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열전(古典列傳)

고전열전(古典列傳) : 콩쥐팥쥐 - 한국 최후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페니웨이™ 2012. 12. 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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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열전(古典列傳) No.26

 

 

 

 

 

한국의 ‘콩쥐팥쥐’ 설화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여러 지역에서 전승되어 온 설화로 지역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긴 합니다만 기본적인 줄거리는 비슷하지요. 이 ‘콩쥐팥쥐’ 설화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이 한가지 있습니다. 계모와 그 자녀로 인해 핍박받는 결혼적령기 여성의 수난과정과 신발 한짝으로 인해 이상적인 남성과 혼사가 맺어지는 내용이 바로 서양의 ‘신데렐라’ 스토리와 일치한다는 것이지요. 이 같은 스토리는 중국의 단성식이 엮은 이야기책 유양잡조(酉陽雜俎)에서도 발견되는데요, 아마도 과거에 이와 비슷한 모티브가 되었던 모종의 사건이 있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여하튼 ‘콩쥐팥쥐’ 이야기는 한국에서도 여러편이나 영화로 만들어졌었는데요 1958년 엄앵란이 출현한 윤춘봉 감독의 [콩쥐팥쥐]가 가장 먼저 제작되었고 1967년 문희, 윤소정, 도금봉 등 호화캐스팅을 자랑한 조긍하 감독의 [콩쥐팥쥐]가 다시 만들어지기도 했죠. 그리고 10년 뒤 또 한번 ‘콩쥐팥쥐’가 스크린에 등장하게 되는데 그 작품이 바로 강태웅 감독의 [콩쥐팥쥐]입니다.

ⓒ 대양영화사. All rights reserved.

이미 고전열전을 통해 소개한 [흥부와 놀부](리뷰 바로가기)의 강태웅 감독은 서울대법대를 다니다 과감히 일본으로 건너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라는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려 했지만 그의 바람과는 달리 정극영화인 1959년작 [백의천사와 꼽추]로 데뷔를 하게 됩니다. 여기서 주연과 감독을 겸하며 한국영화계에 출사표를 던졌던 그는 ‘인형극에 스톱모션을 도입해 비용과 시간을 증가시킬 필요성을 납득할 수 없다’는 업계의 무지함 덕분에 꽤 오랜 세월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지요. 그나마 그가 극영화로 데뷔할 수 있었던 건 한 비누회사의 CF를 스톱모션으로 제작한 실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 한국영상자료원/블루미디어. All rights reserved.

강 감독이 귀국한지 약 10년 뒤 신동헌 감독의 [홍길동]이 엄청난 흥행성공을 하자 그제서야 업계는 애니메이션 분야의 흥행성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때마침 강태웅 감독과 은영필름의 김동식 대표가 의기투합해 내놓은 작품이 바로 한국 최초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인 [흥부와 놀부]였지요. 그러나 [흥부와 놀부]가 예상외의 흥행부진을 겪은 탓에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또다시 강태웅 감독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제작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대만쪽과의 합작 제의도 있었으나 무산되고 국내 업계는 터무니없이 싼 제작비를 제시하며 제작을 의뢰하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렇게 또다시 10년의 공백끝에 인연을 맺게 된 인물이 유프로덕션의 유현목 감독이었습니다. 우연히 강태웅 감독의 이야기를 듣게 된 유현목 감독이 제작비와는 상관없이 지원해 줄 테니 작품을 하나 만들어보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하게 되었고 원하는 곳에 스튜디오를 차린 강 감독은 유현목 감독이 다른 제작자들과는 달리 촬영기간 내내 촬영장에 한번도 들르지 않을만큼 전혀 간섭이 없는 대인배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회고한 바 있습니다.

[콩쥐팥쥐]는 전작인 [흥부와 놀부]에 비해 적은 제작비와 짧은 기간으로 완성된 작품이었기에 스케일적인 부면서는 다소 축소된 면도 없지 않으나 완성도에 있어서도 [흥부와 놀부]에 결코 뒤쳐지지 않는 작품입니다. 착하디 착한 콩쥐가 어느날 아버지가 데려온 계모와 팥쥐에 의해 모진 시달림을 받게 되고 세가지 미션인 나무호미로 밭갈기, 밑빠진 독에 물붓기, 엄청난 양의 곡식빻기를 모두 통과하고 새 원님의 행차길을 구경하러 가는 길에 꽃신을 잃어버렸다가 결국 결혼에 골인하게 되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다루고 있지요.

ⓒ 유프로덕션. All rights reserved.

기본적인 줄거리는 ‘콩쥐팥쥐’ 원전에서 따왔지만 몇몇 설정에서 변화를 주었는데, 이를테면 원래는 죽은것으로 처리되어야 할 콩쥐의 부친이 살아 있다는 점, 콩쥐를 돕는 괴상한 도인이 등장한다는 점, 팥쥐모녀의 최후가 마치 공포영화를 연상시키듯 호러틱한 방식으로 연출되었다는 점 등에서 주목할만 합니다. 또한 마을 원님이 되어 귀환하는 김도령과 콩쥐의 로맨스적인 측면이 마치 ‘춘향전’을 연상시키는 부면도 있습니다.

ⓒ 유프로덕션. All rights reserved.

입과 눈모양을 바꾸는 등 표정 변화를 보여주는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상당히 놀랄만하며 유머러스하고 재치있는 연출방식에서도 눈여겨 볼만한 [콩쥐팥쥐]는 분명 시대를 앞서나간 작품임에 틀림없습니다만 안타깝게도 한국영화사의 흐름을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콩쥐팥쥐]와 더불어 1978년에는 [77단의 비밀]이나 [달려라 마징가 엑스] 등 다양한 장르의 애니메이션이 개봉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해 가장 큰 흥행성적을 거둔 건 김청기 감독의 반공애니메이션 [똘이장군]이었거든요. 시대는 결국 공산당을 물리치는 미성년 슈퍼히어로의 이야기에 더욱 열광했다는 뜻이지요.

ⓒ 서울동화. All rights reserved.

안타깝게도 강태웅 감독은 그 뛰어난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콩쥐팥쥐]를 끝으로 현업에서 은퇴, 대학강단에서 후학들을 양성하는 길을 걷게 됩니다. 동시에 한국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계보도 단절되게 되었지요. 강 감독은 한국의 아드만 스튜디오를 설립하기에 충분한 재목이었음에도 결국 외면당한 불운의 천재 중 하나가 된 셈이지요. 그나마 1997년 부천판타스틱영화제를 통해 다시금 강태웅 감독의 작품들이 조명받아 후세에 알려지게 된 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디 다음 세대에서는 이처럼 앞서가는 창작자가 묻혀버리는 불행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길 바랄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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