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작열전(怪作列傳)

괴작열전(怪作列傳) : 슈퍼소닉맨 - 스페인산 슈퍼히어로의 비애

페니웨이™ 2010. 1. 18.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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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작열전(怪作列傳) No.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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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유럽 영화하면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영화를 떠올리게 됩니다만 스페인 영화 역시 비교적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1896년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프랑스인인 뤼미에르 형제가 최초로 영화를 공개한 이듬해 스페인 사람의 손으로 만든 최초의 실사영화(實寫映畵)가 제작되어 영화사에 큰 발자국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스페인 영화는 철저한 가톨릭 국가라는 신앙적 규범에 더해 프랑코 정권 하에 이루어진 표현의 제한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유럽 영화들에 비해 성장속도가 느려진 것도 사실입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에 비해서는 크게 부각되지 못한것도 그런 이유에서죠.


오늘날에 있어서도 국내 팬들에게 스페인 영화는 왠지 낯설게 느껴지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 만약 스페인 영화계가 보잘것 없었다면 페넬로페 크루즈나 하비에르 바르뎀, 안토니오 반데라스 같은 배우들을 우리가 알 수 있었을까요?  또한 스페인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명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작품들- 브로큰 임브레이스, 귀향 -도 국내에 정식으로 소개된 바 있는만큼 스페인 영화가 알게 모르게 그 저변을 확대해나가고 있는건 분명합니다.

한편 스페인 영화계의 위상을 높히기 위한 자구적인 노력 가운데는 헐리우드 스타들을 영입해 인지도를 향상시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머시니스트]로서 크리스천 베일과 제니퍼 제이슨 리 같은 헐리우드 배우들을 기용해 눈길을 끌며 동시에 훌륭한 완성도로 호평받은 바 있지요.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항상 성공적인 것은 아니어서 때론 괴작을 탄생시키기도 합니다. 비단 스페인 뿐만 아니라 도널드 프레젠스를 출연시킨 이탈리아 영화 [퓨마맨]도 그런 경우고 한국에서도 스티븐 시걸을 출연시킨 [클레멘타인]이 얼마나 웃음거리가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갈겁니다.

오늘 소개할 작품은 1979년 작 [슈퍼소닉맨]으로서 제목에서 '소닉'만 빼면 바로 '슈퍼맨'이 되어 버리는 노골적인 [슈퍼맨]의 짝퉁영화(Rip off)가 되겠습니다. 지난번 [퓨마맨]에서도 밝혔듯 1978년작 [슈퍼맨]은 기존 슈퍼히어로물의 양상을 완전히 뒤바꾼 영화로서 당시 영화계에 미친 파급효과를 생각하면 시간이 부족할 정도입니다. 이는 유럽지역에도 마찬가지여서 자국내의 캐릭터가 없는 나라들은 어쩔 수 없이 짝퉁을 만들어내서라도 모처럼 불어온 슈퍼히어로 트랜드의 훈풍을 이용해야 했지요.

ⓒ Almena Films. All rights reserved.


그럼 먼저 [슈퍼소닉맨]의 줄거리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영화의 오프닝은 광활한 우주에서 한척의 우주선이 카메라의 뒷편에서 앞으로 나오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요, 마치 [스타워즈]의 오프닝을 연상케 합니다. 아니 이 시퀀스는 완전히 [스타워즈]를 베꼈습니다. ㅡㅡ;; 초반부터 감독의 마인드가 어째 얄딱꾸리 하군요.

ⓒ Almena Films. All rights reserved.


우주를 방황하는 정체불명의 우주선안에서 빤스차림으로 떡실신해 있는 복면의 사나이를 앞에 두고 화면에 웬 아저씨가 나타나 '지구에 어렵고도 데인저러스한 볼일이 생겼는데, 니가 해결사로 선정되었으니 우주선의 방향을 지구로 돌리겠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빤스바람이던 복면의 사나이에게 어느새 빨간 내복차림의 코스튬이 생기더니만 느닷없이 우주공간 한가운데로 산소마스크도 없이 뛰쳐나가 지구로 날아옵니다. 슈퍼맨도 우주선을 타고 지구로 왔는데.. 대단한 스태미너죠? 게다가 우주선을 지구로 돌리겠다는데 뛰쳐나오는건 뭐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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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로 잠입한 복면의 사나이는 평상시엔 지구인 폴로 또 유사시엔 슈퍼소닉맨으로 변신해 활동하는데 그의 주 임무는 지구정복을 꿈꾸는 닥터 걸릭의 음모를 분쇄하는 것입니다. 닥터 걸릭은 자신의 야욕을 위해 교수를 납치하지만 교수가 말을 듣지 않자 그의 딸까지 납치하려 듭니다.

이제 슈퍼소닉맨이 활약하게 되는데, 그가 주로 하는 일이라곤 교수의 딸을 납치하려는 악당들을 혼내주고 그녀와 데이트를 즐기는 일입니다. ㅡㅡ;; 그리고 이런 저런 일들이 다 벌어지고 난 후에야 비로소 걸릭의 아지트를 찾아가 몽땅 날려 버린다는 이야기죠. 딴에는 스케일이 점점 커져서 우주선을 타고 지구 바깥에서 악당과 최후의 결전을 벌이는건 뭔 배짱인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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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에서 온 슈퍼히어로와 자신만의 세력을 가진 야심가의 대결이라... 왠지 익숙한 플롯이라구요? 맞습니다. [슈퍼소닉맨]은 플롯마저도 [슈퍼맨]을 그대로 차용한 작품입니다. 슈퍼소닉맨=슈퍼맨, 닥터 걸릭=렉스 루터로 치환해도 별로 이상할 건 없지요. 한가지 독자적인 설정이 있다면 닥터 걸릭의 오른팔로 활약하는 로봇이 등장한다는 점인데, 깡통로봇같은 탈바가지를 뒤집어 쓴 이 로봇은 화염방사기와 독가스, 미사일등으로 중무장했지만 전혀 위협적으로 느껴지지가 않습니다. 도대체 애들 장난감같은 이런 로봇을 누가 무서워 한단 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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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인 슈퍼소닉맨만해도 설정자체가 코미디입니다. 슈퍼맨은 그래도 어릴적 지구에 도착해 지구인처럼 성장해서 그럴듯한 직업을 가지고 지구인속에 숨어들었다지만 슈퍼소닉맨은 다 큰 어른이 우주를 가로질러 날아온 주제에 뭔 재주로 번듯한 뉴욕 한복판의 팬트하우스에서 살고 있는것일까요?

게다가 슈퍼소닉맨과 얼터에고인 폴을 연기한 배우가 각각 다른 사람(슈퍼소닉맨은 이전에 스페인산 짝퉁 타잔영화에 출연한 전직 보디빌더 리처드 예스터란이 맡았음)이라 맨 얼굴일때는 버트 레이놀즈를 닮은 콧수염의 젠틀맨에서 복면을 쓴 슈퍼소닉맨일때는 콧수염이 사라지는 기이한 현상도 벌어집니다. 이러니 폴과 슈퍼소닉맨을 동일 인물로 의심할 일은 없겠군요. (주도면밀한 놈. 가짜 콧수염이라도 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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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소닉맨의 변신 과정은 폴이 손에 찬 시계에 대고 'May the force of the Galaxies go with me'라고 외치면 짠~하고 변신이 완료되는데, 대사가 어디서 많이 본 듯하죠? 어디 제다이 짝퉁 수련원에서 1개월짜리 과외라도 받았나보죠. ㅡㅡ;;

슈퍼소닉맨의 능력은 다양합니다. 하늘을 나는건 기본이고 (적어도 퓨마맨처럼 버둥대진 않지만 필름 재활용이 너무 심해요), 스파이더맨도 아닌 것이 손에서 그물이 튀어나오질 않나 심지어는 악당이 손에 든 권총을 바나나로 바꿔놓는 매직을 선보이기도 합니다. 그러고보니 바나나를 손에 쥔 악당이 도망치며 하는 대사가 또 일품이에요. 'I Don't like Banana 난 바나나 안좋아해'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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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인 닥터 걸릭 역은 수백편의 TV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던 헐리우드의 배테랑 배우 카메론 미첼이 맡았는데요, 이런! 카메론 미첼 Cameron Mitchell의 스펠을 잘못 적었군요. [퓨마맨]의 도널드 프레젠스에 이은 또하나의 굴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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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소닉맨]의 특수효과는 이 영화 직전에 개봉한 리처드 도너판 [슈퍼맨]이 아니라 1950년대 조지 리브스가 출연한 TV판 [슈퍼맨]에 더 가깝습니다. 일례로 다음의 시퀀스를 보시면 무슨 롤러처럼 보이는 차량을 슈퍼소닉맨이 번쩍 들어올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무슨 스폰지 같은걸로 만든 모형에 노란색 페인트를 칠했다는게 너무 티가 납니다. 창문을 함 보세요. 가짜인게 티가 확 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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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나름 참신한 장면도 아주 없는 건 아니어서 보트 밑에 탈출용 잠수정이 별도로 있어서 이를 이용해 도주하는 장면 같은 건 어설퍼도 나름 쓸 만하긴 합니다. 그러나 그런게 몇장면 안된다는게 문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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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소닉맨]의 가장 큰 패착은 비단 이 작품이 리처드 도너의 [슈퍼맨]이나 [스타워즈], [스타트렉] 등의 작품들을 도용한 것이 아니라 과거 캠피스타일의 미국 TV 시리즈물을 답습하는 오류를 범했다는 점입니다. 이 작품은 슈퍼히어로의 고뇌나 주제의식 따윈 전혀 찾아볼 수 없고 그렇다고 오락적인 볼거리를 풍부히 제공하는 것도 아니어서 굳이 표절작의 오명을 뒤집어 쓰면서까지 이 영화를 만들어야했는지 의구심이 생길 정도입니다.

그래도 어느나라건 이런 흑역사쯤은 하나씩 있는거잖아요?


* [슈퍼소닉맨]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Almena Films.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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