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트 태권브이] 시리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있다. 바로 깡통로보트 철이의 존재다. 손수 제작한 주전자 뚜껑을 뒤집어 쓴 채 가슴에는 고추가루를 분사하는 무기를 장착한 이 요상한 캐릭터는 김청기 감독이 어렸을적 부엌에서 깡통이나 난로 연통 등을 주워와 뚝딱거리다가 주전자 깡통을 한번 뒤집어써볼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그런 어릴적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 (주) 로보트태권브이. All rights reserved.
어찌보면 [마징가 제트]의 보스 보롯트처럼 엉성한 사이드킥 역할이지만 태권브이의 세계관에 있어서 이런저런 어른들의 사정으로 인해 상업적으로 퇴색된 태권브이와는 달리 깡통로보트만큼은 처음 그대로의 모습으로 아이들의 동심을 끝까지 배신하지 않는다. 이처럼 전통적인 슈퍼로봇물에 깡통로보트와 같은 명랑만화식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점은 제법 의미있는 시도이자 독창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안타깝게도 깡통로보트는 애니메이션 속에서 조연에 그쳤지만 적어도 코믹스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태권브이 만화가로 유명한 김형배 화백은 수많은 태권브이 시리즈를 그렸지만 그 중에서도 깡통로보트를 메인급 캐릭터로 등장시킨 이른바 스핀오프 형식의 작품을 총 4편이나 남겼다. [깡통로보트와 마루치 아라치], [로보트 태권브이와 깡통로보트], [천하무적 깡통로보트] 그리고 [깡통로보트 만세]다. 이들의 공통점은 깡통로보트가 태권브이와 대등하거나 혹은 더 큰 비중을 가지고 스토리를 이끌어 나간다는 점이다.
ⓒ (주) 로보트태권브이/ 김형배. All rights reserved.
특히 [깡통로보트 만세]에서는 태권브이가 거의 찬조출연 수준으로 등장한다. 카프박사의 형인 보나팔드 카파박사는 복수를 계획한다. 한국에 평화의 사절인 로봇 스마트를 보내 경계가 느슨해진 틈을 타 태권브이를 탈취하려는 것. 이에 빼앗긴 태권브이를 찾기 위해 카파박사의 비밀기지가 있는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향한다. 깡통의 활약으로 태권브이를 다시 찾은 훈은 카파박사의 비밀병기 코코3호와 최후의 대결을 펼친다.
흥미롭게도 [깡통로보트 만세]는 카프 박사의 형 카파박사를 등장시켜 [로보트 태권브이] 1편의 세계관을 그대로 계승한다. 또한 카파 박사의 복수극을 돕는 부하 짜코는 김형배 작가의 또다른 코믹스 [로보트 태권브이와 황금날개 123]에서 악당으로 나온 스펙터의 동생이다.
한편 본 작품에는 캐릭터의 표절문제 보다는 다른 부면에서의 표절이 등장하는데, 바로 이소룡의 유작 [사망유희]에서의 유명한 장면, 카림 압둘 자바와 대결하는 '어둠의 방' 대결씬이 그대로 패러디된다는 점이다. 프랑스 고유무술 사바트의 고수로 설정된 짜코와 태권도의 달인 훈의 대결에서 훈은 짜코의 발차기를 맞고 쓰러지는데 가슴팍에 시커먼 발자국이 남는 장면까지 [사망유희]와 완전히 동일하다.
악당의 비밀병기 코코3호의 디자인은 마치 황금날개 3호인 청동거인을 연상시키는데, 나름 우람하고 포스있는 외모와는 달리 태권브이와의 대결 자체는 무척 심심하게 끝나고 만다. 이는 아마도 [깡통로보트 만세]의 주인공이 어디까지나 깡통이라는 점 때문인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도 작품 전반에 걸쳐 스마트와 깡통로봇이 엮어가는 코믹한 에피소드가 주를 이루고 있다.
태권브이의 세계관과 메인 캐릭터를 바꿔서 스핀오프를 만들어낸 점은 꽤나 긍정적이지만 스토리 자체의 매력은 다소 떨어지는 것이 흠이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이러한 작품들을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이다.
P.S: 스마트 로봇의 영어 스펠링은 Smart가 아니라 Smat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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