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무수한 이야기꺼리를 남긴채 폐막식을 치룬 벤쿠버 동계올림픽. 그 중 전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켰던건 두말할 것 없이 김연아의 피겨 프리 스케이팅이었을 거다. 무엇하나 나무랄데 없는 연기를 펼치며 만장일치의 판정으로 금메달을 목에 건 김연아의 모습도 인상적이었지만 비단 나의 관심을 끌었던 건 은메달을 목에 건 아사다 마오의 눈물이었다. 그리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변명의 여지가 없는 만년 2인자로서의 위치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모습을 보며 측은한 마음을 느끼는 한 편, 어떤 영화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때는 18세기 후반 오스트리아의 빈.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어느날 밤 커다란 저택안에서 누군가가 '모차르트'의 이름을 부르짖는다. 하인들이 무슨일인가 싶어 주인의 거실문을 열고 들어가니 피투성이의 노인이 절명직전의 상태에서 쓰러진다. 자살을 기도한 이 노인은 궁정악장이었던 안토니오 살리에리. 무엇이 그로 하여금 자살을 기도하게끔 만들었는가? 정신병원에 격리된 살리에리는 동시대를 살았던 천재와 그를 뛰어넘을 수 없었던 평범한 음악가의 놀랍고도 기구한 이야기를 회상하기 시작한다.
'에쿠우스'로 잘알려진 극작가 피터 셰퍼가 1979년에 발표한 연극을 영상으로 옮긴 [아마데우스]는 (원제 역시 Peter Shaffer's Amadeus 이다) 음악가들의 삶을 조명한 기존의 영화들과 전혀 다른 접근방식을 보여준 작품이다. 모차르트의 교항곡 No.25 In G Minor, K.183으로 시작되는 [아마데우스]의 오프닝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만큼 강렬한데, 이 짧은 오프닝을 통해 감독은 [아마데우스]의 실질적인 주인공이 모차르트가 아닌 살리에리라는 사실을 관객에게 각인시킨다. 이렇게 타이틀롤인 모차르트가 아니라 살리에리를 통해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방식은 대단히 효과적이다.
ⓒ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영화는 35년을 살다 간 모차르트의 짧은 생애를 미화하기 보다는 그를 지켜보며 질투심을 불태우는 라이벌 살리에리의 심리묘사에 중점을 두는데, 관객들은 궁중악장이라는 음악계의 최고 명예를 거머쥐었으면서도 정작 2인자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샬리에리의 불타는 질투심에 보다 깊이 공감할 수 있게 된다. 그가 가진 질투심의 근원은 모차르트에게 있는 천재성이 자신에게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재능을 알아보는 능력이 자신에게 주어졌다는 것, 그리고 그 때문에 자신이 모차르트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에 대한 분노다. 말하자면 [아마데우스]의 공감대는 소수의 천재들을 위함이 아니라 다수의 보통 사람들을 위해 형성된 것이다. 관객들이 [아마데우스]에 몰입할 수 있는 건 자신들의 처지가 살리에리처럼 특별한 재능을 부여받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시대를 앞서간 천재와 그를 질투하는 라이벌의 대립구도는 모차르트의 죽음과 관련된 뿌리깊은 의혹, 바로 모차르트 독살설에 근거한 것이다. 실제 영화에서 독살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죽음의 배후에 모차르트를 과로의 극한까지 몰아붙인 살리에리가 있었다는 견지를 제시하고 있어 독살설의 모티브에 강한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는데,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1791년 모차르트의 사망 직후 오스트리아에는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의 독살을 사주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소문을 진실로 받아들였던 인물이 러시아의 대문호 푸쉬킨이었다. 그는 열렬한 모차르트의 지지자였는데 살리에리와 관련된 수많은 소문들 중에서 모차르트의 '돈 지오반니' 초연을 듣고 살리에리가 혹평을 했다는 이야기와 관련해 '돈 지오반니에 야유를 보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살인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게 아닌가'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한다. 결국 그는 1830년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라는 단막극 형식의 연극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 작품은 훗날 림스키 코르사코프에 의해 오페라로 재탄생했다. 이것이 모차르트 독살설을 보다 정설화시킨 계기가 되었다. 피터 셰퍼의 원작도 여기에 기초를 두고 있다. (푸쉬킨은 희곡에서는 문자 그대로 샬리에리가 모차르트에게 독을 먹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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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독살설은 어디까지나 루머에서 비롯된 것일 뿐,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질투해 독살을 사주했다는 증거는 전무하다. 살리에리와 모차르트의 관계에 있어 영화속에서 제대로 표현한 점은 살리에리가 이미 실력을 인정받은 거물급 음악가였다는 것이고, 모차르트는 괴짜기질이 다분한 신인이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절대적 권력을 가진 황제는 모차르트 보다는 살리에리를 더 신임했던 것 같다. 기록상으로 모차르트가 살리에리에게 투덜댄 흔적은 있어도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모함한 기록은 발견할 수 없다. 애초에 모차르트 독살설의 근원지는 방정맞기로 소문난 모차르트 본인이 살아생전 누군가 자기를 독살하려 한다며 떠들고 다닌 것에서 유래되었다.
영화에서처럼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에게 레퀴엠을 맡겨서 과로사를 유도했다는 부분도 전혀 설득력이 없다. 실제로 모차르트에게 비밀리에 레퀴엠을 의뢰한 사람은 살리에리가 아니라 프란츠 폰 발제크 백작이었기 때문이며, 그는 20대 초반에 사망한 자기 부인의 1주기를 위해 이 레퀴엠을 자기가 직접 작곡한 것처럼 가장하여 연주하려 했다. 또한 모차르트의 임종시까지 레퀴엠을 대필한 것 역시 살리에리가 아닌, 모차르트의 제자 쥐스마이어 였다.
지금까지 모차르트의 사망원인으로 지목된 것이 매독을 포함해 뇌출혈, 기생충, 패혈성인두염 등 100여가지에 이를 지경이니 정확히 어떤 것이라고 딱집어 말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독살에 의한 죽음은 아닌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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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 영화가 모차르트의 천재성에 대해 아무 노력없이 그저 타고난 것처럼 묘사하긴 했어도 실제 모차르트의 재능은 우리가 생각한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모차르트는 유년기 시절부터 아버지 레오폴트(그는 장난감 교향곡으로도 유명하다)를 따라 유럽각지를 돌며 음악에 대한 조예를 키웠고, 그의 음악적 지식과 기법은 이전 시대의 음악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분석에 의거한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더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중 하나는 모차르트가 쌓은 고전 음악에 대한 조예로 인해 그가 '표절의 천재'라는 오명과 평생을 씨름했다는 점이다. 역시나 천재라는 것은 하늘이 내려주기 보다는 엄청난 노력의 산물이라고 보는 편이 옳지 않을까. 그리고 그 노력을 살리에리는 분명 인정해 주었을 것이다. 진실은 자신만이 알겠지만.
어쨌거나 사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를 다루고 있긴 해도 [아마데우스]는 시간이 흘러도 변치않는 재미를 선사하는 작품이다. 기괴한 웃음을 터뜨리는 '천재'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한 톰 헐스와 신에 대한 분노에 사로잡혀 신앙마저 내던지는 질투의 화신 살리에리 역으로 오스카 주연상을 수상한 F. 머레이 에이브람스의 연기대결은 이 영화의 또다른 백미다. 무엇보다 이 영화를 돋보이게 만드는 건 살아생전 600 여곡을 작곡했던 모차르트의 뛰어난 음악들이다. 그의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살리에리 같은 거물 음악가마저도 충분히 질투심을 품을 수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 정도니까. 이 영화의 각본과 원작을 썼던 피터 셰퍼의 말처럼 [아마데우스]는 모차르트의 생애를 주제로 한 일종의 판타지다. 제57회 아카데미 작품, 감독, 남우주연 등 8개부문 수상작.
P.S
1.[아마데우스]는 영어로 된 원어보다 한국어 더빙이 더 훌륭한 몇 안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공중파로는 MBC, KBS에서 각각 방영되었으나 두 방송사 모두 모차르트 역을 맡은 톰 헐스의 성우로 배한성을 기용했는데, 싱크로율이 200%를 가볍게 넘는다. 우리말 더빙판을 꼭 출시해 달라!
2.모차르트의 레퀴엠이 미완성으로 알려져있기는 하나, 프란츠 크사버 쥐스마이어(Franz Xaver Süssmayr)에 의해 가까스로 완성되었다.
3.[아마데우스]의 마지막 장면에서 모차르트는 묘비 하나 없는 공동묘지에 다른 시신들과 함께 합장되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는 영화에서처럼 그가 가난했기 때문이 아니라 당시 빈 중산층의 장례 풍습 때문이었으며 나무로 된 묘비도 있었다. 그의 무덤을 현재 찾을 수 없는건 성 마르크스 묘지가 이장을 거듭하였기 때문이다.
4.2002년 4월 19일에 감독판 리마스터링 필름이 공개되었다. 이 감독판에는 콘스탄츠의 토플리스 장면이 잠깐 등장하는데, 그로인해 미국에서는 PG등급이었던 극장판과는 달리 R등급을 받았다. 한국은 어떻냐고? 심의위원들이 3시간에 이르는 영화를 그냥 건성으로 봤는지, 무려 '전체관람가' 판정을 받고 버젓이 DVD로 출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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