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에니메이션에 대해 흔히들 가지고 있는 편견 중의 하나는 TV애니메이션이 극장용에 비해 현저히 퀄러티가 떨어진다는 견해일 것이다. 물론 실제로도 그렇다. 많은 분량을 정해진 시간에 맞춰 빡빡한 제작비로 만드는 TV판은 오로지 관객수로 승부해야 하는 극장용에 비해 불리한 것이 사실이다. 이런 정해진 속설을 깬 문제작이 바로 [카우보이 비밥] 이다.
기획된 예산을 초과한 것은 물론이요 막강한 스텦진으로 시종일관 수려한 비주얼, 세련된 스토리, 게다가 칸노 요코의 멋진 음악까지 어우러진 이 작품은 SF적 요소를 베이스로 거기에 코믹,느와르,멜로,액션,컬트적인 요소까지 곁들여 도저히 TV판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정도의 대단한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필자도 아마 앞으로는 이 작품을 능가하는 TV판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비밥 이후 4년뒤.... 오시이 마모루의 극장판으로 잘 알려진 [공각기동대]의 TV판이 첫 선을 보였다.
오시이 마모루의 극장판 [공각기동대]는 당시로선 실사에 가까울 정도로 정교한 비주얼을 보여주며 디스토피아적 미래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메니아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물론 극장판의 인상이 너무 강렬해서인지 TV판에 대한 부담감도 있는것도 사실, 과연 극장판의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를 어떻게 승계할 것인지 기대반, 호기심반으로 첫화를 감상하기 시작했다.
새로 제작된 [공각기동대 SAC] 는 이를테면 극장판의 What if...버전이라 볼 수 있다. 즉, 주인공인 쿠사나기 모토코 소령이 인형사를 만나지 않았다면...으로 구성된 전혀 새로운 스토리의 시리즈물이다. 극장판이 쿠사나기 소령을 중심으로 극의 흐름을 이끌어 간 반면, TV판은 공안9과라는 일종의 팀플레이를 보여줌으로서 마치 외화 [CSI]나 [미션 임파서블] 같은 수사팀의 활약상을 담은 수사극의 성격을 띄고 있다
ⓒ Shirow Masamune-Production I.G /Kodansha All rights reserved.
첫화에서 보여주는 에피소드는 훨씬 예뻐진 소령과 그 외의 공안9과 요원들 -바토,토그사,아라마키,이시카와 등-의 반가운 모습을 보는데 여념이 없다. 첫화치고는 그다지 쇼킹한 무언가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단지 공안9과의 사건 해결을 보여주는 일련의 과정들을 워밍업 정도로 보여줄 뿐인데, 과연 이 시리즈가 성공적인 무엇인가를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우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는 각각의 독립된 에피소드들의 나열로 시리즈를 진행하고는 있지만 5화부터 등장한 '스마일맨'사건의 진상이야 말로 이 작품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 중요한 복선이며 주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21화부터 26화까지야 말로 [공각기동대 SAC]의 본 모습이라고 헤도 좋을만큼 감탄이 연발되는 진행을 보여준다.
앞에서 말한 비밥이 그러했듯 [공각기동대 SAC]에서도 비교적 다양한 장르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를테면, '1화-공안9과'의 경우 전형적인 수사극의 모습을 보여주는 반면, '10화-정글 크루즈'는 엽기적인 연쇄살인사건을 다루는 스릴러를, '12화-다치코마의 외출'은 소품에 가까우면서 잔잔한 스토리를 보이지만 후에 다치코마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복선을 담고 있는 스토리를 가지며, '18화-암살의 이중주'는 마치 [자칼의 음모] 같은 한편의 잘 만든 암살영화를 보는 듯 하다. 이렇게 독립된 각각의 에피소드는 얼핏보면 독자적인 내용이지만 모든 것이 한줄로 연결되는 미묘한 흐름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에 총 26화중 한편이라도 제외해서는 완성된 작품이 되지 않는다고 느낄 정도이다.
[공각기동대 SAC]가 보여주는 또다른 장점은 케릭터의 섬세한 묘사이다. 이것은 전작인 극장판에서 케릭터의 묘사가 소령에게 집중된 것과는 사뭇 대조를 이룬다고 볼 수 있는데, 특히 두드러지는 케릭터는 의외로 다치코마라는 사고(思考)형 전차다.애초에 이들은 공안9과 요원들의 안전과 방어, 전방공격,침투등을 목적으로 설계된 인공지능로봇인데 이들에게 당연히 인간과 같은 고스트는 존재할리 만무다. ⓒ Shirow Masamune-Production I.G /Kodansha
소령은 다치코마들의 이러한 자기발전이 병기로서는 부적격하다는 판단하에 공안9과에서 퇴출시켜 버리는데 필자는 이 다치코마란 독특한 케릭터때문에 두번이나 눈물을 글썽여야 했다. 한번은 이들이 퇴출되면서 바토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장면 - "우리들..아무래도 연구소행인가 봅니다..그럼..바이바이~" 하는 이별장면- 이다.
원래부터 밝고 긍정적인 사고를 소유한 이들이 자기들 나름대로 바토에게 느끼는 서운한 감정을 아이러니하게도 명랑하게 표현하는 이 장면은 씁쓸한 바토의 얼굴 표정만큼이나 보는이의 마음을 심란하게 한다.
그리고 두번째는 공안9과를 처치하려는 해군특수부대로 부터 바토를 구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다치코마의 독백장면이다.
"신이시여...우리는 어째서 무력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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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퇴출되어 무장해제 된 채 양로원에서 근무하던 바토의 전용 다치코마가 양로원의 노인으로부터 받은 유탄 하나만을 지니고 동료들과 바토를 구하는 장면에서 마지막 희망인 유탄이 불발하자 나오는 대사인데, 필자가 너무 감상적이어서 인지는 몰라도 켄신을 감싸고 죽는 토모에의 죽음만큼이나 가슴아프고 애절한 장면이었다. 특히나 사람이 아닌 로봇에게 이 정도의 감정을 불어넣어 전달한다는 것 자체가 [공각기동대 SAC]의 뛰어난 구성을 반증하는 한 부분인 것이다.
SAC의 의미 즉 Stand Alone Complex의 의미는 최종회의 끝에 가서야 밝혀진다. "오리지널의 부제가 오리지널같은 복제를 만들어 낸다..."
이 의미는 물론 이 작품을 끝까지 감상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므로 굳이 언급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필자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공각기동대 SAC]가 막연하게 극장판의 후광을 등에 업고 제작된 작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처음부터 치밀하게 계산된 복선과 암시, 마지막에 그 반전마저 느낄수 있을 정도로 잘 계획된 한편의 긴 극장판 에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뛰어난 작품, 그것이 [공각기동대 SAC]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카우보이 비밥] 이후 그것을 뛰어넘는 훌륭한 TV에니메이션을 접하리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분명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지금 이 시점에서라면 당연 [공각기동대 SAC]야 말로 최고의 TV 애니메이션이라고 불러도 좋다. 오히려 26화의 작품이 짧게 느껴질정도로 아쉬울 사람도 있겠지만 그러나 실망은 금물.. [공각기동대]의 두 번째 극장판인 [이노센스]와 TV판 2기의 방영이 완료되었다. TV판 2기는 오시이 마모루가 고문역할로 각본에 참여하여, 그만의 독특하고 철학적이면서도 더욱 난해하게 스토리를 전개하고 있어 지금 소개한 1기 TV판에 비해 다소 부담스러운 부면이 없지 않다.(이는 후에 2기 리뷰에서 다루도록 한다)
ⓒ Shirow Masamune/Kodansha Ltd./Bandai Visual.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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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부족한 감상기를 마친다. 도무지 본인의 말재주로는 표현 못할 그 무엇이 [공각기동대 SAC]에 들어있다는 것밖엔 전할 수가 없어서 심히 유감이지만 정말로 웬만한 극장판보다 월등한 작품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싶을 따름이다.
* [공각기동대 SAC]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Shirow Masamune-Production I.G /Kodansha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아울러 첨부된 스틸은 공개용으로 배포된 것을 사용하였음도 밝힙니다. 국내의 DVD판권은 현재 ⓒ 뉴타입 DVD 사업부 에 있습니다.
* 참고 스샷: [공각기동대(1995)](ⓒ Shirow Masauone/Kodansha Ltd./Bandai Visual. All rights reserved.), [이노센스](ⓒ Shirow Masamune-Production I.G /Kodansha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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