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들의 삶을 다룬 영화는 꽤나 흥미롭다. 모차르트의 생애를 다룬 걸작 [아마데우스]나 베토벤의 연인을 추적하는 내용의 [불멸의 연인] 같은 작품들은 비단 전율을 느끼게 만드는 당사자들의 음악외에도 드라마틱한 구성에 있어서 매우 만족스러웠던 작품이다. 물론 모차르트나 베토벤 정도의 유명인은 되어야 그나마 영화로 나올 만큼의 여지가 있는 것이겠지만 역사속에 파묻혀 지금까지도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음악가들을 생각해 보노라면 가슴 한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국내에서도 클래식 음악에 대한 관심이 급속도로 증가하는 추세 속에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하려는 듯 [비발디]라는 영화가 뒤늦게 수입되어 개봉되었다. 오늘날 일반인들에게는 '사계'로 잘 알려진 비발디 이지만 실제 비발디의 음악이 1950년에서야 첫 레코드가 발매되어 일반인들에게 소개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비운의 생을 마감했던 한 음악가의 생을 영화화 했다는 것만으로도 [비발디]는 흥미를 자극한다.
ⓒ Vivaldi Productions/Entertainment Value Associates. All rights reserved.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 A단조 '조화(調和)의 영감' Op.3 No.6 (지하철 환승역 안내 BGM으로 알려진.. ㅡㅡ;;)의 연주로 오프닝을 시작하는 [비발디]는 가톨릭 사제의 신분으로 베네치아의 피에타 보육원에서 원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쳤던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극도로 감정이 절제된 시각에서 바라본다.
선천적으로 몸이 약해 사제이면서도 미사를 드릴 여력이 없었던 비발디는 그의 탁월한 음악적 재능을 이용, 방대한 양의 작곡 활동을 통해 그의 이름을 유럽 각지에 알렸다. 하지만 사제의 신분으로 세속 음악에 몰두하는 비발디는 베네치아 교구에게 있어서 눈엣가시같은 존재였다. 그의 음악활동을 중단하도록 하기 위해 갖은 음모와 모략이 비발디를 괴롭혔고, 일개 사제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오페라 공연에 필요한 비용을 감당하느라 재산을 탕진했던 그는 결국 자신이 쓴 곡 모두를 피에타 보육원에 1곡당 1냥이라는 헐값에 팔아 버리고 빈으로 거처를 옮겨 새출발을 하려하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한채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사실 [아마데우스]가 모차르트의 죽음에 대한 음모론적인 접근을 시도한 것이나 [불멸의 연인]이 베토벤의 숨겨진 연인에 대한 미스테리적인 구성을, [카핑 베토벤]이 베토벤 교향곡 9번의 탄생비화에 대한 픽션을 다룬것에 비해 [비발디]는 구체적인 주제나 방향성이 모호한 작품이다. 오히려 [비발디]는 음악가들의 생애를 다룬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극적인 요소가 적어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성격을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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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기승전결의 뚜렷한 구분없이 사건들의 조합으로만 상황을 설명해주고 있어 보는 이에 따라서는 [비발디]가 매우 불친절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가장 큰 문제는 [비발디]의 편집에 있다. 뚝뚝 아주 시원하게 끊어 버린 듯한 무차별 가위질은 이것이 수입사의 장난질인지 아님 원래 영화가 그런것인지 현재로선 그 원인을 알 수 없으나 극의 몰입을 방해하는 최악의 요소임에는 분명하다.
편집에서 야기되는 또다른 문제점은 음악 사용의 과잉으로 인한 부작용이다. 작곡가의 삶을 다룬 영화니 당연히 그의 음악이 OST로 사용되는 건 맞는데, 클래식에 조예가 있는 분들이라면 대부분 아는 사실이지만 비발디의 음악들은 곡조와 멜로디가 서로 비슷한 것으로 유명하다. 따라서 유사성 짙은 음악들이 (고작 90분의 러닝타임동안) 쉴새없이 반복되는 바람에 관객들은 음악으로 인한 피로감을 느끼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비발디의 음악이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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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단점만 보안되었다면 [비발디]는 훌륭한 전기영화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파리넬리]로 국내 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스테파노 디오니시의 인상적인 연기와 더불어 주교 역으로 감초같은 연기를 보여준 프랑스의 명배우 고(故) 미셸 세로의 열연도 일품이다. (참고로 미셸 페로의 명연기는 개봉을 앞둔 [버터플라이]에서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극장에서 듣는 비발디의 음악은 음악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매력이다. 혹자는 [비발디]의 OST로 '사계'가 사용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섭섭해 할지도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는 단지 영화속의 대사를 통한 언급만으로도 상징적인 가치를 부여했기에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여느 헐리우드 영화와는 다른 유럽 영화의 독특한 분위기가 살아있어 개인적으로는 나름 만족스럽게 보았지만 일반적인 관객들의 선호도를 고려해 볼 때 [비발디]에 대한 좋은 평가는 물건너 간 듯 보인다. 근래 보기 드문 최악의 편집은 차치하고서라도 영화의 구성자체가 심심한것만큼은 사실이니까. 오히려 2009년 개봉을 목표로 레나 헤디, 말콤 맥도웰, 조셉 파인즈 등이 캐스팅 된 헐리우드 버전의 [비발디]쪽에 기대를 걸어보는게 낳을 듯.
P.S: 본문에도 언급했듯이 안토니오 비발디는 엄청난 양의 작곡을 한 다작활동으로도 유명하다. 오늘날 '사계'로 알려진 곡도 실은 비발디 생전에 '사계'라고 불린 작품이 아니라 바이올린 협주곡집 작품 8.의 12곡 중 1~4번째 곡만을 추려 후세의 사람들이 편의상 '사계'로 분류한 것이다. 따라서 영화 속의 '사계'에 대한 언급은 엄밀히 말해 오류라고 볼 수 있다.
* [비발디]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Vivaldi Productions/Entertainment Value Associates.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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