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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라는 사회에서의 노인문제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심각합니다. 한국은 이미 고령사회에 진입했는데 이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은 전무하다 시피하고 이 노인들의 복지를 짊어질 젊음이들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한게 사실이죠. 게다가 더 큰 문제는 노인들과 젊은 층의 이른바 ‘세대분쟁’의 조짐마저 보인다는 겁니다. 자녀가 부모를 부양하던 시대는 끝났고 이른 정년을 맞이한 대다수 노인들은 스스로가 자신을 돌보지 않으면 안될 시대가 왔습니다.

이런 위기감 때문일까요?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아무르]는 원래대로라면 전혀 주목받지 못했을 영화입니다. 하지만 작은 예술영화 상영관에서 제한 개봉을 한 [아무르]는 거의 한달이 다 되도록 관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도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이게 남의 일 같지 느껴지지 않을 겁니다. 분명 노인문제를 이렇게까지 냉정하게 되짚는 영화는 꽤 드물었으니까요.

영화의 주인공인 안느와 조르주는 아쉬울 것 없는 생활을 누리고 있는 중산층 노부부입니다. 자녀들은 독립해서 각자의 삶을 살고 있고 있으니 신경쓸 일도 없고, 둘이 클래식 공연을 함께 다니고 은퇴후의 삶을 여유롭게 즐기는 선진국의 흔한 중산층이라고도 볼 수 있겠죠.

그런데 비극은 어느날 갑자기 찾아옵니다. 안느가 뇌졸증에 걸려 반신불수가 된 것이지요. 졸지에 남편인 조르주는 아내의 병수발을 하게 되는데, 그게 녹록치가 않습니다. 조르주는 무척 헌신적으로 아내를 돌보지만 이는 자신에게 고통이요, 심지어 아름답지 못한 모습으로 남편에게 짐을 안겨주는 아내에게도 고통입니다. 그런 조르주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딸은 수시로 찾아와 이런 저런 잔소리를 해댑니다.

ⓒ Wega Film, Les Films du Losange, X-Filme Creative Pool. All rights reserved.

[아무르]는 평범한 일상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을 때론 섬뜩하면서도 가슴 저릴만큼 처절하게 묘사하는가 하면 표현 방식만큼은 무척이나 건조하게 이끌어 갑니다. 배경음악이 거의 사용되지 않았으며 관객을 위한 어떠한 심리적인 완충장치도 마련해놓고 있지 않지요. 마치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듯 영화는 조르주가 안느를 돌보는 일상을 담담하게 카메라에 담습니다.

특히 [아무르]가 인상적이었던건 고통받는 사람의 입장을 임의적으로 해석해서 공감하려들지 말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거였습니다. 일례로 간병인은 억지로 안느의 머리를 빗겨놓고선 거울을 들이대며 “이쁘죠? 이쁘죠?”를 연발하는데, 실상 안느의 표정은 일그러져 있고 눈은 거울을 외면합니다. 이를 지켜보던 조르주의 표정도 어둡기만 하지요. 결국 조르주는 간병인을 해고하는데, 그 간병인은 경력자인 자신이 왜 해고를 당하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조르주에게 독설과 저주를 내뱉고는 문을 박차고 나가죠.

또 하나는 딸이 불쑥불쑥 찾아와 엄마의 상태를 물어보고 이래도 되냐, 다른 방법이 없냐고 자꾸 징징대는 장면인데, 참다못한 조르주가 그러죠. “그럼 엄마를 요양원에 보낼까? 아님 네가 병수발을 하겠다는 거냐?” 라고요. 도움이 되지 못하는 제3자는 당사자들의 고통을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법입니다.

묵직하면서도 건조한 영화를 다 보고나니 뒤끝이 개운하지가 않습니다. 하긴 미카엘 하네케 감독이 그런 뒷맛 상큼한 영화를 만들어 줄 리가 없겠지요. 한국적인 사고방식이라면 신파조로 흘러갔을 법한 이야기가 이토록 사실주의적인 작품으로 만들어지다니... 언제나 그랬듯 하네케 감독의 작품은 지적인 탐구의 결정체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P.S

1. 장 루이 트렝티냥, 엠마누엘 리바, 두 노장배우의 연기투혼은 영화를 살리는 기폭제 역할을 합니다. 정말 멋진 배우들의 멋진 열연.

2. 몇 년 전 아버지의 수술 병석에서, 얼마전에는 아내의 출산 간호를 하며 느낀거지만 환자병문안 가겠다고 무작정 찾아오는거… 당사자 입장에서는 엄청 불편한 일이더군요. 물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는 호의 내지는 성의 표시겠지만서도. 이 역시 다른 사람의 처지를 임의적으로 해석하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3. 영화를 보고나니 피를 나눈 자식보다도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배우자가 훨씬 더 가까운 존재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되더군요.

4. 아시겠지만 영화의 배경은 프랑스입니다. 노인들의 경제력이나 복지 모든 면에서 선진국인 그들도 저럴진데, 그보다 훨씬 열악한 한국이라면, 생각만해도 몸서리처지는 현실.

5. 아무르 Amour는 ‘사랑’이라는 뜻이랍니다. 이 영화에 비추어 보자면 정말 안타까운 사랑이지요.

 

*  본 리뷰에 사용된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해당 저작권자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단, 본문의 내용은 작성자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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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붉은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처음에 감독과 제목을 보고 깔깔댔던 기억이 나네요.
    "세상에, 미카엘 하케네 신작 제목이 [아무르]래. 세상에서 가장 아무르랑 안 어울릴 감독이 ㅋㅋㅋ"
    근데 참... 정말... 과연 미카엘 하케네... 어쩜 이리 인정사정 없을까요...-_-;

    2013.01.23 09:23 신고
  2. 즈라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의 경험이 영화의 감흥을 더 크게 해준 모양이군요..

    2013.01.23 12:47 신고
    • 페니웨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DP에서 좀 시끄러운 모양이더군요. 아시겠지만 저도 DP의 필진이긴 하나 프차나 영게 등에는 거의 글을 남기지 않고 있습니다. DP가 괜찮은 사이트이고 사람들 대부분이 괜찮다는 건 인정합니다만 문득 문득 몸서러처지는 공격성에 놀랄때가 한두번이 아니라서요. 부디 털어버리시고 블로그에 안착하시길 바랍니다. 영화부문 부동의 1위 이시지 않습니까!

      2013.01.23 20:54 신고
    • 즈라더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잘못한 게 참 많다 보니 여러모로 문제가 되어 뒤늦게 되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이번 경우는 제가 좀 심하게 말한 게 사실인지라 뭐라 할 수도 없고, 그저 운영자님의 징계만 기다릴 따름이지요.

      다음 뷰 1위 자리는 페니웨이님께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제 허접한 글로는 이미 한계에 달했어요. 가끔 제가 쓴 글을 되돌아보면 참담한 기분이 들곤 합니다. 페니웨이님이 바쁘신 와중에 간간히 올리는 리뷰의 반만이라도 따라갔으면 좋겠습니다. 이건 빈말이나 립서비스가 아니라 진심입니다. ㅠㅠ

      2013.01.23 21:00 신고
    • 페니웨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무슨 말씀을! 글은 계속 꾸준히 쓸때 좋은 글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저처럼 띠엄띠엄 쓰면 감각을 잃어버려서... 점점 더 어려워져요. ㅜㅜ 여튼 다 털어버리시고 힘내시길!

      2013.01.23 21:20 신고
    • 즈라더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ㅠㅠ
      페니웨이님의 완벽한 컴백을 기다리겠습니다. +_+

      2013.01.23 21:28 신고
  3. 케르베로스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사자의 사정이나 감정 따위는 아랑곳 않고 내미는 겉껍질 차원의 선의나 위로가

    더 사정 없는 가시가 된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지요. 가끔 나오잖습니까?

    '날 그만 좀 내버려 둬!'

    이건 히스테리가 아니라 고통받은 당사자의 호소입디다.

    옆에서 그걸 다 알고 받아주는 건 자식도 아니고 부부이더군요. 제 아버님께서 암투병 막바지에

    아무런 말씀도 못 하시고 눈빛과 표정만으로 의사를 표현하실 때도 그걸 알아듣는 분은

    어머니 혼자시더군요. 어제인가 뉴스에도 나오던데, 고통받는 아내의 산소공급기 관을 잘라버리고

    안식에 들게 한 늙은 남편이 집행 유예로 풀려났다는 기사, 이 영화와 딱 맞는 거 아닐까요?

    사랑은 동정이 아니라 공감이고, 그래서 때로는 극단적인 선택마저도 이해하게 만들어 줍니다.

    이게 감독의 메시지가 아닐까 싶네요.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 많이 나네요.

    2013.01.23 17:17 신고
  4. 정체불명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난주 상영중인 영화관을 발견해서 어머니와 함께 감상했는데, 함께 관람하시는 관객분들이
    대부분 노년의 부부들이셨습니다. 영화의 충격이 머리를 계속 울리는데 주변에 관객들이 아무말없이,
    또는 눈물을 흘리면서 나가시는데 그 모습이 참...ㅠ.ㅠ

    2013.01.23 17:23 신고
  5. 그리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평생 시집살이하신 어머님이 10년넘게 할머니 병수발하신것이 그때는 잘몰랐는데 정말 대단하셨다는걸 새삼 느낍니다.
    이제 어머니가 그때의 할머니 나이에 가까와 지는 지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하네요.
    또한 언제가 저도 그 나이가 되겠지요.

    2013.01.24 10:58 신고
  6. 그린게이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랑의 정의 중 가장 마음에 와 닿는 표현이 바로 '사랑은 희생' 이었습니다 이기적이고 물질 만능에 찌들어 있는 이 각박한 세상 속에서 진정한 사랑을 찾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그리고 그 과정과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달아야만 하는데 말입니다 우리 모두 건강하게 사랑하는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는 사회가 되도록 노력해야 겠습니다 사랑의 정의를 되새길 수 있는 그런 영화 같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01.25 01:12 신고
    • 페니웨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IMF때 이혼률이 급증했다고 하죠. 이른바 경제난으로 인한 '가정의 해체'를 목격한 세대가 요즘의 30,40 세대입니다. 결혼 적령기에 이른 이들이 가족의 본 의미를 상실한채 배금주의에 매달리는걸 보면 이 나라도 얼마 못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2013.01.26 08:16 신고
  7. 문제없음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만에 들려봤습니다...
    저도 참 재미나게(?) 본 영화입니다...
    좋은글 잘 읽다 갑니다...^^

    2013.01.27 10:3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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