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시픽 림]은 말 그대로 일본 서브컬쳐, 흔히 말하는 괴수물과 로봇물의 거대한 오마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은 이 부분이 오히려 대중적인 찬사를 받는데 장애가 될 정도인데, 이번 시간에는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노골적으로 감사를 표했던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계의 인물들과 그들의 대표작들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아마도 아래의 리스트를 보다보면 '아하'라고 맞장구를 칠 만한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아시다 토요오 - dedicatee |
2011년에 작고한 전 스튜디오라이브의 회장이자 뛰어난 애니메이션 캐릭터 디자이너인 아시다 토요오는 고전 아니메 마니아들에게 있어서는 [요술공주 밍키]로 잘 알려졌지만 오늘날 그를 기억하게 만든 불멸의 히트 작품이 있으니, 바로 [마동왕 그랑조트]다. 이 작품은 1990년대 SBS를 통해 [슈퍼 그랑죠]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는데, 후발주자인 SBS가 어린이 만화 프로그램 부분에서 기존 방송사들을 제압한 쾌거를 이룬 작품이기도 하다. 흔히 용자물로 불리는 [마동왕 그랑조트]는 그랑조트가 슈퍼 그랑조트로, 다시 하이퍼 그랑조트로 업그레이드되는 진화형 메커니즘을 가진 로봇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마동왕 그랑조트 ⓒ サンライズ・R
안노 히데아키 - very special thanks |
두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감독이자 최근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으로 또다시 마니아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장본인이다. 그가 만든 [에반게리온]의 세계관에서 로봇은 단지 기계적인 도구로서가 아니라 생체병기로 인식되며, 파일럿과의 상성이 매우 중요한 요소로 부각된다. 이번 [퍼시픽 림]을 통해 어딘지 모르게 [에반게리온]의 느낌을 받았다면 그것은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의도했던 바일 듯.
신세기 에반게리온 ⓒ GAINAX・カラー/Project Eva
혼다 이시로 - dedicatee |
이른바 일본 괴수물의 창시자이자, 슈트메이션 기법의 비약적 발전을 이루어낸 [고지라]의 감독. 심해에서 잠들고 있던 거대 괴수가 인간이 살고 있는 도심에 나타난다는 설정은 기존 헐리우드 크리처물인 [심해에서 온 괴물] 등에서도 볼 수 있지만 이와는 별개로 일본인들의 원폭 트라우마를 잘 표현했다는 점에서 평단과 관객들의 극찬을 받았다. 미국인들의 고지라에 대한 사랑도 유별난 편이라 1998년에는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에 의해 [고질라]로 리메이크되었다. [퍼시픽 림]에서 바다에서 출몰하는 괴수 카이주의 설정은 말할 것도 없이 [고지라]에 대한 오마주다.
고지라 ⓒ Toho
카와모리 쇼지 - special thanks |
[기동전사 건담]과 더불어 1980년대 리얼로봇 계열을 이끌었던 [초시공요새 마크로스]의 감독이자 메카닉 디자이너. 특히나 로봇 애니메이션 사상 가장 독창적인 기체 중 하나로 손꼽히는 발키리의 디자인은 그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의 디자인 감각은 발군이었다. 이와 더불어 [천공의 에스카플로네]나 [창성의 아쿠에리온] 같은 작품 속에서 나타난 그의 로봇 디자인은 여전히 훌륭하다.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 ビックウエスト
카타야마 카즈요시 - very special thanks |
[신세기 에반게리온] 이후 로봇물의 세계관이나 전투방식 및 메카닉 디자인이 복잡한 양상을 띄어가던 차에 카타야마 카즈요시는 [빅 오]라는 투박한 복고풍 로봇 애니메이션을 들고 나왔다. 다분히 미국적인 색체에 '힘의 세기'가 좌우하는 로봇들의 격전은 다분히 [철인 28호]나 [자이언트 로보]에서 느꼈던 클래식한 느낌을 전달했다. [퍼시픽 림]의 육탄전도 어딘가 [빅 오]의 그것을 연상시키지 않는가?
빅 오 ⓒ サンライズ
나가이 고 - special thanks |
모르는 분이 계실까? [마징가 제트]와 [그레이트 마징가], [그렌다이저] 그리고 [게타로보] 등 1970년대 슈퍼로봇 계열의 아버지다. 그가 정립한 로봇의 디자인과 여러 설정들은 한국의 [로보트 태권브이]를 비롯하여 수많은 후배로봇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퍼시픽 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건 앞선 작품들보단 비교적 마이너 작품에 가까운 [아이언 머슬]일 것이다. 과거 국내에도 [아이반호 2세]란 제목으로 소개된 이 작품은 거대 로봇들이 펼치는 격투기를 다룬 만화로, 로봇의 조종방식이 [퍼시픽 림]과 매우 유사한 모션 트레이스 방식이다.
토미노 요시유키 & 야타테 하지메 - very special thanks |
리얼로봇 시대를 연 창작집단 야타테 하지메와 그 선두에 섰던 토미노 요시유키는 [기동전사 건담]으로 로봇 애니메이션의 신세계를 열었다. 일종의 슈퍼히어로같은 기존의 로봇 이미지를 '모빌슈트'라는 개념으로 바꾸어 전쟁에서의 병기로 역할을 한정하고 로봇 자체보다는 전쟁이라는 배경 자체에 더 무게를 두었다. 또한 야타테 하지메는 [용자왕 가오가이거 파이널], [무한의 리바이어스], [전설의 용자 다간], [제가페인] 등 왕성한 로봇물을 창작하며 명성을 유지해 나갔다.
기동전사 건담 © SOTSU AGENCY, SUNRISE
테즈카 오사무 - special thanks |
일본에서는 '만화의 신'으로 불리며 후세대 애니메이터들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친 선구자. 일명 '리미티드 애니메이션'으로 불리는 프레임 단축 기법의 도입은 일본이 애니메이션의 왕국으로 거듭나는데 크게 일조했다. 그를 스타덤에 올린 [철완아톰]은 [철인28호]와 함께 1세대 로봇의 원형이 되었고,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캐릭터로서 널리 알려졌다.
철완아톰 ⓒ 手塚プロダクション/ラレコ・ネトアニ
요코야마 미츠테루 - special thanks |
테즈카 오사무, 이시노모리 쇼타로와 함께 일본 만화계의 트로이카를 이루었던 거장. 히어로물이나 로봇물에서 역사물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왕성한 작품활동을 보여 온 인물로 그가 그린 [철인 28호]는 '최초의 거대로봇'이란 역사적 평가와 더불어 후세대 로봇의 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또한 [바벨 2세]의 포세이돈이나 [자이언트 로보], [다이모스] 등 다른 거대로봇의 독툭하면서도 육중한 디자인은 세월이 흐른 지금 봐도 매우 훌륭하다.
철인28호 ⓒ 光プロダクション・エイケン
타카하시 료스케 - very special thanks |
[푸른 유성 SPT 레이즈나], [장갑기병 보톰즈]의 각본가 겸 감독. 특히나 [장갑기병 보톰즈]는 [기동전사 건담]으로 시작된 이른바 리얼로봇물의 최고봉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성인취향의 밀리터리 메카닉 스타일을 완성시켰다. 메카물로는 이례적으로 아이들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나 주력 로봇이 커스텀 타입이 아니라 양산형이라는 설정 등등 여러모로 파격적인 부면이 많다.
장갑기병 보톰즈 © SUNRISE
오오토모 카츠히로 - very special thanks |
사이버펑크 문화의 걸작반열에 오른 [아키라]와 [스팀보이]의 감독이다. 비록 대표작 [아키라]의 존재감이 너무나도 크지만 또하나 눈여겨 볼 작품은 [로봇 카니발]이다. 오오토모 카츠히로는 오프닝과 엔딩 정도에만 관여했으나 옴니버스식으로 엮인 이 작품은 로봇이라는 주제에 대해 다양한 시각의 실험정신으로 접근한 독특한 작품이다.
로봇 카니발 ⓒ A.P.P.P.
미즈시마 세이지 - very special thanks |
촬영과 연출을 거치며 감독으로 자리잡은 인물로 사람의 시선을 끄는 장면연출에 일가견이 있는 연출가다.[기동전사 건담 00], [지구방위기업 다이가드]의 연출을 맡았으며 대표작은 [강철의 연금술사] 구버전이 있다.
기동전사 건담 00 ⓒ 創通・サンライズ・毎日放送
야스히코 요시카즈 - very special thanks |
로봇 애니메이션의 역사의 산 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로 [콤바트라V], [용자 라이딘], [기동전사 건담]의 캐릭터 디자이너로 널리 알려졌으며 [비너스 전기], [아리온]의 각본과 감독을 맡기도 했다. 무엇보다 캐릭터 디자인부터 연출, 총제작, 원작까지 모든 열정을 쏟아부은 [거신 고그]는 애니메이션 제작공정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그의 재능을 보여준 대표작이다.
가신 고그 ⓒ SUNR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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