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네 번]은 상업영화 위주로 판이 짜여진 한국 극장가에서 정말 보기 드문 예술영화다. 사실 이 영화가 극장에 걸리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유명 배우가 나오길 하나, 감독이 낯익기라도 하나. 제목부터 독특한 [네 번]이 관객몰이를 목표로 개봉을 감행한 건 분명 아닐 터, 일단은 수입사의 과감한 개봉결정에 박수를 보낸다. 짝짝짝.
[네 번]은 말하자면 세미 다큐멘터리식 연출을 보여준다. 대사는 한마디도 없으며 하다못해 BGM도 없는 건조한 연출이 예술영화적인 느낌을 짙게 드리운다. 눈치빠른 관객은 알겠지만 ‘네 번’은 인간을 포함한 네 가지 사물의 순환과 일생을 암시하는 제목이다. 교회의 먼지가루가 자신의 기침에 특효약이 될거라 믿는 노인 목동, 처음 들판으로 나가 길을 잃는 염소새끼, 한 마을의 축제를 위해 잘려나간 거대한 전나무, 그리고 축제 후에는 숯장수에 의해 숯으로 거듭나는 전나무숯의 이야기다. (아 생각해보니 눈치랑은 상관없이 한글 자막으로 ‘늙은 목동, 아기 염소, 전나무와 숯’이라고 적혀 있었다. 참… 한국 관객들의 수준을 고려하는 과분한 친절이다)
대사가 없기 때문에 영상만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영화의 기법은 낯설고도 신기하다. 영화의 호흡은 대체로 긴 편인데, 러닝타임의 상당부분은 통제 불가능한 동물과 자연이 자리를 메운다. 영화의 배경인 이탈리아 산악지대의 작은 마을 ‘칼라브리아’에서 염소를 치며 외롭게 살아가는 병든 노인의 삶에서 뜨거운 열에 전소되어 숯으로 거듭나는 전나무의 이야기를 연결하는 내러티브의 흐름은 정형화된 기성영화와는 확연히 다르다.
분명 [네 번]은 재미로 한번쯤 볼만한 영화는 결코 아니다. 관객들이 쉽게 식별할만한 분명한 표현이나 은유를 의도적으로 넣은 흔적도 없으며 인위적인 감동을 유도하지도 않는다. 그저 맑고 투명한 상태의 물처럼 무엇인가 그 안에 물감을 타야만 제 색깔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영화랄까. 그리고 그 색깔은 다름아닌 관객 각자가 자신의 해석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미켈란젤로 프라마르티노 감독이 5년의 촬영끝에 –여느 영화들이 제작기간을 모두 합쳐 몇 년이라고 하는 것과 달리 실제 촬영만 5년이다- 완성해 낸 이 작품은 2010년 칸느영화제 비경쟁 부문인 감독 주간에 초청돼 유로파 시네마 레이블상을 받아 영화의 독특한 시선처리와 실험적 기법의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대중성에 다가서기엔 조금 애매한 면이 있지만 적어도 영화 속 주체가 바뀔때마다 호기심이 샘솟는다는 점에서는 지루하지 않은 예술영화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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