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CG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픽사 vs 드림웍스의 양강 체계를 깨뜨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일찌감치 탄탄한 시나리오와 놀랄만큼 사실적인 표현력, 그리고 무엇보다 성인과 아이들의 정서를 고루 아우르는 픽사의 명작들은 이미 업계에서 부동의 지존임을 인식시켰고, 엄청난 물량공세로 다양한 범작과 수작을 쏟아내는 드림웍스 또한 만년 2인자에서 조금씩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폭스사는 CG업체인 블루스카이와 손잡고 [아이스 에이지]로 CG 애니메이션 시장의 3파전을 예고했다. 결과는 대성공.
타사의 작품들과 달리 [아이스 에이지]는 화려한 CG나 거대한 스케일이 아니라 저연령층을 위한 단순한 스토리와 전형적인 캐릭터로 정면 승부를 걸었다. 비록 픽사의 완벽한 짜임새나 드림웍스의 말재간에 비하면 무척 싱거운 작품이었지만 '가족'이라는 테마로 저연령층 위한 눈높이 조절에 가장 적합한 작품으로서 사랑받게 된 것이다. 뒤이어 나온 [아이스 에이지 2]는 심플함을 장점으로 내세운 전편에 비해 스케일을 조금 키웠으며, 지구 온난화라는 세계적 이슈를 적당히 섞은 안정적인 속편이었다. 여전히 [아이스 에이지 2]는 과다한 조미료를 넣은 것 처럼 지나친 변화보다는 약간은 심심할 정도의 평면적 구성을 고집했다.
ⓒ 20th Century Fox. All rights reserved.
그렇다면 이제 3번째 이야기인 [아이스 에이지 3: 공룡시대]는 과연 어떤 변화를 시도했을까?
2편이 전편의 틀을 크게 깨지 않은 안정성을 추구했다면, 3편에 들어오면서 두드러진 가장 특징은 '패러디'다. 부제인 'Dawn Of The Dinosaurs'는 조지 로메로 감독의 저명한 좀비물 [시체들의 새벽 (Dawn Of The Dead)]를 패러디한 것이며, 곳곳에서 스필버그의 [쥬라기 공원]이 오버랩 된다. 엄밀히 말해 이같은 시도는 사실상 드림웍스 스타일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데, 너무 일찍 패러디라는 승부수를 띄워 3편에서는 전작만큼의 재미를 보여주지 못했던 [슈렉] 시리즈에 비한다면 다분히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패러디의 정도에 있어서도 노골적이면서 직설적인 [슈렉 2]에 비하면 무척이나 소심하다는 느낌이 들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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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번에는 정신나간 애꾸눈 주머니쥐 벅이 새로운 캐릭터로 합류하는데, 자칫 메너리즘에 빠질 뻔한 [아이스 에이지 3]를 살려내는 건 놀랍게도 바로 이 벅의 존재다. 최근 [스타트렉: 더 비기닝]으로 헐리우드 진출의 탄탄한 입지를 다진 영국배우 사이먼 페그(한국어판은 배한성)가 목소리 연기를 맡은 이 캐릭터는 독창성이 결여된 진부함 속에서 작품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캐릭터다.
아울러 역동적인 캐릭터인 벅의 합류로 인해 액션은 더욱 강화되었다. 이번 [아이스 에이지 3]는 이례적으로 3D 애니메이션을 표방하는데, 그러한 3D의 몰입감을 최대한으로 살려낸 공중 비행씬의 압도적 영상은 시리즈 사상 최고의 재미를 선사한다. 하지만 이러한 액션성의 부각으로 인해 기존 캐릭터들의 활약상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으며, 스토리 상으로는 오히려 2편보다 후퇴한 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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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리즈 전통의 가치관인 '가족애'와 '우정'은 이번에도 반복된다. 아울러 대사없는 판토마임으로 관객들을 즐겁게 하는 감초 캐릭터 스크랫 또한 사랑과 도토리 사이에서 심각한 갈등을 하게 되는 만큼 만약 4편이 나온다면 이들 역시 가족애를 다루는 에피소드의 한 부분으로 편입될 듯 하다. 올해 최고의 애니메이션이 픽사의 [업]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그리 많아보이진 않지만, 진지함과 고뇌 따윈 벗어던지고 슬랩스틱 코미디의 향연속에서 아이들과 다함께 웃을 수 있는 시간을 원한다면 역시나 [아이스 에이지 3]는 기대만큼의 보답을 하는 작품이다.
* [아이스 에이지 3]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20th Century Fox.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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