이지 실사 화면의 화질이 떨어진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워낙 선명도가 높고 오브젝트의 디테일 표현력이 좋다보니 감독이 즐겨 사용하는 렌즈 플레어 효과가 극장에서와는 달리 눈에 거슬린다는 게 단점아닌 단점이 되어버린 모양새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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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에 대해서도 만점을 주지 않을 수 앖다. 무손실 Dolby True HD 5.1로 압축된 사운드는 리얼하며 파워풀한 음향효과를 전달하며 특히 액션씬에서 그러한 박력은 더욱 배가 된다. 또한 본 작품의 특징 중 하나는 중저음의 매력적인 보이스를 지닌 배우가 3명이나 등장한다는 점인데, 바로 파이크 함장 역의 브루스 그린우드와 마커스 제독 역의 피터 웰러, 그리고 칸 역의 베네딕트 컴버배치다. 이들 배우의 굵직한 음성이 센터 스피커를 통해 우퍼처럼 전달되는 것을 직접 체험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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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렉: 다크니스] 블루레이에는 총 6개의 챕터로 나누어진 메이킹 필름이 담겨져 있는데, 주로 프로덕션 디자인 측면에서 각 장면들이 어떻게 촬영되었는지에 대한 해설로 이루어져 있다. 한가지 공통적인 사항은 본 작품의 장르적 특성상 CG가 많이 사용되었을 거라 생각하기 쉬운데, 의외로 아날로그적인 요소들이 많다는 점에 놀라게 될 것이다.
먼저 "Creating the Red Planet"은 극초반 니비루 행성에서의 추격씬에 대해 소개한다. 선명한 붉은색 숲이 인상적인 니비루 행성을 구현하기 위해 CG가 아니라 직접 초목을 심고 행성을 창조하다시피 했다는 점은 무척 인상적인 대목이다. 나뭇잎을 붉게 칠하는 데에만 무려 6개월이 소요되었고, 행성의 원주민들은 모두 CG로 처리하려다가 직접 메이크업 하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해 진흙 등을 배우의 몸 전체에 바르고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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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tack on Starfleet"은 존 해리슨과 커크가 처음 대면하는 스타플릿 공격 씨퀀스에 대해 설명한다. 회의실 세트를 만드는 작업부터 촬영장의 상당부분이 아날로그 적인 느낌을 주는데, 시퀀스에 현장감을 부여하기 위해 조명으로만 이루어진 비행선을 만들어 빛을 회의실 세트로 발사해 한층 리얼한 장면을 연출해 냈다는 점에 주목하자. 당연히 CG로 만들었을 거라 믿었던 장면에 상당부분 실제 세트와 장비가 동원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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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lingon Home World"은 클링온의 모행성 크로노스에 대한 영상이다. 스테이지에서 촬영된 이 장면에서 역시 수공작업이나 중공예작업이 주로 사용되었고, 조각가들이 세트의 벽을 직접 만들었으며 클링온 종족의 배우들은 약 4시간 반정도 분장시간을 감수하며 촬영에 임했다. 클링온의 언어 또한 그냥 발음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클링온어를 만든 마크 오크랜드를 비롯한 언어전문가들을 자문역으로 데려와 대사와 발음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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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스타트렉: 다크니스]는 다분히 추리극의 요소를 내포하는데, 누가 진짜 악당인가에 대한 의문으로 커크 선장이 혼란에 빠진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The Enemy of My Enemy" 에서는 본 작품에서 칸을 악당으로 설정한 이유, 그리고 그와 마커스 제독과의 관계에 있어 누가 진정한 악역인지에 대한 의견 등이 담겨 있다. 흥미롭게도 에이브람스 감독은 자신이 처음 생각했던 '칸'과 컴버배치가 많이 동떨어진 느낌이어서 문제가 많을 것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컴버배치는 이번 작품에서 악당을 맡을 것이라는 연락을 받고는 스크립트나 그 밖의 정보들에 대해 알려 달라고 했다는데 돌아온 대답은 모두 'No!'. 심지어 자신이 맡게 될 배역의 이름도 알려주지 않았다고 하니, 제작진이 얼마나 비밀유지에 많은 신경을 썼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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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p to Ship"은 U.S.S. 벤전스 호에 탑승을 시도하는 칸과 커크의 비행씬 촬영 장면에 대해 다룬다. 특히 두 사람이 착륙하는 벤전스 호의 격납고는 얼핏 봐서는 그린 스크린에서 촬영된 CG처럼 보이는데, 실제로는 엄청나게 큰 목조창고를 이용한 실제 세트로 조명효과를 이용해 우주선의 내부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실로 세트 디자인의 승리라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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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wl by the Bay"는 스펙터클한 비주얼이 압권인 벤전스 호 추락장면에 대한 메이킹 필름이다. 물론 CG도 동원되었지만 실제 촬영 규모에 있어서도 블록버스터급인데, 약 155명 엑스트라가 동원되었고 제작진 규모만 450명 정도가 참여한 대규모 촬영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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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기 감독인 J.J. 에이브람스는 자신이 트래키가 아니라고 밝힌 바 있다. 이 점은 영화가 개봉되기 전 많은 우려를 낳았지만 두 편의 영화가 공개된 지금, 결과적으로 볼 때 에이브람스야 말로 이 클래식한 시리즈의 부활에 최적의 선택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추진력을 잃어가던 [스타트렉]은 다시 살아났고, 이제 가장 기대되는 프렌차이즈 중 하나가 되었다.
화려한 특수효과의 향연, 매력적인 엔터프라이즈호 승무원들의 갈등과 화해, 우주공간에서 펼쳐지는 액션 등 풍부한 오락적 요소들에서 한발 더 나아가 현대 미국사회의 정서적 트라우마인 테러리즘과 911에 대한 은유에 이르기까지 [스타트렉: 다크니스]는 21세기형 엔터테인먼트의 결정체를 보여주는 듯 하다. 어쨌거나 이 작품에 대해 더 깊이 나아가든, 그렇지 않든 간에 [스타트렉: 다크니스]가 재미있는 작품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50여년을 이어온 [스타트렉]의 긴 항해는 앞으로도 계속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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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스타트렉 다크니스 - J.J. 에이브람스 감독, 조 샐다나 외 출연/파라마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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