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페니웨이 (http://pennyway.net)
1982년 헐리우드 극장가에 SF영화를 들고 나온 제작자들은 울상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흥행의 귀재, 스티븐 스필버그가 내놓은 [E.T]의 전 세계적인 히트로 인해 그 밖의 작품들은 명함도 못내밀 상황을 맞이했던 것이다. 그 중에는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와 같은 날 개봉된 존 카펜터의 [괴물], 그리고 디즈니 최대의 야심작 [트론]이 포함되어 있었다. [블레이드 러너]나 [괴물]이 컬트 매니아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아 훗날 걸작으로 재평가받는 성과를 거둔 반면 [트론]에 대한 평가는 아직까지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지금도 의아한 점은 [트론]이 흥행에 대실패한 작품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당시 [트론]에 투입된 제작비는 1700만 달러. 그러나 북미 개봉수익은 총 3300만 달러로 -정확한 손익분기점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손해는 보지 않았던 영화인 셈이다. 왜 이토록 [트론]이 과도하게 저평가되고 있는 것인지 그 이유는 지금도 이해하기 힘든 부면이 있다.
ⓒ Walt Disney Pictures. All Right Reserved.
'최초로 CG가 사용된 영화'라는 수식어는 그나마 [트론]이 지닌 가장 긍정적인 평가다. 지금처럼 고성능 컴퓨터가 만능 해결사 노릇을 하던 시절이 아니라 고작해야 Apple II나 MSX가 고작이었던 당시의 상황을 감안하면 이는 대단히 획기적인 시도였다. 물론 화면상에 보여지는 휘황찬란한 화면과 CG틱한 특수효과는 수작업 애니메이션의 결과물이었지만 그럼에도 영화에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한다는 개념 자체는 훗날 영화계의 기술적 발전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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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고 있는 장면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월트 디즈니는 평생 동안 애니메이션에서 보다 많은 차원을 확보하려고 노력했습니다.....그런데 눈앞에서 바로 그런 장면이 시연되고 있었던 겁니다. '이거야말로 월트 디즈니가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바로 그것이다!'라고 생각했죠". CG애니메이션의 최강자 픽사 스튜디오의 핵심 멤버인 존 라세터는 [트론]을 보고 났을 때의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를 계기로 CG기술의 영화적 접근법을 파고들기 시작했고, 마침내 1995년에 개봉된 [토이 스토리]로 전세계를 경악시켰다.
그러나 진짜 주목해야 하는건 [트론]의 이러한 기술적인 부면이 아니다. 무엇보다 [트론]은 시대를 앞서나간, '미래지향적인' 컨셉을 지닌 영화였다. 생각해보라. 당시 개발된 OS는 MS-DOS 1.25로 일반인들은 DOS라는 용어조차 친숙하지 않았던, 아니 OS라는 개념도 몰랐던 시절이다. 그런 시기에 프로그램 보안코드를 의인화 한 사이버 스페이스에서의 모험극을 선보였다는 사실, 다시말해 OS를 기반으로한 가상세계와 현실을 대칭되는 개념으로 표현했다는 점은 대단히 진보적인 설정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트론]은 이처럼 매력적인 설정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적인 구성면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들다. 아마도 제작사 디즈니의 입장 때문이었겠지만 -실제로 영화의 패착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디즈니의 잦은 간섭이 거론되기도 한다- 스토리면에 있어서 지나치게 권선징악적이고, 전체적인 플롯이 너무 단순하다는 점은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트론]이 재평가받기에 어딘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주는 가장 큰 이유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오랜 세월 동안 가끔가다 '최초의 CG를 사용한 영화'를 묻는 퀴즈의 소재로 사용되었을 뿐 소수의 매니아를 제외하면 대중에게 잊혀진 신세가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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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트론]에 사용된 CG는 기껏해야 15분 정도다. 화려한 특수효과의 상당부분은 노가다의 결정체인 수작업 애니메이션으로 완성되었는데, 덕분에 하청을 맡은 모 회사의 애니메이터들은 엄청난 작업량에 시달려야했다.
영화적 생명력을 거의 상실한 [트론]이 수면위로 등장한건 2003년이었다. 트론의 실질적인 창시자이자 감독이었던 스티븐 리스버거가 참여한 비디오게임 '트론 2.0'이 발표되었던 것이다. 이 게임은 사실상 영화 [트론]의 정식 후속편과 같은 성격을 지닌 작품으로 [트론]의 시건으로부터 21년 뒤의 일을 다루고 있다. 컴퓨터 보안 프로그램 '트론'의 개발자인 앨런 (브루스 박스라이트너 분)의 아들 제트가 실종된 아버지를 구출하기 위해 가상세계로 들어가는 내용을 그린 이 작품은 20년의 세월이 흐른만큼 오늘날 디지털 세대에 보편화된 개념들이 새롭게 추가되어 더욱 복잡해진 세계관으로 확장되었다.
ⓒ Monolith ProductionsPublisher/ Buena Vista Interactive. All Right Reserved.
흥미로운 건 '트론 2.0'이 발표되면서 영화 [트론]의 속편 가능성도 함께 언급되었다는 점이다. [트론]의 특수효과를 담당했던 리처드 테일러는 '1편과 게임에서 선보인 혁신적인 시도들을 이미 구상하기 시작했다'며 속편 제작이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밝혔고, 제프 브리지스는 '속편 영화의 시나리오가 집필에 들어갔다던데, 거기서는 내가 [지옥의 묵시록]의 커츠 대령과 비슷한 이미지로 등장한다고 하더라'는 말로 [트론] 속편에 대한 참여의사를 표현하기에 이르렀다. 과거의 유물로 기억속에 사라졌던 [트론]은 그렇게 다시금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하려 하고 있었다.
[트론: 새로운 시작]은 무려 28년만의 속편이다. 사실 [트론: 새로운 시작]이 나오는 시대적 상황은 전편과 판이하게 달라졌다. 집집마다 최신형 데스크탑과 랩탑이 보급되어 있으며, 컴퓨터에 대한 일반인들의 지식수준은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다. 디지털 세대들에게 있어 컴퓨터는 현실에서 필수 불가결한 존재다. 이와 같은 시대적 변화에 발맞춰 영화계에서도 이미 [매트릭스]나 [13층] 등 사이버 스페이스를 다룬 영화들을 쏟아냈다. 처음 [트론]이 컴퓨터 속 가상세계를 소개했을 때 낯설어했던 설정들은 이미 구시대의 것이 되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트론: 새로운 시작]이 보여줄 수 있는 카드는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앞서 언급했듯이 [트론]은 최초의 영화속 CG구현이라는 기술적인 부면에서 의미가 깊지만 사이버 스페이스라는 가상세계의 공간적 배경을 본격적으로 활용한 스토리면에서도 선구안을 보여준 작품이다. 제작진이 속편을 만들면서 고민한 지점은 이 두가지 측면 중 어느 쪽에 더 무게를 싣고 속편으로서의 정통성을 계승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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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보면 [트론: 새로운 시작]의 스토리는 전편과 큰 차별성을 보이지 않는다. 사이버 스페이스로 들어간 주인공이 악당 프로그램을 제거한 뒤 현실로 돌아오는 전체적인 내러티브는 [트론] 및 '트론 2.0'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러한 이야기는 한편으로 시리즈의 특징을 반영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지만 현실세계와 가상세계의 해결과제가 서로 연결되어 복층 구조를 보여주었던 전편에 비해 [트론: 새로운 시작]은 이야기가 지나치게 간결해졌고, 전작에는 없던 가족영화의 패러다임이 가세해 영화가 한층 유치해진 감도 없지 않다.
결국 [트론: 새로운 시작]의 주 관람 포인트는 비주얼적인 요소라 할 수 있는데, 관객들은 28년간 비약적으로 발전해 온 CG기술력의 성과를 이 작품을 통해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트론] 시리즈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 버린 원반 디스크 대결장면이나 라이트 바이크 경주씬 등은 전편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해졌고 또 리얼하다. 물리적으로는 해결 불가능한 배우들의 노화된 얼굴을 CG로 복원시킨 디지털 포토리얼리스틱 기법을 통해 젊은 시절 제프 브리지스나 브루스 박스레이트너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건 -그 완성도야 어찌되었든- 아마도 [트론: 새로운 시작]에서의 가장 큰 업적이자 시도라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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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이 그러했듯 [트론: 새로운 시작]은 모두에게 만족스런 작품은 아니다. 플롯의 구조를 좀 더 강화하면서 전편과의 연결성에 보다 신경을 썼더라면 훨씬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지만, 영화가 남긴 미학적 예술성은 극찬받아 마땅하다. 그렇기에 [트론: 새로운 시작]의 블루레이는 소장가들에게 더욱 의미있는 작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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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론: 새로운 시작]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눈과 귀가 호강하는 영화'다. 특히나 이 작품의 비주얼은 감히 레퍼런스급이라 말할 수 있는데, 극장 상영시에도 일반상영관과 아이맥스에서의 체험지수가 현격한 차이를 보일 정도로 화면가득 담겨있는 정보량과 비주얼의 퀄리티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하겠다. 블루레이라는 매체의 등장은 바로 이런 작품을 위해 탄생한 것이 아니겠는가. 네온사인처럼 번쩍거리는 '그리드'의 풍광은 가히 압도적이라 할만큼 화려하며 빛과 어둠으로 대비되는 색조는 안정적이고 강렬한 느낌을 준다. 또한 본 블루레이는 러닝 타임 중 40분을 차지하고 있는 아이맥스 비율의 화면을 살려 2.35:1과 1.78:1의 화면 비율을 모두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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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이 영화에 대해 '화면으로 시작해 음악으로 끝난다'는 평을 읽은 적이 있는데, 확실히 다프트 펑크(DAFT PUNK)가 참여한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명불허전. DTS-HD 7.1 채널로 영화를 감상하며 지긋이 눈을 감고 있으면 음악 하나만으로도 작품이 완성될 수 있음을 체험할 수 있다. 또한 효과음도 매우 탁월한 편인데, [트론: 새로운 시작]의 저음은 유독 다른 작품에 비해 강화된 감이 있다. 레코그나이저의 등장씬에서 터질듯하게 울리는 우퍼의 감각을 느껴본건 근래들어 실로 오랜만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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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론: 새로운 시작] 블루레이에 포함된 부가영상은 총 40여분 정도. 28년만에 제작된 속편이니만큼 그간 쌓여있는 얘기들도 참 많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그런 방대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모두 담기지는 않은 것 같아 아쉽기는 하지만 영화의 궁금증을 풀어줄 핵심적인 내용들은 모두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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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NEXT DAY: FLYNN LIVES REVEALED
케빈 플린의 실종 후 엔컴사의 경영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단편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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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RST LOOK AT TRON: UPRISING, THE DISNEY XD ANIMATED SERIES
[트론]의 애니메이션판 [트론 업라이징]의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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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UNCHING THE LEGACY
[트론: 새로운 시작]의 메이킹 필름. 제작진의 코멘터리와 더불어 작품 전반의 제작과정과 배경에 대해 설명한다. 양자이동 등 과학적 이론을 토대로 영화의 여러 가지 설정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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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코믹콘에서 발표된 프레젠테이션 트레일러 영상도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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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SUALIZING TRON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비주얼에 대한 코멘터리 영상. 1편 제작당시 구현할 수 없었던 부분을 어떻게 오늘날의 기술로 시각화할 수 있는지에 대해 흥미로운 정보를 제공한다. 영화에서 특히 강조되는 빛에 대한 해설이 재미있는데, CG로 처리했을 거라 생각했던 슈트의 조명은 실제로 촘촘한 전기배선이 내부에 들어간 '실제 조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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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STALLING THE CAST
캐스팅 비하인드 스토리. 1편에서 주연을 맡았던 브루스 박스레이트너와 제프 브리지스는 한동안 얼굴을 보지 못하다가 어느날 저녁 식사를 함께 했는데, 서로 '트론스키', '플린스터'라고 불렀다는 일화에서 볼 수 있듯 브루스와 제프, 그리고 스티븐 리스버거가 28년만에 새로운 영화에서 재회한 것에 대한 감회를 엿볼 수 있다. 또한 주스 역의 마이클 쉰이 [트론]의 열렬한 팬이라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 11살 때 극장에서 [트론]을 보고 크게 감명받은 그에게 캐스팅 제의가 들어오자 겉으로는 고민하는 척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당장 시작하고 싶었다던 마이클의 고백에서 [트론]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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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SC ROARS
2010 코믹콘 영상. 감독인 조셉 코신스키가 7000여명의 참관객들에게 여러분이 지금 지르는 함성을 스카이워커 사운드의 전문가들이 녹음해 실제 [트론: 새로운 시작]에서 사용하도록 하겠다고 말한다. 이윽고 대형 스크린에는 어떤 구호를 외칠것인지에 대해 자막이 나가고 관객들은 이를 착실하게 따라한다. 영화 속 실감나는 관중의 함성은 이 당시 녹음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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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SIC VIDEO "DEREZZED" WRITTEN, PRODUCED AND PERFORMED BY DAFT PU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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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부트나 리메이크가 아닌 씨퀄을 선택한 디즈니의 선택은 꽤나 용기있는 결정으로 여겨진다.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도 남는 작품이지만 [트론: 새로운 시작]은 또다른 대작 트릴로지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면에서 어느 정도의 긍정적인 평가가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전작이 쌓아올린 토대 위에서 단지 기술적인 진화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21세기 첨단 시대의 상황에 걸맞는 나름대로의 세계관을 재창조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번 [트론: 새로운 시작]이 그 과도기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무리는 없어 보인다. 아직 3부작이 확정된 사항은 아니지만 [트론] 시리즈가 지닌 무한한 가능성, 그리고 다양한 담론들의 부차적인 재미 등을 고려할 때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를 다시한번 갖게 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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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트론 : 새로운 시작 - 조셉 코신스키 감독, 개럿 헤들런드 외 출연/월트디즈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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