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소스 코드]에 대한 평가를 이렇게 내렸더군요. '올해의 [인셉션]'. 작년에 봤던 영화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었던 [인셉션]에 비견될 영화라니, 과연 어떤 작품인지 기대치가 마구 샘솟지 않습니까?
[소스 코드]의 감독은 던컨 존스입니다. 작년 [더 문]이라는 SF소품으로 꽤나 호의적인 평가를 얻었던 신예이지요. 거기에 최근 블록버스터에서 자잘한 드라마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소화해내며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제이크 질렌할이 주인공이니 외견상으로도 썩 나쁜 조합은 아닙니다.
영화는 한 남자가 기차에서 눈을 뜨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눈을 뜬 남자의 앞에 앉은 여자는 이런 저런 말을 거는데, 남자는 그녀를 전혀 기억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왜 여기 와 있는지, 뭘 하고 있는것인지 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남자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경악하게 되지요.
다분히 비현실적인 상황에서 얼떨떨한 가운데, 남자는 갑작스런 열차 폭발과 함께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어딘가의 공간에 갇혀 다시 눈을 뜨게 됩니다. 알고보니 지난 8분간의 상황은 이미 일어난 일로서 주인공은 8분전의 기차안으로 돌아가 기차를 폭발시킨 테러범을 잡아야 하는 임무를 띈 군인입니다. 이 임무를 완수할 때까지 남자는 계속해서 몇 번이고 8분전으로 돌아가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겁니다.
ⓒ Mark Gordon Company, The, Vendome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단순히 시놉시스를 놓고보면 [소스 코드]는 신선한 작품은 아닙니다. 과거로 돌아가 시간을 반복한다는 설정은 [사랑의 블랙홀]이나 [레트로액티브], [나비효과] 그리고 B급 영화 [12시 01분]까지 다양한 영화들에서 써먹은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반복성'이란 설정을 빼면 파이는 훨씬 넓어지지요. 심지어 제이크 질렌할이 출연했던 [페르시아의 왕자]도 말하자면 시간여행으로 사건을 바로잡는 내용 아니었습니까?
그렇지만 던컨 존스는 그렇게 간단한 아류작의 범주에 머무를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일단 기본적인 틀 자체는 SF적인 요소로 꾸미되, 그 내용을 채우는 건 나름 독창적이라는 얘기죠. 일단 [소스 코드]는 두가지 미스테리를 던져놓습니다. 하나는 열차 폭파범이 누구인가 하는 질문이며, 두 번째는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원리는 무엇인가 하는 점이지요.
사실 진짜 흥미로운 건 첫번째 보다 두 번째 미스테리에 있습니다. 누가 테러범이냐에 대한 대답은 영화의 중반 즈음에 자연스럽게 해소되지만 -사실 범인을 밝히는 것도 그리 어렵진 않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마치 양파껍질처럼 까면 새로운 의문이 발생하는 구조로 되어 있거든요. 공간적 배경이 다양하지 않은 탓에 영화는 사실상 밀폐 공간에서의 스릴러적인 특성을 더 많이 가지게 됩니다. 제한된 공간과 시간, 이 두 가지 제약 안에서 주인공은 실로 다양한 미스테리를 풀어나갑니다.
ⓒ Mark Gordon Company, The, Vendome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영화가 짧다보니 캐릭터 구축에 할애할 만한 시간이 조금 부족한데 그 부족한 부분을 제이크 질렌할이나 베라 파미가 같은 노련한 배우들이 잘 메우고 있습니다. 특히 베라 파미가는 극히 제한적인 움직임 속에서도 표정만으로 캐릭터를 살려내는 놀라움을 보여줍니다. 대기 만성형 배우란 이런 것일까요?
또 한가지 눈여겨 봐둘 점은 다분히 흥미위주의 이야기를 가진 작품임에도 휴머니즘을 강조한 드라마가 꽤 짙게 베어 있다는 겁니다. 이는 감독의 전작인 [더 문]의 연장선상으로 봐도 무방한데, 인간의 존재론적인 가치에 대한 성찰이나 남녀간의 사랑, 부자간의 갈등 같은 요소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생각보다 큽니다. 재미와 감동을 모두 보여주기란 쉽지 않은데, 던컨 존스는 데뷔작부터 범상치 않은 내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밀도가 높은 영화이니만큼 93분의 러닝타임이 지루할 시간은 없습니다. 다만 시각적 스펙터클을 기대한 관객이라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를 올해의 [인셉션]으로 이야기한다는 건 조금 무리가 있어 보이는군요. 아마도 던컨 존스의 강점은 이런 작은 스케일 가운데서도 뭔가 낭비없는 영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P.S:
1.아마 [소스 코드]에서 가장 논란이 될 부분은 엔딩을 앞둔 5분여의 시간일 겁니다. 제가 보기에도 이 부분은 차라리 여운을 남기고 처리했더라면 훨씬 좋은 평가를 받았을 것 같은데, 약간 욕심을 부렸달까... 오히려 관객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엔딩으로 마무리를 하더군요. 보다 많은 담론을 남길 수 있는 부분이긴 한데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2.번역은 홍주희입니다. 긴말은 않겠어요. 가뜩이나 설정이 복잡한 영화에 홍주희 번역이니 관객들의 추리력과 상상력은 날이 갈수록 일취월장하는 느낌입니다. 헐헐....
3.양자 물리학의 이론을 응용한 시간 여행물인 [광속인간 샘] (Quantum Leap)의 주인공 스콧 바쿨라가 주인공 콜터의 아버지 역으로 출연합니다. 물론 전화기 상의 목소리일 뿐이지만 말이에요. 이로서 같은 시간이 반복되는 [소스 코드]의 설정이 [광속인간 샘]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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