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작열전(怪作列傳) No.91
1962년 007 시리즈의 첫작품 [007 살인번호 Dr. No]가 전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하면서 1960년대 영화계는 일약 첩보물의 시대로 바뀌게 됩니다. 1966년에 개봉된 제임스 코번 주연작 [전격 후린트 고고작전 Our Man Flint]이나 로버트 본과 데이빗 멕컬럼의 콤비가 인상적인 [0011 나폴레옹 솔로] 같은 수많은 아류작의 범람은 007 시리즈의 인기가 어느정도였는지를 실감케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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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1967년에는 노골적으로 007을 카피한 작품들이 두 편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언젠가 괴작열전을 통해 다뤘던 패러디물 [카지노 로얄(1967)]이고, 또 하나는 오늘 소개할 [오케이 코네리 OK Connery], 일명 [오퍼레이션 키드 브라더 Operation Kid Brother](미국 개봉명) 혹은 [오퍼레이션 더블 007 Operation Double 007], [비밀 첩보원 더블 오 Secret Agent 00]로도 알려진 작품입니다. 사실 [오케이 코네리]의 경우 국내에 정식으로 소개된 적이 없는 전설의 괴작이기 때문에 무척 생소하신 분들도 많을 줄로 압니다. 이제 이 괴작이 탄생하기까지의 여정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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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에서 언급한데로 아메리칸 시네마의 첩보물 범람은 유럽 전역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탈리아의 제작자 다리오 사바텔로는 재빨리 007의 인기에 편승한 작품을 모색하게 되는데요, 그는 누구도 생각치 못한 기발한 아이디어로 계획을 실천에 옮기게 됩니다. 바로 숀 코네리와 8살 차이나는 친동생, 닐 코네리를 기용하기로 한 것이지요. 정말이지 닐 코네리는 형인 숀 코네리와 놀랄만큼 닮은 인물이었습니다. 단 한가지 사실만 빼면 말이죠. 형인 숀 코네리는 이미 인기 절정의 영화배우였던 반면 동생인 닐 코네리는 평범한 건축 미장기술자에 지나지 않았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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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리오 사바텔로는 닐 코네리를 찾아가 스크린 테스트를 종용합니다. 닐은 자신의 캐스팅이 형의 명성에 편승한 것임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것이 영화배우로 성장하는데 큰 걸림돌이 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죠. 결국 닐은 숀이 [007 살인번호]에 출연할 당시 받았던 게런티보다도 적은 액수로 출연하는데 동의하게 됩니다.
아울러 다리오 사바텔로는 연기경험이 없는 닐의 핸디캡을 커버하기 위해 막강한 조연진들을 캐스팅하게 되지요. 자, 놀라 자빠질 만한 내용은 이제부터입니다. 이 작품에 섭외된 배우들은 놀랍게도 007 시리즈의 오리지널 주역들이었는데요, 먼저 MI6의 초대 M인 버나드 리와 무려 14편의 본드 무비에서 머니 페니 역을 맡았던 로이스 멕스웰이 EON 프로덕션에서 받던 게런티보다도 많은 돈을 받고 출연을 결정합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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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으로 끝났다고 생각십니까? 천만의 말씀. [위기일발]의 본드걸 다니엘라 비앙키와 더불어 [007 살인번호]의 안소니 도슨, 그리고 [썬더볼 작전]의 인상적인 악당 '라르고' 역의 아돌포 셀리 등 정통 007 시리즈에 참여한 배우가 무려 5명이나 등장하는 것이 [오케이 코네리]인 것입니다. 또한 여기에는 안나 마리아 노에 라는 여배우가 로트 크라옌도프 Lotte Krayendorf 라는 이름의 캐릭터로 출연하는데, 이 배우는 [위기일발]에 출연했던 로트 레냐 Lotte Lenya 라는 배우와 꼭 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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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이 코네리]는 이렇듯 주연인 닐 코네리를 빼고는 1군에 해당하는 라인업이 이뤄진 작품으로서 사실상 캐스팅만으로 본다면 오히려 [카지노 로얄(1967)]보다 더 007 시리즈의 정통성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연출마저 테렌스 영이나 가이 해밀톤이 맡았다면 그야말로 기념비적인 괴작이 되었을텐데 아쉽게도 감독은 일련의 마카로니 웨스턴과 호러물 등 잡다한 연출 경력을 남긴 알베르토 드 마르티노가 맡았습니다.
또 놀랄일이 남았느냐구요? 물론입니다. 흔히들 007의 작곡가 하면 존 베리를 떠올리실텐데요, [오케이 코네리]에는 존 베리에 버금가는 영화음악계의 거성, 사운드 트랙의 레전드, 엔니오 모리코네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리도 또 한사람, 엔니오 모리코네와 오랜 동료이자 라이벌 관계였던 브루노 니콜라이도 함께 말이죠.
그럼 [오케이 코네리]는 과연 어떤 내용의 영화일까요?
악의 무리 '타나토스'의 두목 타이(아돌포 셀리 분)가 가공할 만한 신무기-첨엔 핵무기랬다가 나중엔 안티 마그네틱 웨폰이랬다가 왔다갔다-를 개발해 세계를 정복하려는 음모를 꾸미는 가운데, 악당들의 야욕을 분쇄하고자 커닝햄 중령(버나드 리 분)은 영국 최고의 첩보원을 호출하려 하지만 때마침 그의 부재로 인해 성형외과 의사인 닥터 닐 코네리를 찾아갑니다. (네, 극중 이름도 닐 코네리입니다! ) 성형외과 의사이지만 무술에 능하고 활도 잘 쏘며 특히 최면술에 능한 닐은 형을 대신해 세계를 구하기 위한 모험에 뛰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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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재밌는건 영화상에서 부재중인 닐 코네리의 형이 분명히 007 제임스 본드가 분명한데도 EON 프로덕션의 라이센스 문제 때문인지 영화상으로는 슬쩍 언급을 회피한다는 점입니다. 가령 두명의 악당인 타이와 알파(안소니 도슨 분)의 대화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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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 그(커닝햄 대령)를 돕는 젊은 영국인 의사 있잖아, 왜 그...비밀 첩보원 00...알파: (황급히 말을 자르며) 그래, 나도 들었어. 아주 맘에 안드는 가족이지.
암튼 닥터 코네리는 얼떨결에 영국첩보부를 위해 일을 하게 되고 여기에 적인지 아군인지 구별이 안되는 여성 마야(다니엘라 비앙키 분)가 끼어 들면서 영화는 한층 괴상하게 흘러갑니다. 뭐 결국에는 타이의 아지트에 쳐들어가서 모조리 때려부수고 나오는 해피엔딩이 됩니다만 그 전개과정이야 눈물없인 감상할 수 없을만큼 조잡하기 이를데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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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개성없는 스토리의 전형성을 보여준 [오케이 코네리]는 쌈마이스런 제목만큼 무척이나 많은 허점을 가진 작품입니다. 우선 이 작품은 정통 스파이영화의 원류인 007과는 달리 캠피 스타일로 점철된 극악의 내러티브 구조를 보여줍니다. 액션에 있어서 긴장감은 하나도 느낄 수 없고 마치 1960년대의 [배트맨]을 보듯 우스꽝스런 동작 하나하나가 의도하지 않는 웃음을 자아냅니다. 영화에 참여한 각본가는 무려 4명. 사공이 많으면? 네, 배가 산으로 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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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더욱 문제가 되는 건 다름아닌 닐 코네리의 존재입니다. 생긴건 영락없는 숀 코네리인데, 하는 짓은 3류 코미디언이니 관객들은 제임스 본드로 각인된 코네리의 이미지와 상반된 괴리감을 느끼며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고독한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더군다나 닐 코네리가 촬영 당시 성대 혹 제거 수술을 받는 바람에 성우를 기용해 더빙을 맡겼는데, 이것 또한 우스꽝스런 이미지를 연출하는데 한몫을 더합니다. 왜냐구요? 더빙을 맡은 성우가 이름모를 미국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영국 스파이의 미국식 엑센트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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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제작자 사바텔로는 닐 코네리에게 큰 기대를 걸고 제2의 숀 코네리로 키울 계획까지 세워 놓았습니다. 그는 [오케이 코네리]의 촬영이 끝나면 이어서 몇편의 마카로니 웨스턴에 출연시켜 인지도를 높힐 생각이었지요. 실제로 사바텔로는 [007 두 번 살다]이후 숀 코네리가 은퇴의사를 밝히자마자 잽싸게 EON 측에 닐 코네리를 차기 제임스 본드로 영입할 것을 제안하지만 EON 측에서는 발끈하며 그 제안을 단호히 거절하게 됩니다. 결국 [오케이 코네리]의 실패 이후 닐 코네리는 원래대로 건축 미장일로 돌아왔고 그 이후로 [The Body Stealers]와 같은 저예산 SF영화나 그 밖의 TV 시리즈에 몇번 얼굴을 비춥니다만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었습니다.
[오케이 코네리] 이후 메이저 영화 진입에 실패한 닐 코네리는 본업으로 돌아가 미장일을 계속 했지만 몇편의 영화에 얼굴을 비췄다. 세월이 흐른 지금도 형인 숀 코네리와는 여전히 닮았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숀 코네리가 출연을 거절한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에 닐 코네리를 출연시켰더라면, 영화는 또다른 괴작이 되었을까?
한편 형인 숀 코네리는 이런 집안 망신의 상징물 같은 [오케이 코네리]의 필름을 모조리 회수해 폐기하려 했으나 감독의 반대로 실패하게 됩니다. 그러나 막상 당사자인 닐은 자신이 이 작품에 출연했다는 사실을 그냥 담담하게 생각했다고 하는군요. 뭐 숀 코네리의 우려와는 달리 [오케이 코네리]는 지금까지 어떠한 형태로의 비디오나 DVD로도 정식 발매되지 않은, 지구상에서 가장 희귀한 영화 중 하나가 되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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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엔니오 모리코네와 브루노 니콜라이의 OST 또한 메인 타이틀곡 만을 담은 싱글음반만 발표되었다가 2004년에 와서야 디지모티브(Digimotives)사의 디지털 리마스터링으로 수록곡 전체가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007의 메인테마를 교묘하게 변주한 부분을 비롯해 음악하나만큼은 명불허전의 사운드 트랙이니 사두셔도 좋을 듯 합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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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007영화의 클리셰, 이를테면 턱시도 차림의 주인공이 악당과 조우한다든지, 여러 가지 비밀무기를 선보인다든지 하는 익숙한 장면들이 등장하지만 글쎄요.. 이런건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요인이지 영화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요인은 아니니까요. 그러고보면 최근 대놓고 배끼는 목버스터 전문회사 어사일럼은 참 영리합니다. 적어도 짝퉁영화에 이런 무지막지한 캐스팅과 돈을 투자하진 않으니까 말이죠. 짝퉁은 어디까지나 짝퉁스럽게~
※ 참고: 속편열전(續篇列傳) : 007 위기일발 - 영화계의 최장수 프렌차이즈 시리즈를 향한 교두보
* [오케이 코네리]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Produzione D.S. (Dario Sabatello)/ United Artists.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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