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관한 잡담

건담의 아버지,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을 만나다 (PiFan2010 참관기)

페니웨이™ 2010. 7. 19.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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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6일, 2010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PiFan)가 화려한 개막을 알렸습니다. 작년에 Press 자격으로 초청받아 참석했던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군요. 올해는 Press ID 없이 일반 관람객으로 참관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포스팅에서도 알려드렸듯 이번 PiFan의 최대 관심사는 '건담 회고전'과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의 초청이었습니다. 저는 이미 [역습의 샤아]를 예매해 놨는데, 토미노 감독과의 GV가 포함된 [Z 건담] 극장판 상영은 심야에 진행되는 관계로 관람을 포기했더랬죠. 그런데 GV가 영화 종료후가 아닌 영화 시작 전에 진행되는 것이고, 그 전에 특별 싸인회가 열린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놓칠리가 없는 페니웨이™죠. 당당히 싸인회 참석 티켓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싸인회가 열리는 7월 17일. 출근을 하고 보니 비가 생각보다 많이 내리더군요. 오후 4시 반 경, 지인의 차를 타고 서울을 출발했으나 비는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욱 퍼붓기 시작하더니만 교통 체증까지 더해져 마음을 초조하게 만들었습니다. 지하철로 갈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지만 결국 2시간 반 정도가 걸린 7시가 되어서야 한국만화진흥원 건물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만화진흥원을 먼저 들른 이유는 이 곳에서 '우주세기 건담전'이 열리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8시까지만 진행되는 전시회이고, 싸인회는 그보다 늦은 9시 반이었기 때문에 이곳을 먼저 들러야만 했지요. 로비에 들어서니 거대한 건담 대형 포스터가 눈에 확 들어옵니다.


우주세기 건담전은 이번 PiFan 상영작으로 뽑힌 작품들을 섹션별로 나누어 그곳에 건담관련 건프라들을 전시해 놓은 행사였습니다. 생각보다는 그 규모가 크지 않아 다소 실망스럽더군요. 오전에는 토미노 감독이 이곳을 직접 방문하셨다는데 속으로 어떻게 생각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전시장 옆에는 프라모델 체험투어석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일반인들이 제작한 건프라들입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기념사진을 찍었죠.


같이 온 지인은 2시간 넘게 차를 몰고 왔는데 상대적으로 초라한(?) 우주세기 건담전에 실망한 눈치였습니다. 일단 늦은 저녁인지라 저녁식사를 같이하고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저는 토미노 감독의 싸인회가 열리는 부천시청으로 향했죠. 가는 와중에서도 비바람이 몰아쳐서 우산살이 부러지고, 비에 쫄딱 맞은 꼴아 물에빠진 마우스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정말 날씨만큼은 이 날 최악이었습니다.

부천시청 로비입니다. 이곳에서는 원래 장르북 페어가 열리고 있었는데, 제가 좀 늦게 도착해서 이미 철수를 한 상태더군요. 이런 특별한 행사에는 시간을 조금 더 연장해도 좋으련만....


로비의 한 켠에서는 싸인회 참석권을 받기 위해 찾아온 팬들이 줄을 길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PiFan 운영위원들의 미숙함이 다시한번 드러나더군요. 원래 공지된 바에 의하면 토미노 감독 싸인회의 자격은 저녁 8시 반부터 '추첨'을 통해 이뤄지도록 되어있었습니다. 제가 도착할 당시 줄을 선 인원들은 대략 어림잡아 50~60명 정도 되어 보였는데, 이 중에서 45명을 뽑아 표를 나눠줘야하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운영측에서 갑자기 참석권을 '선착순'으로 배부하겠다고 선언한 겁니다. 미리 와서 줄을 서있던 사람들에겐 호재였지만 경쟁률이 그리 높지 않은 상황에서 아깝게 추첨의 기회를 놓친 사람들에겐 황당한 일이었겠죠.


다행스럽게도 이렇다 할 항의사태는 없었습니다만, 아무튼 이렇게 갑작스레 공지를 번복하는 일은 이번 PiFan의 문제점을 다시 한번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저야 뭐 티켓을 확보한 상태에서 도착했던 터라 강건너 불구경 하듯 쳐다보고 있었지만 만약 제가 당사자였다면 크게 한바탕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저는 아주 간단하게 표를 수령했습니다. 음훼훼...


표를 받고 나니 시간이 50분 정도 남더군요. 마침 이웃 블로거이신 천용희님이 문자로 자신도 PiFan에 참석하러 와 있다시기에 이따가 만나기로 하고, 저는 잠시 바깥으로 나왔습니다. 이유가 궁금하시죠?

사실 지난 잡담글에서도 적었듯이 그 전날 어디에다가 싸인을 받을지 아주 고민을 많이 했었거든요. 사실 농담삼아 [혹성로보트 썬더A]나 [에반게리온]을 토미노 옹에게 들이밀어 볼까라고 말은 했지만 진심으로 싸인을 받으려고 생각했던건 바로 이놈이었습니다. 정말이에요. ㅡㅡ;;


그런데 막상 생각을 해보니 토미노 옹의 성격을 고려해 보건데 도저히 이걸 내밀 용기가 안 생기더군요. '이거슨 3배 빠른 건담인가!!!'하고 웃으며 흔쾌히 싸인을 해주실지, 아님 '이건 도대체 어느나라의 괴작이냐!!'며 버럭 화를 내실지... 적어도 용자 소리 한번 듣자고 모험을 하기엔 이제 나이가... (작품이 궁금하신 분은 나중에 괴작열전 코너에서 보세요) 그렇다고 하루 아침에 없던 건담 DVD가 생기는것도 아니라 정말 사방팔방으로 수소문을 하고 있었는데 전날 저녁, 정말 기적처럼 [기동전사 건담 F-91] 북미판 DVD를 입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왠지 '스페어'라는게 있잖습니까. 게다가 [건담 F-91]보다는 [역습의 샤아]라는 작품에 싸인을 받고 싶은 미련이 남아서 잠깐 짬을 내어 근처 서점에 들러 이번에 AK 커뮤니케이션스에서 출간된 '역습의 샤아: 벨토치카 칠드런' 소설판을 구매하고자 비바람을 맞으며 부천시청 근처를 배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길눈이 어두운 건지 뭔 동네에 서점하나 눈에 띄질 않더군요. 결국 소설을 구매하는데 실패. 다시 부천시청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마침 천용희님도 시청에 와 계셔서 오랜만에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다가오자 줄이 길게 늘어섰는데, 다들 어떻게 입수했는지 각종 DVD와 심지어 레어급 아이템인 '역습의 샤아' 녹음 대본집을 들고 온 분도 계시더군요. (토미노 감독 본인도 이 대본집을 보고 이게 어떻게 한국에 있냐며 놀라워 하셨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들은 모두 DVD Prime의 회원분들. 역시 무서운 콜렉터들입니다. (그러는 저도  DVD Prime 회원) ㅡㅡ;;

ⓒ 데코스케 by DVD Prime.


싸인회는 시청 안에 있는 아트센터 내부에서 초청자들만을 상대로 진행되었습니다. 건담 매니아들에게 있어서 전설적인 인물인 토미노 감독과 한 방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심장이 터질것만 같더군요. 과격한 발언을 일삼는 괴짜 노인일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팬들을 대하는 매너에 있어서 너무나도 훌륭한 분이셨습니다. 꽤 늦은 시간이고 50명분의 싸인을 반복해야하는 지루하고 힘든 작업이었음에도 전혀 지친 기색이 없으셨지요.


협찬사인 AK 커뮤니케이션스에서는 싸인받을 물건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자사에서 출간된 책을 한부씩 무료 증정해 주었습니다. 결국 아까 비바람을 맞으며 야밤을 배회한 저는 뻘짓을 했다는 얘기죠. 네.... 게다가 토미노 감독님의 노고를 생각해 싸인은 한 사람당 한 물건에만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 저것 많이 준비한 분들도 가져온 물건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했죠. 저는 준비한 [건담 F-91] DVD에 싸인받기 위해 표지를 빼내서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제 차례가 왔습니다. 토미노 감독님 앞에서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라고 말을 한 뒤 'ここに, サインおねがいします。(여기에 싸인 부탁드립니다)'라고 공손히 일본어로 말을 했지요. 아주 친절하게 미소로 화답하시며 '하이~'하며 정성껏 싸인을 하시는 토미노 옹. '왜 ZZ 건담 극장판은 안만들어 주시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 따위거 만들소냐!' 라며 멱살이라도 잡힐까봐 겁이 났습니다. ㅡㅡ;; 다음은 싸인을 다소곳이 기다리는 제 사진입니다. 토미노 옹의 포스가 느껴지시나요?


근데 돌발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감독님이 싸인을 마치시고 저에게 악수를 청하셨는데, 제가 너무 얼어 있었나봐요. 순간 손을 뺐습니다. ㅡㅡ;; 이 무슨... 갑자기 이런 상황이 연상되더군요.


1초정도 당황한듯한 감독님과 그보다 더 당황한 저와의 어색함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감독님이 계속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하시는 바람에 무사히 악수를 마치고 행사장을 나올 수 있었습니다. 아마 토미노 옹의 손길을 뿌리친건 제가 처음일 듯. 헐...


이렇게 평생 잊을 수 없는 토미노 감독과의 싸인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려니 굉장히 허전하더군요. 현장예매라도 끊어서 GV에 참석할까 싶었지만 12시가 넘어서까지 그곳에서 버티기가 너무 힘들어서 말이죠. 아무리 심야토크라는 이벤트도 좋지만 적어도 이정도의 빅 이벤트라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저녁시간대로 잡았어야 하는게 아닐런지요. 하여간 아쉽습니다. 아, 참고로 이날 토미노 감독은 우중에서도 영화를 보기 위해 참관한 관람객들에게 감동해서 낮시간 상영 내내 깜짝 무대인사를 계속 진행해서 즐거움을 안겨 주었다는군요.


다음은 싸인 인증샷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토미노 감독의 싸인에는 건담의 마스코트, 하로 그림이 들어가 있습니다만 이 날은 피곤하셨는지 하로는 제외하셨더군요. 조금 아쉽지만 나름 만족입니다. 언젠가 익스트림무비 스탭이신 golgo님께서 [역습의 샤아] 북미판 DVD에 토미노 감독의 싸인을 받고는 아마 건담 북미판 DVD에 토미노 감독의 싸인을 받은 사람은 많지 않을거라며 부러움을 자극했는데, 저도 당당히 북미판에 싸인받은 1인이 되었습니다. 음하하하!! 이건 뭐 그냥 가보로 물려야죠.


이 날 행사장에서는 건담 30주년 기념 클리어 파일 6종세트를 나눠주었습니다. 역시 의미있는 득템이었죠. 이런건 무조건 모아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각종 Pifan 관련 책자들.


이렇게 해서 이날 있었던 토미노 감독 싸인회 참관기를 마치겠습니다. 저로서는 최악의 행사였던 작년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 레드카펫보다 훨씬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비록 두 경우 모두 비를 쫄딱 맞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만 토미노 감독은 제 나이 또래의 남자들에게 있어서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한 장본인이니까요. 부디 오래 장수하셔서 또 한번 뵙게 될 날이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 페니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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