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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도 여지없이 슈퍼히어로 열풍이 불어왔다. [아이언맨 3]로 선공을 날린 마블 코믹스에 이어 DC코믹스에서는 잭 스나이더 감독의 [맨 오브 스틸]로 반격에 나섰고, 이에 질세라 다시 [더 울버린], [토르 2: 다크월드]로 마블의 공세가 이어진다. 이렇듯 슈퍼히어로의 세계에서 DC와 마블의 엎치락 뒤치락하는 광경은 당분간 계속될 듯 하다.

슈퍼히어로 영화들이 트렌드가 되자 한국에서는 언제부터인가 자연스럽게 이들 히어로물의 원작이 되었던 그래픽노블이 속속 발간되기에 이르렀다. 그야말로 '홍수'라는 표현외엔 달리 할말이 없을 법한 일본 만화의 범람 외에 또 하나의 외산 만화들이 우리 만화계의 토향을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뭐 그간 너무 천편일률적인 일본 만화에 식상해 하는 독자들이라면 이러한 다변화가 반가운 것일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국에서 마블이나 DC코믹스의 주인공들을 접할 수 있었던 건 비단 최근의 일은 아니다. 언젠가 언급했듯이 이종진 작가의 [화성의 초인] 같은 한국판 슈퍼맨 만화를 비롯해 1956년에는 이종원 작가가 [조국의 삼남매]라는 반공만화를 발표했다. 황철, 용자, 용순 삼남매가 북한 괴뢰군을 상대로 종횡무진 활약하는 이 작품은 표지의 그림에서 볼 수 있던 DC코믹스의 배트맨이 당당히 등장하고 있다.

ⓒ 산해당. All rights reserved.

배트맨의 등장은 이뿐만이 아니다. 햇님문고에서 발간된 김민철 작가의 [잃어버린 전설과 검은박쥐] 역시 한국식 배트맨이 등장하는 또다른 짝퉁이다. 이 작품은 2000년대 미래의 세계를 배경으로 진보된 문명과 과학이 낳은 기계화 시대의 모순을 다루고 있는데 로봇이 등장하거나 무우제국의 유적지가 등장하는 등 SF 어드벤처의 장르적 특징을 가진 이색적인 작품이라 하겠다. 얼굴을 드러낸 배트맨의 모습을 보는 것도 나름 흥미롭다. 김민철 작가는 같은 햇님문고 레이블을 통해 [철인 24호]라는 작품도 발표했는데, 일본의 [에이트맨]을 표절한 이 작품 속에는 마블코믹스의 [아이언맨]까지 등장한다.

ⓒ 소학관. All rights reserved.

이러한 캐릭터 차용의 흔적은 계속되었다. 박동파의 [엑스 30000세] 시리즈는 백만년전 외계인들에게 끌려간 지구인의 30000번째 자손이 지구로 돌아와 악당 알파시와 대결을 펼치는 내용을 담은 작품으로 토르라는 마블 캐릭터를 들여와 박동파 작가의 그림체로 재해석한 [올마이티 토르]의 한국판 로컬라이징이다.

ⓒ 중앙일보사. All rights reserved.

마블의 간판 캐릭터 [스파이더맨]의 차용흔적도 여기저기서 발견되는데 이를테면 1977년 김복태 작가의 [개조인간과 거미마왕]이나 차성진의 [황금날개 대 왕거미]에서도 스파이더맨이 출연한다.

뭐 이렇듯 한국만화계에서 일본 캐릭터의 차용과 더불어 미국 슈퍼히어로가 대거 찬조출연했던 흑역사를 들추는 일은 이쯤에서 잠시 멈추도록 하자. 기회가 되면 얼마든지 꺼낼 수 있는 이야기가 한보따리다.

이제 잠시 미국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인기가두를 달리던 산업도 굴곡을 그리게 되는 법. 화려한 1960년대를 보냈던 미국 만화계는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기존 독자층이 성장함과 동시에 소년 만화의 구매력이 대폭적으로 감소되어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위기를 느낀 마블과 DC은 잠시 경쟁자 구도에서 협력자 관계로 이 난관을 이겨나가기로 했다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이 바로 1977년의 [슈퍼맨 대 스파이더맨]이라는 최초의 크로스오버였다.

ⓒ DC and Marvel Comics. All rights reserved.

이후 한차례의 [슈퍼맨 대 스파이더맨] 이슈가 더 출간된 이후  1981년 9월에 렌 웨인과 가르시아 로페즈는 [배트맨 대 인크레더블 헐크]이라는 세번째 크로스오버를 내놓는다. 이 작품 속의 메인 빌런은 배트맨의 숙적인 조커인데, 이번 작품에서 조커는 또다른 악당인 섀퍼와 손잡고 헐크와 배트맨의 연합전선에 맞선다.

ⓒ DC and Marvel Comics. All rights reserved.

마블이나 DC코믹스의 정식 작품들이 국내에 소개된것은 근래의 일이라 이 작품, 특히 마블과 DC의 크로스오버물인 이 작품을  접한다는 건 대단히 진귀한 경험일텐데, 놀랍게도 [배트맨 대 인크레더블 헐크]가 국내에 출간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한때 킹프로덕숀 코믹스라는 레이블로 발간된 1980년대 만화 중에서 [녹색의 거인]이 바로 그 작품이다. 킹프로덕숀은  1980년대 후반, 다이나믹 콩콩 코믹스, 현대코믹스와 더불어 제법 많은 시리즈를 출간한 동방서관의 코믹스 레이블인데, 상대적으로 네임밸류에서 떨어지는 작가군을 보유한데다 작품의 재미면에서도 앞선 두 출판사와 비교해 열세에 놓여 인지도면에서는 많이 밀리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고 [녹색의 거인]과 같은 무단 해적판만 출간한건 아니고, 나름 작가들의 창작물도 섞여있는데, 그 중에는 애니메이션 [우주소년 캐시]의 코믹스판과 같은 희귀본도 포함되어 있다. 이 킹 프로덕숀 코믹스와 관련해서는 나중에 다른 작품으로 다시 소개하도록 하겠다.

ⓒ 동방서관. All rights reserved.

성영식이라는 작가의 이름을 걸로 발간된 [녹색의 거인]은 오리지널 [배트맨 대 인크레더블 헐크]를 그대로 옮겨와 주인공의 이름만 살짝 바꾸어 놓았다. 가령 헐크는 하크로, 배트맨은 블랙맨으로 바꿨다 -_-;;

참고로 성영식 작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할말이 좀 있다. 그 중 하나만 말하자면 이 작가의 이름으로 과거 오똑이 문고의 골든북스 레이블로 [우주꼬마 빠삐]라는 아톰 아류작이 나온바 있는데 이 책은 일본 본토의 데즈카 오사무 박물관에 전시되어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고 있는 중이다. (뭐 현재까지 전시가 되어 있는지는 모르겠다)

ⓒ 소년소녀. All rights reserved.

[녹색의 거인]은 웨인 테크의 한 자회사에서 일하게 된 로버트 포오(브루스 배너) 박사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질병 치료의 목적으로 감마광선총 개발에 참여하게 된 그는 이 프로젝트의 성공으로 하크(헐크)로 변신하는 자신의 특이 질환도 치료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동방서관. All rights reserved.

그러던 어느날 웨인 테크를 기습한 조커 일당이 하크를 이용해 블랙맨(배트맨)을 공격하게 만든 뒤 이 틈을 타서 감마광선총을 들고 사라진다. 조커는 이 총을 이용해 타인의 꿈을 흡수해 이를 현실화 시키는 능력을 지닌 외계인 쉐이퍼(섀퍼)를 치료해주는 대신 그의 힘을 얻어 블랙맨을 몰락시킬 계획을 세운다.

ⓒ 동방서관. All rights reserved.

역시나 본 작품에서의 특이점은 배트맨과 헐크가 연합전선을 펼친다는 점일 것이다. 양대 코믹스의 간판 히어로를 한 작품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 외에 배트맨의 숙적 조커가 헐크와 맞붙는 설정 또한 흥미를 자아낸다. 만약 이 작품이 영화화 되었더라면 크리스천 베일과 에드워드 노튼 혹은 마크 러팔로가 공연이 성사되었을까?

어쨌거나 [녹색의 거인] 역시 미국의 슈퍼히어로를 몰래 들여오던 한국 만화계의 흑역사 중 일부이긴 한데, 캐릭터를 베껴서 나름의 창작을 펼친 개작을 출간했던 과거와는 달리 그냥 해적판 형식으로, 그것도 정식 레이블을 단 만화책으로 당당히 나왔다는 건 어딘지 좀 씁쓸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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