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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수수께끼 - 추리는 탐정만의 특권이 아니다

페니웨이™ 2010. 10. 27.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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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수수께끼 - 6점
파블로 데 산티스 지음, 조일아 옮김/대교출판



요즘 시대에 탐정이 등장하는 추리소설을 접하기란 쉽지 않다. 시대가 변한만큼 추리문학의 성향도 바뀌었다. 작년 한해 유난히 한국을 휩쓸었던 일본의 추리문학만 보더라도 탐정이란 직업군이 등장하는 소설은 별로 없다. 대부분은 스릴러물의 형태를 띄거나 형사가 주인공이다. 소재는 더욱 자극적이고, 해법도 다양해졌지만 예전만큼 낭만적이지는 않다.

그런 의미에서 [파리의 수수께끼]는 클래식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추리소설이다. 작품의 배경은 1889년,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이 만국 박람회를 앞두고 막 완공된 시점이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사립탐정의 존재는 일선의 경찰보다도 더 신임을 받고 있다. 명실공히 탐정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정통 추리극인 셈이다. 출판사에서는 '추리소설의 모든 공식을 깬 새로운 탐정소설'이라는 슬로건 하에 탐정이 죽고, 화자가 사건을 풀어나간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마케팅적인 측면에서의 과장법이고, 엄밀히 말하자면 미스테리 본연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작품은 아니다.

구두수선공의 아들인 살바트리오는 국제적인 명탐정 크라이그의 견습생으로 들어간다. 언젠가는 탐정의 조수가 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수업을 쌓아온 그는 어느날 동료의 실종과 관련된 크라이그 최후의 사건에서 믿지 못할 사실을 직면하게 된다. 이 사건 직후 크라이그는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열리는 12인의 탐정 모임에 자신을 대신해서 살바트리오를 보낸다. 이곳에서 살바트리오는 세계 전역에서 찾아온 전설적인 탐정들과 그들의 아들리레테를 만나게 되지만 아르자키와 프랑스 제일의 명탐정 자리를 다투던 다르봉이 살해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다. 이제 자국을 대표해 조사에 착수한 아르자키는 살바트리오를 자신의 아들리레테로 임명해 사건해결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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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작가 파블로 데 산티스는 [파리의 수수께끼]에서 탐정을 보좌하는 조수(여기서는 '아들라레테'라는 새로운 용어를 창안했다)의 역할을 키워 소설 속의 주인공이자 화자로 삼았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같은 소설 속의 독창적인 세계관을 구성하기 위해 약 1/3 정도의 분량을 할애한다는 점인데, 이 때문에 독자는 본격적인 사건과 큰 연관성이 없어보이는 도입부에서 지루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인 살바트리오가 수련생에서 조수로, 그리고 급기야는 탐정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서술한 본 작품은 헐리우드 영화의 '비긴즈' 시리즈 혹은 성장극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사실상 이 작품이 탐정소설의 공식에서 다소 벗어났다고 느껴지는 대목은 희생자 중 한사람이 탐정이라거나, 탐정의 조수가 주인공이어서가 아니라 살인사건의 비중 자체가 전체적으로 볼때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플롯의 전개는 중반 이후부터 발생되는 3건의 사건을 중심으로 이루어지지만 실제 소설의 대부분은 12탐정으로 불리는 각 탐정들의 경쟁심리와 갈등 그리고 이들의 선문답스런 대화에 치중하고 있다.

뭔가 복잡한 트릭이나 절묘한 추리 따윈 등장하지 않는다. 굳이 말하자면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는 시점에서야 추리물다운 면모를 드러내지만 그 절정의 순간마저도 범인의 정체와 범행동기가 소설의 드라마적 요소와 오버랩되면서 반전의 쾌감보다는 씁쓸한 비극을 보는 느낌이 더 강하게 와닿는다. 물론 작가는 작품 전반에 걸쳐 사건의 해법을 위한 복선을 치밀하게 깔아놓았으며 그 단서들을 활용하는 방법(심지어 주인공이 구두수선공의 아들이라는 점은 사건해결의 결정타다)도 제법 능수능란하다. 19세기 말엽의 파리를 재구성한 디테일한 구성은 2007년 플라네타 아르헨티나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깊은 내공을 실감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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