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ㅇ

아르고 - 긴장감 살아있는 실화 구출작전

페니웨이™ 2012. 11. 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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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까지 냉전이 한창이던 시기에는 구출작전을 다룬 영화들이 많았습니다. 우간다 엔테베 공항에서 벌어진 인질극을 다룬 영화 [엔테베 특공작전]이나 척 노리스, 리 마빈의 액션물 [델타포스]같은 헐리우드 영화들은 물론 한국에서도 6.25 당시 인천상륙작전에 앞서 특수임무를 띄고 수색에 나섰다가 포로가 된 미국들을 구출하는 [블루하트]라는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었죠.

모름지기 이러한 구출작전을 그린 영화들은 촌각을 다투는 시간제한 속에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인질을 구출하는 과정의 서스펜스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살리느냐가 성공의 관건이라 하겠습니다. 물론 실베스터 스텔론의 [람보 2]처럼 일당백의 무력에 초점을 맞춘 영화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요.

벤 애플렉이 감독과 주연을 맡은 [아르고]는 간만에 등장한 구출작전 영화로서 냉전시대의 클래식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작품입니다. 영화의 배경은 호메이니가 이란을 집권할 당시인 1970년대 말에 실제로 발생한 주 이란 미국대사관 인질사건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사실 이 사건은 지미 카터 대통령의 재선에 치명타를 줄 만큼 미국으로선 굴욕적인 사건이었는데, 적어도 외형적인 부분에 있어 대사관 인질을 구출하는 작전이 실패로 끝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르고]는 이 사건을 둘러싸고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또 하나의 구출작전에 초점을 맞춥니다. 대사관에 억류되었던 63명의 인질 외에 캐나다 대사관저로 빠져나갔던 6명의 탈출극이 그것이었죠. 당시 캐나다의 적극적인 협조와 외교적 역량이 빚어낸 성과로 비춰지긴 했으나 핵심은 미국 CIA에서 주도한 기밀작전이었고 그 작전명이 바로 ‘오퍼레이션 헐리우드’였다는게 이 영화의 주장입니다. 실제로 이 작전은 그동안 기밀로 분류되어 있다가 클린턴 정부때 해제되면서 세상에 공개되었다고 합니다.

ⓒ GK Films, Smoke House,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이게 영화의 소재로서 흥미로운 점은 이 작전이 바로 헐리우드의 힘을 빌린 CIA의 구출작전이었다는 겁니다. ‘아르고’라는 제목의 SF영화를 촬영차 이란을 방문, 피신중인 미 대사관 직원 6명을 영화스탭으로 가장해 이란을 탈출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실존인물인 분장사 존 챔버스와  영화제작자 레스터의 도움을 받아 주인공인 CIA요원 토니 맨데즈가 실행에 옮기는 이야기입니다.

영화 초반부의 다큐멘터리적인 구성은 사실적이고 흥미로우며, 중반부 작전 실행을 위해 헐리우드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는 다소 코믹하고, 중후반 이란에서 벌어지는 구출작전의 진행은 긴장감이 팽배한 가운데 서스펜스를 한없이 극대화시킵니다. 얼핏보면 진부한 영화처럼 보이지만 정통적인 구출작전 영화의 묘미를 훌륭히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놀랍습니다. 특히 이런 장르물에서는 보기 드물게 폭력이 극도로 배제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죠.

감독인 벤 애플렉은 [곤 베이비 곤], [타운]에 이어 이번에도 여전히 기대 이상의 연출감각을 선보이는데, 다소 시대에 뒤떨어진 소재였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미국과 중동의 불편한 기류와 오버랩하여 1970년대가 아닌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건처럼 현실감을 부여한건 아주 영리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죠.

살짝 영웅주의적인 결말로 흘러가려는 전개가 위태로워 보이긴 하지만 종합적으로 볼 때 [아르고]는 매우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21세기에 만들어진 냉전시대 탈출극의 진수를 보여주는 영화로서 드라마적인 완성도와 더불어 장르적인 재미에 있어서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벤 애플렉이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은 배우출신 감독으로서의 계보를 잇는 재목으로 기대를 가져볼만 합니다.

P.S:

1. 벤 애플렉은 70년대 영화의 리얼리티를 위해 디지털이 아닌 예전 아날로그 장비를 사용해 구식 촬영기법으로 영화를 찍었다더군요. 확실히 신경을 쓴 만큼 영화는 티가 나기 마련입니다.

2. 영화 속 ‘아르고’의 스크립트는 영화화 되지 않은 로저 젤라즈니의 각본 "Lord of Light"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젤라즈니는 1977년 잔 마이클 빈센트 주연의 영화 [지옥의 사막 Damnation Alley]의 원작소설을 쓴 사람이기도 하죠.

3.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를 봤을 때 처럼 옛날 냉전시대의 감수성을 되살리는 영화가 계속 나와주어 즐겁습니다. 역시 요즘 영화들보다는 이런 아날로그 정서가 저한테는 맞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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