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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사와지리 에리카는 일본의 촉망받는 기대주였습니다. 저 역시도 [박치기]를 통해 내심 설레이는 기분으로 그녀의 단아한 모습을 감상했더랬지요. 그러나 여배우로서 이제 막 피어오르기 시작할 무렵에 그녀는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저지르고 맙니다. 일명 '사와지리 베쯔니'라 불리는 사건이었지요.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난 시점이 바로 [클로즈드 노트]의 무대인사 때였습니다. 사건의 본질이 어떠했든간에 [클로즈드 노트]는 사와지리 에리카의 은퇴작이 되고 맙니다. 그때로부터 6년이 흐른 지금, 또 한차례 구설에 올랐던 결혼서약서 같은 가쉽을 제외하면 그녀는 영화계에서 사실상 퇴출된 상태입니다.

어쨌건 문제의 중심에 있었던 [클로즈드 노트]는 5년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차례 관객에게 선을 보인 바 있습니다. 사실 영화의 개봉보다는 홍보차 내한을 앞두고 있던 사와지리 에리카가 돌연 계획을 취소하는 바람에 국내 찌라시 언론에게 좋은 먹잇감을 제공했던 기억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만 영화 자체는 이러한 시끄러운 논란과는 전혀 무관하게 잔잔하고 조용한 작품입니다.

감독인 유키사다 이사오는 [러브레터]와 [4월 이야기]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이와이 슌지 감독 밑에서 조감독을 거쳤던 인물입니다. 즉 연출 스타일과 선호 장르에 있어서 유사점을 발견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는 얘기죠. 실제로 [클로즈드 노트]는 앞서 언급한 두 작품의 계보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알바와 수업으로 점철된 여대생의 사랑이야기는 [4월 이야기]와 맞닿아있고, 여기에 액자식 구성으로 두 주인공의 이야기가 평행하게 진행되는 점은 [러브레터]와 닮아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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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kuhodo DY Media Partners/Toho Company. All rights reserved.


영화는 혼자 자취생활을 하게 된 여대생 카에(사와지리 에리카 분)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만년필 가게에서 일하는 그녀는 대학에서 만돌린을 배우며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있지요. 카에는 이사 간 집에서 한권의 일기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 일기를 읽으며 일기의 주인인 이부키(다케우치 유코 분)와 자신이 어딘가 닮았다고 느끼게 됩니다.

한편 카에가 일하는 가게에는 자주 찾아오는 두 남자 손님이 있는데, 한명은 그림을 그리는 삽화가 이시토비(이세야 유스케 분)이고, 또 한명은 영국으로 유학간 친구의 애인인 카시마입니다. 어느덧 카에는 이시토비에게 끌리게 되지만 돌연 카시마에게 고백을 받아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되죠.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마다 그녀는 이부키의 일기를 읽으며 용기를 냅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시토비에게 마음을 고백하기로 합니다.

시즈쿠이 슈스케 원작의 휴대폰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이 작품은 누가보더라도 이와이 슌지 스타일의 영화입니다. 감독 스스로도 “클래식한 느낌, 80년대 일본영화와 비슷한 느낌으로 하고 싶었다”고 말했듯이, 잔잔한 감동을 추구하는 구식 멜로에 약간의 신파가 섞인 작품이죠. 이 점은 이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일단 일본영화 특유의 서정성에 익숙하다면 [클로즈드 노트]는 기대만큼의 재미를 주는 영화일 겁니다. 스토리도 나쁘지 않고, 화면도 아름다우며 이야기도 선한 것들로 가득차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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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kuhodo DY Media Partners/Toho Company. All rights reserved.


반면 21세기를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에게 있어서 [러브레터]식 멜로코드를 또다시 접한다는 건 그리 반가운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시대는 변하고 있고, 젊은이들의 사랑방식도 바뀌어가고 있으니까요. 이를테면 '저로는 안되는 건가요?'식의 멘트는 요즘 사람들의 관점에서 볼 때 그리 공감이 가질 않습니다. 잔잔한 멜로물 치고 138분의 러닝타임은 너무 길다는 느낌도 듭니다.

두 이야기가 접점을 이루는 반전도 준비되어 있긴 하지만 딱히 예측 못할 정도의 강렬한 의외성을 띄진 않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마무리 되어야만 하는 필연적인 느낌이 들만큼 자연스러운 연결구조라 큰 기대를 갖지 않고 본다면 이야기를 짜맞추는 재미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다분히 삼각관계스런 설정이긴해도 국내 드라마처럼 막장스럽지 않다는 것도 장점이고요.

배우들의 연기 또한 좋습니다. 사와지리 에리카는 아마 그 사건만 없었다면 이런 청순가련 이미지로 몇 년은 더 해먹을 수 있었겠다 싶을만큼 참한 모습으로 나오고, 다케우치 유코 역시 특유의 시원시원한 미소도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이 두 여배우의 존재감은 [클로즈드 노트]의 큰 버팀목이기도 하지요.

영화의 배경은 벚꽃 휘날리는 봄날입니다. 온몸이 으스러질 정도로 추웠던 겨울을 보내고, 반가운 봄의 따스한 햇볕을 만끽하면서 극장 나들이를 하기에 좋은 영화라 생각되네요.


P.S:

1.[에반게리온: 파]를 보신 관객이라면 귀에 익숙한 노래 '翼をください(날개를 주세요)'가 아이들의 합창으로 나옵니다.

2.사실 사와지리 베쯔니 사건의 동영상을 보면 에리카가 무대인사 당일 뭔가 컨디션이 안좋거나 억지로 행사장에 불려나왔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연예인도 사람인데, 모든 일정이 다 맘에 들 순 없는 거겠죠. 그렇다면 그녀는 무대인사에 참석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에리카는 그 날의 기분을 여과없이 대중앞에 표현했을 따름이고, 평소에 그녀의 당돌함에 반감이 있던 언론에서는 그야말로 가루가 되도록 난도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음날 눈물의 사과 인터뷰를 하긴 했지만 이미 사태는 수습 불가. 어린 나이에 스타가 된 그녀로서는 성숙되지 못한 행동을 보여준 거고, 여기에 언론은 지나치다싶을 정도의 마녀사냥을 한 사건이라고 봅니다. 어찌되었건 사와지리 베쯔니, 아니 에리카의 상품성은 그대로 묻혀지기에 다소 아까운 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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