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리 데이즈]의 포스터를 보노라면 많은게 연상됩니다. 우선 총을 들고 폼잡고 있는 러셀 크로우의 모습에서 왠지 이 영화는 액션물 같다는 인상을 주고, [테이큰]의 리암 니슨의 이름이 떡 하니 러셀 크로우의 이름 옆에 써 있는 걸 보니 보통 액션물 보다 두 배는 더 강렬한 작품일 것 같고, '단 3일, 5가지 미션'이라는 홍보문구에서 3일 동안 밀도있게 벌어지는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되지요. 그런데...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 모든게 몽땅 낚시입니다. 이 영화는 액션물이 아닐 뿐더러, 리암 니슨은 5분도 채 등장하지 않으며, 3일이 아니라 총 3년의 시간에 걸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언젠가 다룬 [스카이 라인]처럼 이 영화도 포스터나 예고편으로 관객들을 펄떡 펄떡 낚는 그런 영화일까요? 영화 장르의 선택이 관람에 있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그럴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영화는 액션 스릴러도 아니며, 러셀 크로우와 리암 니슨의 멋지구리한 마초 플레이는 전혀 기대해선 안되는 작품이에요. 그러나 제 얘기를 끝까지 들어보세요. 그렇다고 해서 영화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뜻은 아니니까요.
우선 우리는 감독의 이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쓰리 데이즈]의 감독은 폴 해기스입니다. 다소 낯선 이름이라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만 불과 몇 년전 [크래쉬]라는 작품을 통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던 감독입니다. 애당초 액션물과 같은 오락영화에 적합한 감독은 아니라는 얘기죠. 바꿔말하자면 관객은 이 영화에서 드라마적인 부분에 더 큰 기대를 가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제 조금은 감이 잡히시나요? 조금 더 정보를 드리자면 [쓰리 데이즈]는 프레드 카바예 감독의 프랑스 영화 [애니씽 포 허 Anything for her]의 리메이크작입니다. 문제는 원작이 국내에 정식으로 소개된 바 없기 때문에 일반 관객들은 사실상 원작과의 비교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지만요.
ⓒ Fidélité Films, Wild Bunch, TF1 Films Production. All Right Reserved.
일단 영화로 들어가 보죠. [쓰리 데이즈]는 얼굴에 피를 묻힌채, 부상자를 싣고 급히 차를 모는 러셀 크로우의 모습을 비추며 시작됩니다. 도대체 뭔 일인지 감을 잡기도 전에 영화는 다시 3년전으로 돌아가 평범한 가정을 꾸미고 사는 존(러셀 크로우 분)과 라라(엘리자베스 뱅크스 분)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라라는 자신의 상관을 살해한 용의자로 체포되어 살인자로 몰립니다. 목격자와 상황증거, 그리고 심증과 물증이 모두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 이쯤되면 관객들은 이게 무슨 음모의 희생양이 된게 아닌가는 착각이 들만도 한데, 영화는 그렇게 뻔한 답을 내놓지 않아요.
남편인 존은 필사적으로 아내의 결백을 입증하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가 않습니다. 돈은 다 떨어져 가고, 재심은 기각되었고, 변호사인 친구마저도 그녀를 빼낼 방법이 없다고 단정할 정도니까요. 설상가상으로 절망에 빠진 아내는 감옥에서 자살을 기도하기까지 합니다. 이제 존은 아내를 감옥에서 빼내기 위한 방법이 탈옥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과거 여러차례 탈옥에 성공했던 한니발 스미스 대령, 아니 제다이 마스터 콰이곤, 아...아니, 데이먼(우주 최강의 리암 니슨 분)을 찾아가 조언을 구합니다. 이제 존은 라라를 위한 탈옥을 계획하는데, 그 와중에 이런 저런 일들이 벌어지게 되지요. 그러다가 또 하나의 사건이 터지고, 그게 영화의 첫부분과 이어지게 되는 거구요.
ⓒ Lionsgate, Fidélité Films, Hwy61. All Right Reserved.
[쓰리 데이즈]를 보노라면 드라마가 차지하는 부분이 기대 이상으로 많다는 걸 깨닫게 될 겁니다. 영화의 초반부터 중후반부까지는 대부분 절망에 빠진 남편 존과 아내 라라의 심리묘사가 주를 이루고 있어요. 어떤 면으로는 이러한 전개가 무척 지루하다고 느낄지도 모르는데 한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이 과정 전체가 후반부에 집중된 서스펜스의 설득력을 높히는데 큰 역할을 한다는 점이죠. 얼핏보면 [프리즌 브레이크]를 부부버전으로 각색한 것 같지만 사실 탈출의 기획단계가 그렇게까지 주도면밀하거나 치밀한 편은 아닙니다.
하지만 후반부의 서스펜스가 탁월한 이유는 그들이 처한 상황 자체가 매우 궁지에 몰려 있고, 그러한 상황을 관객들이 몰입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적, 정서적 이입을 위해 안배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또 한가지, 영화 자체가 뭐 그리 사실적인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소시민의 탈옥 준비과정을 다루는 면에 있어서는 제법 적절하게 아마추어적인 요소들을 섞어 놓아서 나름 납득할 만한 개연성을 부여한다는 점도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아무래도 '막시무스' 러셀 크로우가 주연인지라 탈옥 그까이꺼 그냥 뚝딱 해치워 버리는 걸로 묘사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안하셔도 됩니다. (그래도 나름 또 화끈하게 액션을 보여주긴 합니다만)
ⓒ Lionsgate, Fidélité Films, Hwy61. All Right Reserved.
결과적으로 [쓰리 데이즈]는 마지막 30분을 보기 위해 차분히 기다릴 줄 아는 관객이라면 굉장히 만족스러워 할 만한 영화입니다. 사실 이런 탈옥영화에서 성공여부가 판가름나는건 관객들로 하여금 '제발 저들이 잡히지 않았으면' 하는 공감대를 어디까지 이끌어낼 수 있을것인가에 달려있다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 영화는 꽤나 관객들의 애간장을 태울만큼 옥죄는 힘이 느껴집니다. 이런 기분은 [피스메이커]의 후반부 추격씬 이후로 간만에 느껴보는 스릴이랄까요.
영화가 한 20분정도만 짧았더라면 정말 군더더기없이 깔끔한 작품이 되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도 남습니다만 2010년 후반부를 장식할 만한 스릴러로는 전혀 손색이 없는 작품입니다.
P.S:
1.오랜만에 다니엘 스턴이나 브라이언 데니히 같은 올드 배우를 보니 반갑더군요.
2.승리의 아이폰. 이젠 아이폰 없으면 탈옥도 못하겠네. (가만, 아이폰=탈옥 응?)
3.유투브가 사람 다 망친다.
4.원작의 여주인공을 맡은 다이앤 크루거가 오리지널 그대로 출연했더라면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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