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 히어로 영화의 또다른 작품인 [토르: 천둥의 신]의 원작은 국내의 일반 영화팬들은 물론 몇몇 이름이 알려진 전문 리뷰어 내지는 평론가들에게 조차 다소 생소할 겁니다. 마블 코믹스 뿐만이 아니라 DC 코믹스를 포함해 대다수 슈퍼히어로의 기원은 보통 사람 내지는 좀 멀리 나가봐야 외계인 정도입니다만 '토르'라는 친구는 좀 독특하죠. 명색이 '천둥의 신'이니까 말입니다.
토르에 대해 몇 가지만 언급하면, 우선 이 친구는 파워에 의존하는 캐릭터로서 주무기인 묠니르가 없으면 평범한 인간이 되어 버리는 약점이 있습니다. 신이지만 워낙 초인적인 녀석들이 득실대는 마블의 세계관에서 보면 오히려 존재감이 없어 보이는 캐릭터랄까요.
ⓒ Marvel Comics. All rights reserved.
북유럽 신화를 토대로 창조된 '마이티 토르'의 영화화는 이미 [아이언맨 2]의 쿠키씬을 통해 예고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우려를 표명했죠. [어벤저스]를 향한 포석이긴 하나, 적어도 어느 정도의 현실성을 기반으로 한 [아이언맨]이나 [인크레더블 헐크]와 신화 속 세계관의 조합이라는 과제는 누가봐도 실패할 확률이 높아 보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섣불리 판단하진 맙시다. 적어도 [토르]의 감독이 누구냐면 무려 '케네스 브래너'란 말입니다. 셰익스피어 희곡에 정통한 그가 이런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맡았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사건이에요. 게다가 이 영화에는 아카데미 주연작 수상자가 두 명이나 -안소니 홉킨스, 나탈리 포트만- 출연한다구요. 이쯤되면 이 작품이 그냥 [어벤저스]를 만들기 위해 대충 때려넣은 그런 영화라는 느낌은 들지 않을 겁니다.
실제로 [토르]는 신화와 현실 세계를 융화하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한 작품입니다. (일단 말이 되고 안되고는 접어 둡시다. 어차피 이런 슈퍼히어로물에서 [다크 나이트]같은 사실주의적인 작품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립니다 -_-) 영화는 초반부터 충분한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한 작업에 돌입합니다. 즉 인간계의 제인과 신계의 토르가 조우하는 장면을 배치한 후 토르의 관점으로 되돌아가 그가 성장한 배경과 아스가르드의 역사, 그리고 아버지 오딘의 노여움을 사 지구로 추방되기까지의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구성하고 있죠.
ⓒ Paramount Pictures, Marvel Entertainment, Marvel Studios. All rights reserved.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은 느낄 수 있습니다. 왜 이 작품에 케네스 브래너가 관심을 보였는가를 말이죠. [토르]는 왕정시대 궁궐안에서의 암투와 배신, 왕권찬탈과 같은 지극히 고전적인 테마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것은 [토르]가 기존 슈퍼히어로물과는 다른 분위기와 지향점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북유럽 신화와 현실 세계의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케네스 브래너 감독은 이를 SF 판타지적인 요소를 갖춘 셰익스피어 희곡처럼 해석해 놓았어요. 엉뚱하기는 하지만 희안하게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물론 [토르]에 드라마적인 약점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가장 큰 단점은 토르가 지상에 내려와 인간들의 세계에 동화되면서 겪는 내적 갈등의 요소가 전무하다시피 한 점이겠지요. 일단 주제 파악을 못하고 날뛰던 그가 한 풀 꺾이게 된 계기는 오로지 묠니르를 들 수 없다는 점에서 오는 좌절감과 자신의 과오로 아버지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자책감 때문인데, 이것만으로 제멋대로인 토르가 '돌아온 탕자'처럼 개과천선한다는 건 너무 비약이 심해 보이거든요. 도대체 왜 토르가 지구인들을 지키려고 자신의 목숨까지 거는지, 그 분명한 이유가 영화에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는 아직 슈퍼히어로라기 보단 여전히 천둥의 신일 뿐이죠.
ⓒ Paramount Pictures, Marvel Entertainment, Marvel Studios. All rights reserved.
또한 영화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디스트로이어와의 대결장면은 좀 시시한 편이에요. 갖은 고생끝에 힘을 되찾은 토르의 희열을 표현하려면 뭔가 강력한 한방이 나와줘야 한텐데, 그 한방이 너무 강력해서 그냥 한방에 가 버리니 말입니다. (썬더크랩 신공을 너무 일찍 써 버렸나. 쩝) 화려하고 치밀한 전반부만큼 후반부가 쫄깃하지 못한 편입니다.
배우들의 연기는 나쁘지 않습니다. 신인급인 크리스 헴스워스는 크리스토퍼 리브가 슈퍼맨을 위해 태어난 배우이듯 토르 역에 딱 맞는 외모와 마스크, 체격을 지녔습니다. 특히나 악당으로 돌아서는 토르의 배다른 동생 로키는 이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이면서 입체적인 캐릭터로서 브라더 콤플렉스를 지녔지만 이를 분노로 표출하기 보다는 오히려 더욱 아버지에게 인정받으려하는 굉장히 독특한 빌런으로 묘사되는데요. 톰 히들스톤은 이 역할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보여집니다. 다만 영화적 구성의 한계가 정해져 있는 탓인지, 그 매력적인 캐릭터를 충분히 밀어줄만큼의 각본이 아니었다는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정리하자면 [토르]는 원작을 알고, 또 슈퍼히어로물이라는 서브장르에 애착을 가진 관객이라면 무척 만족할 만한 영화라는 점입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제 입장에서 볼 땐 [인크레더블 헐크]보다 한 수 위이고, [아이언맨]과는 대등하거나 오히려 한 발 앞선 작품이라고도 보여집니다. 이로서 [어벤저스]에 대한 기대치가 더 커졌어요. 자... 이제 [캡틴 아메리카: 퍼스트 어벤저]는 어쩔건지 궁금하군요.
---스포일러 있습니다---
P.S:
1.사실 이런 작품을 볼때는 적어도 팬심이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고 봅니다. 그렇기에 중간에 호크아이(제레미 레너 분)가 등장하는 장면이나 브루스 배너의 이야기가 언급되는 사소한 부분들에서도 불끈불끈하는 재미를 느끼는 것이지요.
2.'토르'가 영화에 등장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에요. TV 시리즈 '두 얼굴의 사나이'가 종영된 이후 3편의 TV용 영화가 제작되었는데 그 첫 번째 작품인 1988년 작 [돌아온 헐크 The Incredible Hulk Returns]에서 에릭 앨런 크레이머가 토르로 등장했습니다만 영화 자체가 망작 수준이어서 역시나 신화적 요소를 현실과 결합시키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절실히 느꼈지요.
3.일본 배우 아사노 타다노부도 제법 비중있는 조연으로 등장합니다. 아마도 아시아권 시장을 염두에 둔 캐스팅이겠지요. (북유럽 신화에 동양인과 흑인이 등장한다는 건 어딘지 납득하기 힘든....) [리쎌 웨폰 3]의 열혈 여형사 르네 루소 누님은 이젠 많이 늙으셨더군요. ㅜㅜ
4.영화의 유머도 나쁘지 않습니다. 초반 지구로 추방된 토르가 제 정신 못차리고 '감히 내가 누구라고!' 드립을 치면서 헛짓거리하는 일련의 장면들은 실소가 터져 나오더군요. 정말 웃겼던건 디스트로이어를 본 쉴드 요원 중 한명이 '저거 스타크에서 만든 신제품임?'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5.마지막 쿠키씬을 보려면 오래 기다려야 할겁니다. 엔드 크래딧이 꽤 길거든요. 마지막 장면에서는 여지없이 쉴드의 수장인 닉 퓨리(사무엘 L. 잭슨 분)가 등장하는데, 아마도 [어벤저스]의 메인 스토리가 원작을 그대로 계승할 확률이 높을 것임을 암시합니다. 원작에서 '어벤저스'를 결성하게 된 계기는 토르에게 복수를 계획하는 로키의 계획 때문이었거든요. [어벤저스]에서는 코스믹 큐브를 이용한 로키와 여기에 대항하는 어벤저스의 활약을 다룰 것 같습니다. 이래서 이번 [토르]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것이겠죠.
6.3D요.. 절대 감상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영화를 제대로 망쳐놓는 지름길.
7.극장에서 이미도씨 이름을 보는건 굉장히 오랜만이에요. 헐헐..
8.어찌보면 가장 중요한 단락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토르]에서 아스가르드의 등장 인물들은 서로를 '신'으로 자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즉 다시 말해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면 토르나 로키나 이런 녀석들은 신이 아니라 일종의 '외계인'에 더 가깝다는 의미이죠. '바이킹이 만약 뛰어난 과학 기술을 가진 자들을 만난다면 신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느냐'이라는 극 중 대사처럼 토르 역시 지구인의 관점에서 볼때 신인거지, 실은 고도의 문명기술과 초인적 능력을 소유한 외계인으로 보는게 타당합니다. 그래서 [어벤저스]의 세계관은 납득 가능한 현실적인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고요.
* 본 리뷰에 사용된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해당 저작권자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단, 본문의 내용은 작성자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
'영화 > 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트루맛쇼 - 기성 언론들에 대한 조소의 카타르시스 (28) | 2011.08.15 |
---|---|
[블루레이] 투어리스트 - 감질나는 로맨틱 스릴러 (18) | 2011.05.16 |
[블루레이] 트론: 새로운 시작 - 미학적 예술성의 극치를 보여주다 (18) | 2011.04.21 |
토일렛 - 눈물나도록 포근하다 (10) | 2010.12.06 |
툼 레이더: 어센션 - 팬무비로 태어난 게임속 여전사 라라 크로프트 (12) | 2010.03.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